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공(空)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백산-1 2021. 4. 19. 14:24

공(空)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성철스님


대승불교(大乘佛敎)나 근본불교(根本佛敎)의 공통(共通)된 사상(思想) 중 하나가 무아(無我)사상, 공(空)사상입니다. 대승불교의 중도일승(中道一乘)이라든가 일승원교(一乘圓敎)라든가 하는 이론(理論)들은 모두 공사상(空思想)을 밑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전반적인 인도사상계(印度思想界)에서도 불교만큼 철두철미하게 공사상(空思想)을 주장하는 종교(宗敎)나 철학(哲學)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하게 공(空)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공(空)은 단멸공(斷滅空)이지 중도공(中道空)이 아닙니다. 공(空)이 아주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질(物質)을 뜻하는 색(色)이 멸(滅)해서 아무것도 없다는 색멸공(色滅空)을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근본불교와 대승불교는 물론 심지어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색(色)의 자성(自性)이 공(空)하다는 색성공(色性空)을 말하는 것입니다. 색(色) 이대로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색(色)의 자성(自性)이 본래 공(空)하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비유를 써서 공(空)을 바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람(風)의 모양을 볼 수도없고  바람을 붙잡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바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바람(風)과 마찬가지로 공(空)은 그 모양을 볼 수는 없지만 결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흔히들 무심(無心)을 ‘마음이 없다’, 또 무념(無念)을 ‘생각이 없다’고 해석하였는데,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고만 하면 그것은 단견(斷見)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무심(無心)은 ‘없는(無) 마음(心)’, 무념(無念)은 ‘없는(無) 생각(念)’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일체(一切)의 진로(進路)가 없고 두 가지 상(相)이 없는 마음(心) 생각(念)이니 이 없는 마음(心) 없는 생각(念)은 진여(眞如)의 작용(作用)입니다.

다시 말해, 무심(無心) 무념(無念)은 양변(兩邊)이 떨어진 진여(眞如)의 마음(心) 생각(念)이니, 무념(無念) 무심(無心) 이것이 실지로 쌍차쌍조(雙遮雙照)한 중도정각(中道正覺)입니다. 그러니 무념(無念) 무심(無心)이 진여(眞如)입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무념(無念) 무심(無心)을 으뜸(宗)으로 삼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심(無心) 무념(無念) 이라고 아무 생각도 없는 텅~빈 단멸공(斷滅空)이 아니고 모든 두 가지 상(相)이 다 떨어진 동시(同時)에 진여(眞如)의 끝이 없는 신묘한 작용, 즉 묘용(妙用)이 무념(無念) 무심(無心)인 진여(眞如) 거기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 中에서-   출처: 학림사 오등선원 지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