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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장백산-1 2020. 5. 19. 11:42

사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거의 없다  - - 법상스님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봄' '본다' '보는 행위'는 과거의 일도 아니고, 지식과 관련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데는 과거의 경험정보도 지식도 필요하지 

않고, 학력도 필요 없으며, 교양도 필요 없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데는 많은 

경험에 따른 정보, 노하우, 수준 높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을 여러 번 보고 배워야지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더 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고 투명하며 전혀 과거에 습득한 경험정보나 지식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바라봄은 

제일 처음의 '봄'이 더 깊다. 어제 본 대상을 다시 보는 마음과 난생 처음으로 전혀 새로운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결코 같은 마음일 수가 없다. '처음'이라는 말의 가치, '처음처럼'이라는 의미가 

갖는 가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심오하고 더 넓고 광활하다.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하여 첫 번째 

일으킨 깨닫겠다는 마음이 가장 순수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그 처음 마음이 곧바로 정각(깨달음)을 

이룬다고 했다. 그같은 처음 일으킨 마음은 경험도 지식도 정보도 과거의 기억도 끼어들지 않고 오염

되지 않은 티없이 순수하고 맑은 태초의 새벽처럼 선명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든 일상에서든 사람들이 전혀 새로운 어떤 대상을 처음으로 볼 때의 그 느낌은 어떤가. 난생

처음으로 보는 그 눈은 어린아기의 순수하고도 천진스런 맑은 호수 같은 시선이다. 그같은 시선에는 

전혀 때가 끼어 있지 않다. 그 어떤 정보와 지식, 과거로 오염되어 있지 않다. 그저 그냥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새로운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고 진실하게 볼 뿐이다. 그같은 '봄'에는 그 어떠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이 없고 좋다 싫다는 차별도 없다. 보는 대상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과거에 그 대상을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같은 수수한 바라봄의 시선은 

'오직 볼 뿐!'이다. 그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러니 어찌 그 대상을 보는데 시비 분별 차별

비교 판단 해석이 개입될 수 있겠는가.

 

'오직 아무것도 모르는 시선' 그것이야말로 투명하고 지혜롭다. 왜 그런가. 사실 우리는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전체적으로 다 알지 못한다. 하물며 

어떻게 내 부모,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내 오랜 친구의 마음을 전체적으로 완전히 알 수 있겠는가. 

 

상대의 마음을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알 수가 없다. 사실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아는 것이

없는 그같은 시선이야말로 진실하고 투명하며 올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