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열반의 의미

장백산-1 2018. 12. 10. 21:43

열반의 의미

 

열반이란 분별 망상 번뇌의 불길 완전히 소멸된 상태


열반은 유여와 무여로 구분 목숨까지 다 소멸해야 무여

대승은 자리이타 보살 추구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경지


초기불교에서 열반(涅槃, 니르바나 nirvāṇa)은 깨달음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인간의 내면에 잠복하고 있는 탐욕․성냄․ 어리석음(3독심)이라는 부정적 심리경향으로 인한 실존적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완전한 행복이나 궁극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사실 열반은 불교만의 독특한 관념(觀念)으로 4법인(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 중 열반적정(涅槃寂靜)이나 4성제 중 멸성제 등에서 확인되는데, 초기경전의 기술에 따르면 ‘갈애나 번뇌의 소멸’ 혹은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등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된다.


우선 용어상으로 보면, 초기불교에서 '열반'이란 산스크리트 원어로는 ‘니르바나(nirvāṇa)’로 이는 부정접두어 ‘nir’와 ‘불다(to blow)’를 의미하는 ‘동사어근 √vā’가 결합된 형태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즉 열반이란 ①탐욕(貪, rāga)․②성냄(瞋, dosa)․③어리석음(癡, moha)이라는 3가지 번뇌의 불길이 불어서 완전히 꺼진 상태라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남방 상좌부에서는 부정접두어 'nir'와 'vāna(숲, 밀림 = 번뇌의 숲)'의 결합된 형태로 해석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즉 남방 상좌부에서 열반은 번뇌(煩惱, kleśa)의 속박이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열반에 대한 두 가지 해석방식은 의미상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하여 ‘상윳타니카야’에서는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멸성제, 滅聖諦)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벗이여, 사리뿟따여, 열반열반 하는데 열반이란 무엇입니까? 열반이란 탐욕을 소멸하고, 화냄을 소멸하고, 분별하는 어리석음을 소멸한 경지입니다. 그러면 열반에 이르는 길(도성제, 道聖諦)이 있습니까? 벗이여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무엇입니까? 벗이여, 성스러운 8가지 길(8정도, 八正道))이 열반에 이르는 길입니다. 즉 ①바른 견해(正見), ②바른 사유(正思惟), ③바른 말(正語), ④바른 행동(正業), ⑤바른 생계(正命), ⑥바른 노력(正精進), ⑦바른 알아차림(正念), ⑧바른 몰입(正定) 등입니다. 벗이여, 8정도는 훌륭합니다. 이러한 8정도는 열반에 이르는 훌륭한 길입니다.”


요컨대 초기불교에서의 열반이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3독심(三毒心), 즉 부녈 망상 번뇌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상태를 의미한다. 열반을 성취하는 길은 4성제(四聖諦) 중 멸성제(滅聖諦)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도성제(道聖諦), 즉 열반은 8정도(八正道)를 통해서 성취되는 구조로 제시된다. 초기불교에서 열반은 2가지 형태로 제시된다. 즉 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 sopadhiśeṣa-nirvāṇa)과 무여열반(無餘涅槃, anupadhiśeṣa-nirvāṇa)으로 구분된다. ①유여열반은 불교적 수행의 궁극적 실천 목표로서 모든 분별 망상 번뇌가 완전히 꺼진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②무여열반은 반열반(般涅槃, parinirvāṇa)이라고도 하는데, 이 세상에서 생명이 다하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윤회를 반복하지 않는 완전한 열반으로 해석된다.


한편 열반과 관련하여 ‘디가니카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 四聖諦)를 터득하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윤회의 수레바퀴라는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비구들이여, 이제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고성제 苦聖諦)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이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집성제 集聖諦)와 괴로움이 소멸함의 성스러운 진리(멸성제 滅聖諦)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진리(도성제 道聖諦)를 모두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存在)의 갈애가 끊어지고 존재로 이끄는 통로가 사라졌으며 다시 태어남이 존재하지 않느니라."


결국 초기불교나 아비달마불교에서의 열반은 자기구제적인 측면에서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이를 달성한 사람을 아라한이라 부른다. 반면에 대승불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살(菩薩)이 제시되는데. 대승적인 입장에서는 자기구제적인 측면에서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의 길을 소승(小乘)이라 칭한다. 대승불교의 보살은 자기구제적인 열반을 추구하기보다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즉 생사에도 물들지 않고 열반에도 머무르지 않는 경지인 자리이타적인 보살행을 가장 이상적인 실천목표로 제시한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