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바로 지금 생겨나고 죽는 바로 여기

장백산-1 2018. 9. 9. 18:04

바로 지금 생겨나고 죽는 바로 여기



[원각경 강설]009


9. “선남자야,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에 핀 꽃에 허망하게 집착한다.


허망한 집착 때문에 이 허공의 자성에만 미혹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저 꽃이 실제로 생기는 곳에도 


미혹하게 된다. 이런 허망한 미혹과 집착으로 말미암아 삶과 죽음이라는 윤회가 허망하게 있게 


되니 그러므로 무명(無明)이라 한다.”



善男子(선남자)。空實無花(공실무화)。病者妄執(병자망집)。由妄執故(유망집고)。非唯惑此虛空自


性(비유혹차처공자성)。亦復迷彼實花生處(역부미피실화생처)。由此妄有輪轉生死(유차망유윤정생


사)。故名無明(고명무명)。




【강설】


바로 당장 지금 여기 눈앞에서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 한 알을 그려보라. 아마 누구나 어렵지 않게 

눈앞 지금 여기에 복숭아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 눈앞에 상상력으로 그린 복

숭아는 눈병이 난 사람이 보는 허공에 핀 허공 꽃과 같이 보이지만 상상으로 그린 그린 복숭아는 사

실 실체가 없는 허상 환상이다. 그런데 그 허상 환상의 복숭아가 그려지는 지금 여기 눈앞의 허공은 

진정 무엇인가?



이것을 ‘허공’이라 불러도 이미 틀렸다. 상상속의 복숭아가 그려지는 이 자리, 허공 꽃이 보이는 그 

자리,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어떤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또 다른 상상 속의 복숭

아고, 허공 꽃일 뿐이다.


임제의 스승이었던 황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허공이라는 견해(생각)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허공(虛空)이 곧 진리의 몸, 법신(法身)이다. 법신이라

는 견해(생각)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법신이 곧 허공이다. 허공과 법신이 서로 모양이 다르지 않다. 

부처와 중생이 서로 모양이 다르지 않고, 생사와 열반도 서로 모양이 다르지 않으며, 번뇌와 보리도 

서로 모양이 다르지 않다. 일체의 모습을 떠나면 곧바로 부처(여래)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인생의 전체 경험도 또한 바로 지금 여기 이 눈앞의 허공 아닌 허공 가운데 나타

난 상상 속에 가공의 복숭아나 허공 꽃과 같은 것이다. 몸과 마음도 인생 경험도 분명히 경험되지만 

실제로는 먼지 티끌 하나 일어난 적이 없고 몸과 마음도 인생 경험도 고정불변한 실체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를 사무쳐 깨우치지 못하면 허공에 허망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상상 속에 가공의 

복숭아나 허공에 핀 허공 꽃에 집착하듯 허공에 핀 허공 꽃과 같은 태어남과 죽음에 집착하여 허망한

환상일 뿐인 생과 사라는 윤회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모양 있는 모든 것은        凡所有相(범소유상)

모두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이니 皆是虛妄(개시허망)

만약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이 모양이 아닌 줄 알면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

곧장 여래를 보리라              卽見如來(즉견여래)


이 세상 모든 것, 모든 현상들은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같고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

이슬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나니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

이 세상 모든 것을 볼 때는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



그러나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실체가 없는 이 세상 모든 것 모든 헛된 것들이 


의지해 있는 그것은 진정 무엇인가? 지금 여기 눈앞에 상상으로 그린 복숭아는 어디에 의지해 


있는가? 허공에 핀 허공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자리는 진정 무엇인가?


그 자리는 말과 생각, 분별심에 의지하지 말고 한 번 직접 밟아봐야만 한다.


막힌데 없이 깨어있는 행복은 어디 있나?  圓覺道場何處(원각도량하처)

바로 지금 생겨나고 죽는 바로 여기일세   現今生死卽是(현금생사즉시)    


-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