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살아있는 사람이 부처다

장백산-1 2019. 3. 6. 22:29

살아있는 사람이 부처다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생멸이 없는가. 만약 진실로 생멸이 없으면 불생멸도 없다. 

나무로 만든 사람을 불러서 물어보라 부처가 되기 위해서 공을 들이면 언제 부처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誰無念誰無生滅  若實無生無不生 (수무념수무생멸  약실무생무불생) 

喚取機關木人問  求佛施功早晩成 (환취기관목인문  구불시공조만성) 


-『증도가』- 


증도가(證道歌)는 깨달음의 노래다.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스님이 『유마경』을 보다가 

깨닫고는 조계산에 계신 6조 혜능 스님에게 가서 그의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

에 대한 내용을 증도가라는 노래로 지어서 천하에 알렸다. 그 후 수많은 조사들이 모두 증도가를 

수지 독송하며 법문이나 저술에 많이 인용하였다


흔히 일반적인 불교 상식으로 부처가 되려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생각, 분별 망상 번뇌를 제거해서 

무념(無念)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고, 생멸(生滅)이 반복되는 현재의 상태에서 불생불멸(不

生不滅)의 경지를 터득해야 부처가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영가 스님의 말씀은 다르다. 어느 누가 불법의 궁극을 무념(無念)이며 무생(無生)이라 했던가. 

실로 생각이 없고 생멸이 없다면 그것은 나무로 만든 로봇이다. 로봇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부처(佛)가 언제 목석(木石)이던가. 부처(佛)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사람, 즉 부처(佛)는 

생각과 생멸이 활발발하게 작용하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수행 과정을 

거쳐서 생멸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면 생멸만 없는 것이 아니라

불생멸(不生滅)도 없다. 불생멸이 없다는 것은 왕성하게 생멸한다는 뜻이다. 생각이 많고 생멸이 

왕성해야 부처(佛)라는 뜻이다. 


만약 무념(無念)과 무생(無生)이 불교 궁극의 경지라면, 무념 무생은 나무로 만든 로봇과 같은 존재

이니 나무로 만든 로봇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말하고 있다. 수행자들은 무념 무생이 되기 위해서 공을 

들이고 수행을 하며 좌선을 한다.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이른 경지가 나무로 

만든 로봇과 같은 존재라면 로봇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다. 


부처란 본래 저절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임을 알면 그것으로 끝이다. 수행하기 이전부터 사람마다 본래

저절로 갖추고 있는 것이 부처(佛)이며, 그래서 개개인이 가만히 있어도 모두 완전무결한 존재이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 달리 무슨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부처와 어긋나는 것이다. 이것이 불자의 견해며 선자의 안목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