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4. 모든 것은 빛의 얼룩으로 화(化)하고
이제 다시 처음에 장을 벌였던 '밤 하늘'로 돌아갑시다. 밤 하늘에 반짝이는 그 숱한 별들 가운데는 분명히 몇십 '광년'(光年)에서부터, 몇백 광년 더 나아가서는 몇백만 광년 떨어진 데 있는 별들까지, 무수히 많은 별들이 어울려서 끝날 줄 모르는 장대한 원무(圓舞)를 밤 하늘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빛은 초속 300,000㎞라는 어마어마한 속도인데 1광년은 허공(虛空) 속을 직진(直進)한 '빛'이 1년 동안 통과한 거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300,000㎞/sec라는 빛의 속도는 1초 동안에 자그마치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속도니까, 이런 속도로 1년 내내 허공 가운데를 직진해서 지구로 온다면 그 거리가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상상이 됩니까? ···
혹시 여기, 숫자 알레르기 있는 사람 없어요? 혹시 그렇더라도 안심하세요. 여기서 앞으로 제가 다루는 숫자는 그 숫자 알레르기 증세뿐만 아니라, 여러분 마음 속의 온갖 묵은 체증까지를 말끔히 씻어내 줄 테니, 속는 셈치고 괜히 마음을 졸이지 마세요.
300,000km×60초×60분×24시간×365일 이것이 곧 '빛'이 일 년 동안 달리는 거리입니다. 즉 1'광년'이죠. 이 1광년의 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속도감각으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거리 아닙니까? 이쯤에서부터 인간의 인식작용은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즉 '지금'이니, '여기'니, '이것'이니 하는 단어들 이른바 한정적이고 주관적인 용어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그야말로 '빈 말'로 퇴화해 버리면서, 인간의 인식작용은 비로소 한계(限界)가 지어진틀'을 벗어나, 본연(本然)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맞습니다. 이 말이 갖는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이 말이 갖는 의미는 여러분이 갈망하는 그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입니다.이'깨달음'의'순간'은 300,000㎞/sec라는 빛의 엄청난 속도가 바로 '정지상태'와 다르지 않은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어지러웠던 의식(意識)'이 반전해서 지혜'(智慧)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혹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 '여기'서 '내'가 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다는 건 과연 무슨 뜻일까? 별 희한한 질문을 다한다는 표정들이군요. 그런데 그런 질문이 사실은 희한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학(光學) 지식에 의하면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별>은, 사실은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이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동안을 초속 300,000㎞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허공 속을 달려온 끝에 바로 지금 막 우리들 눈의 망막에 와 닿은 겁니다. 예민한 사람이면 이 말을 듣는 순간, '지금'이라는 말의 입지가 매우 위태롭게 흔들리는 걸 느낄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나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은 실감이 잘 나지 않을 테니까, 가령, 지구에서 50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 있다고 가정(假定)합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은 자그마치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을 지금 여기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별'이 '지금 현재'까지도 원래 그 자리에 아직 그냥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한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지금 현재 별을 멀쩡하게 보고 있으면서도 그 별이 거기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가 없다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50년 후까지 기다려야 할 판입니다. 그리고 설사 50년 후에 그 별에 대한 무슨 소식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소식은 이미 50년 전의 묵은 소식일 테니,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건 완전히 <'제3의 손'으로 '허공꽃'을 만지는 격>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흔히 어떤 상황을 글로 표현할 때, 그 글의 기본 골격을 세우는 데 사용하는 육하원칙(六何原則)이있습니다. 즉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별의 경우엔 '지금'이라고 하려니, 도무지 '지금'이라고 딱히 특정할만한 시점(時點)을 정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 대체 '지금'이 없으면 '먼저'와 '나중'을 어떻게 분간할 수 있습니까? '지금'도 없고, '먼저'도 '나중'도 없다면, '시간'이라는 것에서 도대체 '과거' '현재' '미래'를 빼고 나면 뭐가 남겠어요? 졸지에 '시간'이라는 것이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데, 이것이 어찌 미증유(未曾有 : 아직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의 큰 일이 아닙니까?
더구나 그 별이 지금도 원래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도무지 알 길이 없다면, 이야말로 갈수록 태산 아닙니까? 육하원칙 중 어느 하나도 들이댈 게 없으니 말입니다. 텅~트인 허공(虛空)에는 무엇 하나 붙일 데가 없으니, 그렇다면 우리가 별을 본 경험을 무슨 수로,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어요? 과연 '별'을 보기는 본 걸까요? 우리들은 과연 지금 무엇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이 바로 「말 길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헤아릴 곳이 없어졌다(언어도단 심행멸처 言語道斷 心行處滅)」는 말이 문득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에 누가 억지로 입을 틀어막고 침묵을 지키며, 누가 억지로 마음을 찍어누르면서 '멍청한 선'(치선, 癡禪)을 고집하겠습니까?
허망한 의식, 생각, 마음, 즉, 망식(妄識)이 이 세상에 미혹하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 모두가 실제로 있는 듯 해서 세상 속을 벗어날 길이 없고, 반면에 이 세상 모든 것의 성품(性品)이 텅~빈 것임을 깨달아서 마음을 돌이키면, 지금처럼 보고 듣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아무 일이 없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인 채로 항상 적멸(寂滅)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인연(因緣) 따라 왔다가 인연(因緣) 따라 사라지는 현상세계, 현실세상에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제로 있는 듯 처럼 보여서 걸음걸음마다 장애가 되고, 반면에 장소도 없고 방향도 없는 '법계(法界), 허공계(虛空界'에서 보면 온 종일 이 세상 모든 것, 현상들을 굴려도 <본래 없는 것>을 굴리는 것이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항상 여여(如如)하고 진실한 것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범천(梵天)이 문수보살에게 말했습니다. 『어지신 분이 말씀하신 바는 모두가 진실입니다.』라고 하니, 이에 문수보살이 대답하기를, 『선남자여, '온갖 말'은 모두가 진실이니라.』하니 범천이 다시 묻기를 『'허망한 말'도 진실입니까?』 문수보살이 답하기를『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말은 허망하여 장소도 없고, 방향도 없기 때문이니 만약 법(法)이 허망하여 장소도 없고, 방향도 없으면, 곧 이것은 '진실'이니라>. 왜냐하면, 온갖 말은 '여래(如來)의 말이며 여여(如如)함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말을 사용해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말한 바가 없기 때문에 말할 것이 있는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 현정선원, 대우거사님의 <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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