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깨닫지 못하는 이유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이니, 믿음은 모든 선법(善法)을 기르고 의심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갈애(渴愛)의 흐름을 벗어나게 하여, 열반의 위없는 도를 열어 보인다. "
-화엄경 현수품, 현수보살
바로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모든 일에는 정해진 실체,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모든 일은 내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집착하여 그 이미를 변하지 않게 고정시키고자 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경험이나 감정이나 느낌은 모두가 텅~빈 허공과 같은 각자의 마음에 일어난 허깨비 환상과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마음은 바로 지금 여기서 현실의 나와 직면해 있습니다. 마음은 어떠한 경험이나 느낌이나 생각
에도 한결같이 변함이 없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하는 그 모든 경험과 감정과 생각
의 본바탕으로서 한결같습니다. 마음은 경험하는 것마다 다르지 않고, 느끼는 일마다 움직임이 없으며,
온갖 생각이 마음을 여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찾아야 할 어떤 대상이 아니라, 본래 이미 모든 것들에게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불변의 진실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분명한 사실입니다.
불변의 진실 여기에 통하면 더 이상 무엇을 찾고 더 많이 가지려고 구하지 않게 되는 의식의 전환이 이루
어집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꾸준히 접하면서도 이것을 받아들이고 체화하여 허공과 같은 세계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처럼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초보자들이 대체로 보이는 반응입니다.
이 세상엔 자기 마음 하나밖에 없다는 가르침을 접할 때, 이 소식을 비판적인 의식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자기 마음 하나밖에 없다는 가르침의 말을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려는 태도
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텅~빈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들으면 자기 경험이나 생각에 의지해서 이 말을
거부하고, 자꾸 의심하고 비판합니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분별심, 생각에 오염된 지식과
기억을 가지고, 자기 눈에는 이 세상이 텅 빈 세계가 아니라 온갖 것들로 가득 찬 세계, 모든 것이 객관적
으로 존재하는 세계라는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물론 텅 빈 세계라는 말도 마지못해 하는 분별의
언어입니다.
이 세상이 텅~빈 허공과 같다는 말은 무객관적으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하는 말인데, 이 말을 분별하는 언어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공부의 진전이 없습니다.
마음은 텅 빈 것도 아니고,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있다/없다가 분별심에서 성립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분별심에서 빠져나와 모든 분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인데, 이를 위해 무언가 있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은 텅~비었다고, 없다고 일깨우는 겁니다.
그러나, 진정 깨어나야 할 것은 '있는 것'과 함께 '없는 것'이라는 분별의식입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세계를 맛보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는 없음에 부합되는 듯한 말을 방편으로 하지만,
결국엔 텅~비었다 없다는 방편상의 말조차도 나를 구속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분별하는
언어와 분별하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막힘없는 텅~빈 바탕자리, 근본성품을 회복하는 길
입니다.
둘째, 역시 초보자가 보이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아닌 세계, 불이법(不二法)에 대한 가르침을 수긍을 하면서도 둘 아닌 세계로 이끄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공부에 진척이 없습니다. 이 공부는 정해진 목표가 없어지는 공부입니다.
따라서, 정해진 목표가 없는 그곳으로 이끄는 가르침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본래
정해진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정해진 지향점이 따로 없다는 사실에 확연히
통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공부를 먼저 한 사람의 안내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공부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공부입니다. 개념적인 이해나 정해진 목표가 있는 죽은 공부라면
스승이 없어도, 기록되어 남겨진 지식을 통해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되어 남겨진 지식은
모두 허망한 분별이고 구속입니다. 기록된 지식은 모두 언어이고 언어는 관념이며 관념은 분별심
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스승도 방편인 언어라는 분별된 도구를 가지고 사람을 이끄는 경우가 많습
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스승은 언어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용도가 다하면 언어를 폐기
시켜버리게 이끌 수 있습니다. 사람의 공부 상태에 맞게 그때그때 적절히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실상, 즉 죽은 세계가 아닌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갈 때 스승의 존재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스승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공부는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지견
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이 공부인데, 자기가 보고 들은 지견에 머물러 '실상은 이것이다'라는 분별
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셋째, 깨달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수용하는 마음이 있고, 이것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어도, 이 가르
침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역시 공부가 원만해질 수 없습니다. 시간을 내가면서 스승의 바른
가르침을 듣지만, 그 심오한 뜻을 따라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공부에 대한 생각만 계속 쌓입니다.
이 공부를 진정으로 한다는 것은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경험을 전부 다 내려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새로 듣는 지식도 쌓아놓지 않고 모두 흘려보내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단지 듣는 공부만 한다면 오히려 지견이 쌓여 역행하는 공부가 됩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을 내면화하여 진정 스스로가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있다면 기존의 고정관념이 텅 비워지고,
새로 쌓이는 생각도 사라집니다. 진정한 공부는 가르침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자기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닙니다. 자기변화라는 것은 자기가 아는 것,
이해하는 것, 소유한 것의 본바탕이 계속 변하는 성질의 무상(無常)함임을 깨닫고 아는 것, 이해하는
것, 소유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이것들을 주장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애착하는 것이 텅 비
워지고, 나라는 존재조차 본래 실체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실질적 자기 변혁, 자기 해체
와 전체로 깨어남이 동반되지 않는 공부는 이름만 공부일 뿐입니다.
넷째, 여전히 세속적인 것에 탐닉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장애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도 여전히 세속적인 것이 비중이 크고, 깨달음조차
세속적인 안정과 잔잔한 만족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마음입니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
다면, 여전히 이것이 자신을 스스로 어둡게 하고 구속할 것입니다. 물론 오랜 세월 분별 대상 경계에
매혹되어 살아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자유와 본질과 합일된 삶, 진실에 눈뜬 삶만이 진정한 삶이고, 분별심으로 추구하는
삶은 허망하며 의미 없는 삶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확연히 눈을 떴을 때 의심할 수없이 알게 되는 전
환입니다. 스스로가 완전히 눈뜨지 못했을 때는 재물이나 욕구 충족은 아니더라도, 자유와 평등, 정
의와 불의, 선과 악 등 이념적 가치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배격하는 공부가
이 공부는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의 실체를 깨달아 걸림 없이 인연 따라 쓰고 응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나 먼저는 이 모든 분별들이 실질적으로 환상이라는 깨달음이 먼저입니다. 본질을 깨닫고 나서
이 깨달음을 활용하거나 쓰는 일과 환상을 의미 있는 진실로 알고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공부를 하면서 갖게 되는 장애를 네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 장애는
큰 범주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조건이 다릅니다. 각각이 겪는 장애들도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크게는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네 가지도 결국은 하나로
정리됩니다. 깨달음에 대한 간절함이 있느냐는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네 가지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냐입니다. 이런 마음이 크면 클수록 바른 법을 찾게 될 것이고, 바른 법을 찾았다면
그 길로 이끄는 사람의 말을 따라 실행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 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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