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세계
나는 그대들이 왜 이 세상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 아마 그대들 또한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사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대해 ‘왜?’
라고 자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나 자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삶을
덧없이 낭비한다. 그러므로 사람들 모두가 목적도 모르고 이 세상 여기에 왔다고 해도 그것은 새삼스
러울 것이 없다.
어쩌면 몇몇 사람은 그들이 왜 이 세상 여기에 왔는지 그 목적을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사람들은 깊은 잠을 자는 것과 같은 무의식(無意識)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살아가
는데 익숙하다. 걷고, 서고, 앉고, 눕고, 먹고, 자고, 보고, 듣고, 촉감을 느끼고, 냄새 맡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무의식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인 '이것'을 보지 못하고, 명확하게 말해진
'이것'을 듣지 못한다. 온 세상을 감싸고 있는 분명한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왜 이
세상 여기에 온 이유도 모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이 세상 여기에 왔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게 무의식
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
여기 이자리에 있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문은 수많은 생 동안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노력한 후에야 지복, 평화,
진리, 신, 또 니르바나(해탈 열반)라는 방편상의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를 힐끗 엿보게 된다. 그 세계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그건 그대의 자유이다. 사실, 그것들 이름이 가리키는 것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완벽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만 남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한 착각이다. 그 세계를 본 사람들은 후에 그들이 그 세계를 본
것이 새로운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세계 거기엔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으며 휴식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세계를 발견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일단 그 세계를 발견한 후에는 다른 사람들
에게도 내가 알게 된 그 세계를 알려주려고 사방으로 달려간다. 그렇지 않았다면 붓다나 예수가 여러
곳을 돌아다녔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을 초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궁극의 세계
를 본 후에는 붓다나 예수와 같이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모든 것은 그대가 붓다나 예수가 깨달은 세계, 궁극의 세계, 그 세계를
발견한 후에는 그대에게 즐거움과 평화와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
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더 즐겁고 평화롭고 행복한 일이다. 깨달음의 세계, 무한한 행복의 세계, 또는
신의 세계에 들어가 축복을 맛본 사람은 그같은 깨달음의 세계, 무한한 행복의 세계, 신의 세계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중에서 by오아시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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