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쏘는 화살
상에 머물러 하는 보시는 천상에 태어날 복은 되지만
그같은 보시는 마치 하늘을 향해 쏘는 화살과 같아서
위로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땅에 떨어지듯
상에 집착해 보시하는 사람의 내생은 여의치 못하다.
그 같은 보시는 어찌 무위의 실상문으로 한번 건너뛰어
단번에 곧바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과 같겠는가.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주상보시생천복 유여앙전사허공 세력진전환추
招得來生不如意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초득래생불여의 쟁사무위실상문 일초직입여래지
- 증도가(證道歌)
사람들 대부분은 복 짓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복 많이 지어라”, “복 많이 받아라” 라는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복주머니나 복조리까지 오고 간다. 사람이 사는 데 그만큼 복이 중요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불교 수행을 하는 입장이 되면 복의 뜻은 달라진다. 유루복(有漏福)은 삼생의 원수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면 복을 짓느라고 한 생을 허비하고, 다음 생에는 그 복을 받느라고 또 한 생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한 생은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고 하여 현재의 삶보다도 더욱 몹쓸 곳에 떨어져 역시 마음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래서 진정한 수행자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가난한 것이 오히려 마음공부하기에 훨씬 좋다는 주장을 한다.
복이란 대부분이 밑 빠진 독과 같은 유루복이다. 왜 그런가 하면 상(相)에 집착하여 짓는 복이기 때문이다. 『증도가』의 영가(永嘉) 스님의 말씀처럼 상(相)에 머물러, 집착해서 짓는 복은 마치 하늘을 향해 쏘는 화살과 같아서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땅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상에 집착해 하는 보시는 내생의 삶이 여의치 못함을 불러온다는 말은 이러한 뜻이다. 복진타락하면 지금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을 만나게 된다. 복이 깨달은 사람의 눈에 이렇게 보인다면 그와 같은 유루의 복을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복을 지으려면 변하지 않고 새지 않는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한다.
불교의 진정한 가르침은 무위(無爲)의 문(門)이며, 실상(實相)의 문(門)이며, 텅~빈 공의 문(空門)이다. 무위, 실상, 공이기 때문에 어떤 공덕을 쌓거나 수행을 쌓거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복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눈을 뜨면 끝이다. 그야말로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다. 불교는 이렇다. 이 외에는 모두가 가짜고 거품이고 방편이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란 무엇인가. 대부분 수행자들이 생각하는 수행관은 복을 짓거나, 공덕을 짓거나, 참선, 염불, 독경, 주력, 참회, 절 등등 육도만행과 팔만사천 방편문을 다 닦아서 앞으로 올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노래인 증도가의 입장은 다르다. 지금은 없는 모습, 미래에 올 가상의 자신의 모습은 모두가 허상이다. 유위며 조작이다.
여래의 경지란 조작이나 미래에 올 허상이 아니다. 지금은 없으나 미래에 올 그 무엇도 아니다. 도(道)란 어느 한 순간도 나 자신을 떠나 있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당장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숨 쉬고, 알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부르면 대답하고, 꼬집으면 아픈 줄 아는 그 자체만이 진실(진리, 부처, 깨달음, 법, 본래의 나)이고 그것만이 나의 당체(當體)다. 이 사실을 알면 다 된 것이다.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 없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1초도 걸리지 않으며 촌보도 옮기지 않는 자리가 나의 당체, 텅~빈 바탕 자리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다.
불교는 이렇게 간단 명료하다. 가짜만이 복잡하고 장황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도 가짜를 설명할 때는 보통의 상인들처럼 설명이 길다. 상대의 눈치를 본다. 근기를 저울질해서 설법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진짜를 내어 놓을 때는 그렇지 않다.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고는 끝이다. 알면 알고 모르면 그뿐이다. 절대로 눈치를 살피는 일은 없다.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는 것으로 법문 끝이다. 고함을 지르거나 몽둥이를 한 번 휘두르면 더 이상은 없다. 진짜는 이렇게 설명이 없다. 간단 명료하다. 이것이 실상이며 무위며 공인 여래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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