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공간 - - 몽지&릴라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존재와 상관없이 동일성(同一性)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내가 존재한다,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나의 상황이 다양하게 변하고
세상의 상황이 다양하게 변하더라도 나와 세상은 객관성을 가진 속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내가 존재한다고 여길 때 그 의식의 밑바탕을 보면 이렇다. 나는 오래전에 부모에게서 태어나
일정한 시간(時間)을 많은 공간(空間) 속에서 살아왔다. 물론 내 겉모습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나의
고유한 속성은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존재는 동일성이며 이 동일성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존재의 의미이다.
그런데 태어났다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 태어났다면 없다가 태어났는가? 아니면 있는데 그 동일성을
유지하며 태어났는가? 없다가 태어났다면 없는 데서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동일성을 유지고 있다가 나왔다면 그것은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났다는 것은 그 말 자체에
모순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태어났다고 믿는다.
내가 시간 속에서 동일성을 유지한다고 믿는 것도 문제가 있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시간이라는
조건 속에 놓여서는 안 된다. 시간은 곧 대상의 변화이다. 밥을 먹기 전과 밥을 먹고 난 후 사이가 시간
이다. 해가 뜰 때와 질 때까지 사이가 시간이다. 시간이란 말 그대로 동일성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생각에서 떠올리는 시간은 곧 변화, 동일성의 부정이다.
공간 속의 동일성도 문제가 있다. 공간은 공간 속 사물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사물이 놓인 자리가
공간이기에 사물이 없을 때는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이 있어야
공간이 된다. 사물이 없으면 공간이 있을 수 없고, 공간이 없으면 사물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공간
속에 놓인 동일성을 갖춘 사물은 공간과 사물이 서로 조건적인 관계이지 귀속의 관계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 속을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명확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허술한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착각(錯覺)이다. 나, 남, 세상, 깨달음, 행복 등등의 개념(槪念)은 전부 다
사람들의 관념과 지각된 것들이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허망하고 허무한 의식(意識)일 뿐이다.
사람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 무엇이라고 여기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의식이 그렇게 여기고 싶은 것이다.
실체가 없는 허무하고 허망한 의식을 끌어모아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여러 가지 것들을 고정화
(固定化)시킨다. 이것이 고정관념(固定觀念)이다. 그러나 고정관념(固定觀念)은 실체(實體)가 아니다.
고정관념(固定觀念)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일어나는 감각과 감정과 생각을 끌어모은
허망한 의식을 항상 있는 나로 여기면서 변주되어 나타나는 자기보존 의식의 다양한 투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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