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헛것입니다. - - 혜암스님
온갖 모든 착한 일을 하는 것도 다 헛것이요, 모든 악한 일을 하는 것도 역시 헛것이더라. 선(善)이나 악(惡)이나 모두 몽중사(夢中事 :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라고, 착한 일과 나쁜 일이 모두 다 허망한 꿈 속 일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났다 사라져버리는 것들은 다 헛것들이니, 우리가 참 허망한 세상을 허망하게살고 있는 겁니다.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소식이 바로 우리들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요, 본 고향 살림살이 인데, 일어났다 사라져버리는 생각에 의지해 살려니까 이 세상 온갖 것들이 전부 헛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헛것입니다.
그러니 부부가 함께 살 때도 그 마음으로 살았고, 부자간 모녀간의 생활도 그 마음을 의지해서 살았지 다른 마음을 의지해서 산적은 꿈에도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착하다'는 말만 있는 것이지, '착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일로 잘하려고 하는 사람은 똥으로 황금을, 흙으로 백옥을 만들려는 사람입니다. 했다는 생각을 내면 죄가 되기 때문에 세상에 살면서도 사는 것 없이 살고, 먹어도 먹는 것 없이 먹고, 가도 가는 것 없이 가고, 말해야 말하는 것 없이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재주부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재주를 부리고 싶어하고 똑똑한 척 하고 싶어하면서 삽니다. 이런 병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불법(佛法)은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없이, 복(福)을 지어도 복을 지은 것이 없이 멋지게 살라는 말입니다. 복을 지었다는 생각을 내면 괴로움을 만드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자살법과 같습니다.
상(相)을 내지 마십시오. 절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그냥 절에 돈 많이 내고 현판에 자기 이름을 올려 비석을 써 달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손해나는 일인줄을 모르고 그럽니다. 이런 것을 하루 빨리 비워버려야 해요. 가르쳐 줘도 믿지 않고, 내 축원이 빠졌다느니 그런 말을 합니다.
이는 내 말이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불법이 그리 옹졸한 것이면 벌써 없어졌고 부처님도 스님들도 쫓겨 났을 것입니다. 말 하지 않는 가운데 다 통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마음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고, 폼으로 하는 일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들과 다 통합니다. 그렇게 밝은 세상인데 믿지 않고 또한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절에 와서도 죄를 짓고 갑니다.
우리의 몸은 인연따라 죄를 받는 감옥인데, 며칠이나 갈 것입니까. 육신은 깨치기 전에는 원수요, 도둑놈입니다. 그러나 깨친 뒤에는 바로 부처님 몸(佛身)으로 변하기 때문에 원수이면서도 미워할 물건이 못됩니다. 몸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몸이 있기 때문에 공부 할 일이 생겨 났으므로 너무 미워하고 원수라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몸을 이용하여 부처가 되니까요.
집을 지을 때 나무, 쇠, 물, 돌맹이들로 집을 지었지만 각각의 재료들을 본디 있던 곳으로 보내버리면 아무 것도 남지 않듯 우리 몸도 이와 같습니다.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요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본디 없는 것입니다. 허공에 구름이 있는 것 같아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없던 것이 있다가 또 없어지잖아요.
몸이 있지만, 몸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벌써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몸(色) 그대로가 공(空)입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입니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니까 죄를 짓고 고생을 합니다. 그러므로 눈을 의지하고 살면 안 됩니다.
법문(法門)도 말을 따라가면 법이 죽어 버려요. 마음이 살아있는 법문이므로 말을 따라가면 분별망상(分別妄想)으로 말미암아 법이 죽어 버립니다. 공부를 공부답게 하지 않고 말로 공부를 삼으려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르쳐 줘도 부끄러운 생각도 없이, '이것이 도(道) 아니요?' 하기도 하고, 또 글을 써서 가지고 오기도 합니다. 도(道)는 절대 네가 있고 내가 있고, 하나가 있고 둘이 있는 것이 아닌데, 도(道)옆에 가지도 못한 것을 만들어 써 와서 '이것 아니오?' 그럽니다. '아니다' 하면 그 다음날 또 써 가지고 옵니다.
어떤 사람이 유리병에 오리 새끼를 넣어 길렀답니다. 오리 새끼가 먹이를 먹고 커서 병에 꽉 차 버렸습니다. 오리가 상하지 않고 유리병도 깨지 않고 오리를 꺼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대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유명한 남전스님이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문제를 낸 사람인 육긍대사를 불렀습니다.
남전스님 왈 "육긍대사"
육긍대사 왈 "네"
남전스님 왈 "오리가 나오지 않았는가"
이렇게 법(法)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하면 유리병을 깨지 않고 오리를 꺼낼까, 말을 따라 만년을 생각해도 대답을 못합니다. 불법의 거량은 말을 따라가면 속고, 어긋나 버려요. 나 바깥에는 법(法)이 없으므로 나한테서 법(法)이 나와야 합니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어느 처사에게 이 문제를 냈더니, 한 십오 일 만에 '알았노라' 하고 와서 대답을 하는데 엉터리였습니다. 이리 저리 억만 년을 따져도 말을 따라가면 법이 죽습니다. 진리(眞理)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분별심으로 따져서는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나 외에는 부처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나 한테 돌아와야 해요. 나는 큰 절에서 법문을 하면서도, 법문처럼 싱거운 것이 없는데 또 이렇게 하기 싫은 법문을 한다고 그럽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필요하고 귀중한 것 같지만, 참말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법문 즉 말이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지옥을 못 면합니다. 화두를 깨달은 것에서 정답이 나옵니다. 말로 대답하는 것은 부처님이 대답을 해도 정답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말로 거량하고 기웃거립니다. 깨달으면 눈을 감고도 천하의 일을 다 알아 버립니다. 하나만 알고 둘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를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 만일 경계(相)가 없어질 것 같으면 마음도 따라서 없어지는 것이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보는 데 따라 마음이 생기고, 듣는 데 따라 마음이 생기고, 냄새나는 데 따라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을 경계(境界, 相)라고 합니다. 여섯 알음알이 눈, 귀, 코, 혀, 몸뚱이, 분별망상의 알음알이는 경계, 헛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 따라오지 않는 답니다.
산 공부가 따로 있어요. 참선이 산 공부입니다.우리는 전부 죽는 일만 하고 살고 있습니다. 몸만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섯가지의 알음알이도 허망한 경계이기 때문에 죽을 때 따라 오지 못합니다. 보는 데 따라 마음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맛있는 것을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고, 호랑이를 보면 무서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헛것입니다.
파도는 이름도 헛것이고 모양도 헛것 아닙니까. 환경에 의해 파도라는 이름이 생겨났을 뿐이지 그 이름이 바닷물입니까? 바닷물인 동시에 헛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런 헛것에 속아 살고 있습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마누라고 남편이고 부모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헛것입니다.
그러니 귀중한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살길을 찾아야합니다. 내가 공부를 해 다생의 많은 부모 형제를 도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모 형제만 부모 형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나왔다 없어지는 것이 내 생활이 아닙니다. 끝이 없는 세상에서 나와 앞으로도 끝이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이 세상의 부모, 아들딸이 문제가 아닙니다. 좀 크게, 널리 생각해요.
그 전생의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내가 성불하기 전에는 아들딸이 있을 모양인데, 얼마나 고생을 시키려고 공부를 안 합니까. 귀중한 때를 만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탈선을 하더라도 나는 바른 길을 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 일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지푸라기 값밖에 안되고 물거품 값도 못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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