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죽음보다는 삶을 죽이는 잘못 다스려진 마음이 더 큰 재앙이다.

장백산-1 2021. 3. 21. 22:50

죽음보다는 삶을 죽이는 잘못 다스려진 마음이 더 큰 재앙이다.  - 법구경 42번 게송


(해석 1) "적과 적이 서로 싸우고, 원수와 원수가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운다 해도
잘못 다스려진 마음이 저지르는 재앙보다는 그 영향이 적을 것이다."

(해석 2) "적과 적끼리 원수와 원수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고 헐뜯으며 저주를 퍼붓는다 해도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집착을 하는 마음과 악에 물든 삿된 마음이 주는 재앙에는 미치지 못한다."

- - - - - - - - -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한 마을에 머무실 때, 소를 키우는 목동인 난다는 가끔씩 부처님이 말씀하는 법문(法門)을 듣곤 했다. 한 번은 신심이 일어나 부처님을 집으로 초청해 공양을 올리고자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아직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난다의 청을 거절했다. 그 후 세월이 흐른 뒤 부처님께서는 이제 난다가 바른 불법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난다의 집을 스스로 방문하신다. 난다는 부처님의 방문이 너무 기쁜 나머지 온갖 음식으로 7일간 극진히 공양 올렸고, 마지막 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수다원과를 증득하였다.

수다원과를 증득한 난다는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먼 곳까지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난다에게 원한(怨恨)을 품고있었던 사냥꾼의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에 부처님의 일부 제자들이 부처님께 ‘만약 부처님께서 난다에게 찾아가지 않으셨더라면 난다가 죽지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하고 여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난다의 집에 가든 가지 않든, 난다가 동서남북 어디에 있든, 자신이 스스로 지은 업(業)에서 오는 죽음은 피할 수 없다’고 하시며, 난다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행여 그가 죽기 전까지 잘목 다스려진 마음인 집착심과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타락에 물든 마음과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악에 물든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임을 제자들에게 설하셨다.

원한을 품은 적이나 원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재앙보다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타락하고 집착하는 마음과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악하고 삿된 마음을 가진 채 죽는 것이 더 큰 재앙이다. 부처님께서는 난다가 수다원과를 증득할 것임을 간파하기도 하셨지만, 난다의 죽음도 미리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난다의 죽음에 앞서 난다를 일깨워주기 위해 스스로 난나를 찾아가셨던 것이다. 만약 난다가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 이기적인 마음, 아집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난다의 죽음을 예견한 부처님도 도저히 난다를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난다를 찾아가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하고, 난다를 깨닫게 했더라도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부처님이 난다를 방문했기 때문에 난다가 사냥끈이 쏜 화살을 맞아 죽었다고 원망했을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일부 제자들은 위에서 보듯이 부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은 사소한 행위(생각, 말, 행동)일지라도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행위를 하신다. 그 이유와 목적은 바로 중생들을 일깨워주고 깨닫게 해주기 위한 ‘자비심(慈悲心)’이다. 부처님은 오직 난다가 죽기 전에 깨닫게 해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일 뿐, 난다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에게 원망과 미움과 난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일부 제자들이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난다의 죽음으로 인해 부처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제자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부처님께서 난다를 죽게 한 장본인이라고 말하는 제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난다를 일깨우고자 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 부처님을 움직이게 한 것일 뿐이다.

부처님은 적과 적끼리 원수와 원수끼리 아무리 헐뜯으며 저주를 퍼 붓고 죽이고 죽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잘못 다스려진 집착하는 마음, 잘못 다스려진 악에 물든 마음이 주는 재앙에는 미치지 못함을 설하신다. 비록 난다는 원한을 품은 원수인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죽음보다 더 큰 재앙은 난다의 마음에 물든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집착하는 마음과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악에 물든 마음이다. 만약 난다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한들 마음속에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집착하는 마음과 잘못 다스려진 악에 물든 사악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헐뜯으며 산다면 그런 삶은 차라리 부처님 법문을 듣고 깨달은 뒤에 죽음을 당하는 것만 못하다.

죽음은 전혀 재앙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를 살려주기 위한 우주법계의 계획일 뿐이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경지, 즉 생(生)과 사(死)가 하나인 경지(생사일여/生死一如)에서 본다면 죽음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 지어낸 업장(業障)을 녹여주기 위한 우주법계의 자비로운 계획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니 우주법계의 더 큰 차원의 이치에서 본다면 죽음은 우주적인 계획의 미미한 부분일 뿐이고, 죽음은 우리를 고통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우리를 도와서 깨닫게 하기 위한 계획일 뿐이다.

죽음은 내 스스로가 내린 결론이다. 죽음은 나 자신과 우주가 합작해 낸 계획이며, 내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 누가, 즉 절대자나 부처나 하나님이 억지로 나를 죽이려고 한 짓은 아니다. 깊은 영혼의 차원에서 보면 내 삶의 모든 부분은 결국 내가 만들고, 내 스스로의 동의와 계획에 의해 창조(創造)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정말 위험한 재앙은 죽음이 아닌 마음 속에 맺혀있는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원한과 증오, 싸움과 저주, 집착심과 악에 물든 마음, 분별하는 마음이다. 죽음은 아름다운 자연(自然)의 순리(順理)의 모습이지만, 질못 다스려진 마음인 원망하는 마음과 증오심, 싸움과 저주, 집착심과 악에 오염된 마음 등은 자연(自然)의 순리(順理)를 거스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잘못 다스려진 마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원한과 증오, 싸움과 저주, 집착심과 악에 오염된 마음 등을 마음 속에 품으면서도 죽음은 멀리하려 들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죽음은 전혀 멀리할 재앙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오히려 마음속에 품은 삿된 재앙의 씨앗들, 즉 잘못 다스려진 마음인 원한과 증오심, 싸움과 저주, 집착심과 악에 오염된 마음, 분별심 등이야말로 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씨앗들임을 분명히 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신 자신의 매 순간의 삶을 죽이고 있는 마음속에 심은 재앙의 씨았들을 잘 살펴보라.

-글쓴이 : 법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