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 위해 출세 대신 반독재 투쟁의 길 걸은 사람 "
한겨레, 22.02.03. 18:56 수정 2022.02.03. 19:06
[가신이의 발자취] 비운의 천재 이을호를 보내며
맨왼쪽이 고인이며 필자는 맨오른쪽이다. 2015년 민청련동지회 야유회에서 찍었다. 김성환 회장 제공
초등 취학 전 논어·맹자 고서 독파인간의 삶 탐구하려 철학과로 전과민청련 이론가 시절 ‘천재성’ 발휘남영동에서 극심한 고문 시달리고밤마다 동지 비명에 정신질환 증세
독재 체제 청산, 여전히 남은 과제
2922년 1월 26일 ‘비운의 천재’ 이을호 동지를 잃었다. ‘우리’는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약칭 민청련 활동을 함께한 이들이다.
우리가 이을호를 감히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조선시대가 아닌 1955년에 태어났음에도 초등학교 취학 이전에 이미 논어, 맹자와 같은 중국 고서를 독파했으며, 중학교를 건너뛰고 검정고시를 거쳐 전라북도 명문인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졸업할 때까지 성적이 줄곧 전교 수석이었고 심지어 2등과의 점수 평균이 늘 10점 차 이상이어서 요즘 용어로 그야말로 ‘넘사벽’의 존재였다. 그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당시 최고 수재들이 지망하는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무난하게 합격한다. 그러나 그는 법기술을 연마해 판사나 검사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더 천착하기 위해 인문대학 철학과로 전과한다. 과연 천재다운 면모다
천재의 눈에 비친 박정희 유신독재는 어땠을까. 인간다움과 양립할 수 없는 모순 그 자체였다. 그런 체제에 눈 감고 연구실에 처박혀 연구나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기꺼이 나섰다. 박정희 체제가 무너지니 그보다 더한 전두환 독재가 등장했다. 젊은이들이 몸을 던져 저항할 때 그가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민청련 동지가 되었다.
이을호는 자신의 천재성을 민청련 운동 속에서도 발휘했다. 그의 주변 모두가 전두환 독재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 대열은 좀처럼 하나로 뭉쳐지지 않았다. 그는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사색했고 그 끝에 이른바 시엔피(CNP)론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운동 세력 내부에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시민 민주주의(Civil Democracy)를 추구하는 이들과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목표로 하는 민중 민주주의(People Democracy)를 지향하는 이들이 양 극단으로 대립하고 있으며, 그 중간쯤에 분단과 외세 문제를 중시하는 민족 민주주의(National Democracy)가 분포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와 같은 시엔피론은 현상에 대한 분석이자 운동세력이 단결하지 못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을호의 분석이 얼마나 예리했는가는, 그가 시엔피론을 제기한 몇 년 뒤 6월항쟁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시, 엔, 피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분열한 채 출마하여 전두환 후계자 노태우의 당선을 가져온 비극적 현실이 증명했다.
시엔피론은 이을호 개인에게도 비극을 가져다주었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공안기관이 민청련을 파괴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시엔피론을 국가전복음모로 포장했고 그 생산자인 이을호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남산 안기부 조사실로 옮겨다니며 고문에 시달렸다. 자신이 직접 고문을 당하는 것도 괴롭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동지가 당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에 끌려갔을 때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어김없이 복도 끝 515호실에서 새어 나와 복도 전체를 음산하게 울리는 김근태의 숨이 넘어가는 듯한 비명소리. 천재는 정신이 예민하고 신경이 약하기 마련이다. 홀로 독방에 갇혀 그 비명소리를 감내해야 했던 이을호는 아마도 이때쯤부터 정신질환 증세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정신병에 평생 시달린 이을호가 갔다. 먼저 간 김병곤, 이범영, 홍성엽, 김희상, 김근태가 있는 곳으로. 이제 민청련이라는 19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한 세대가 저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세대가 간다고 그 세대가 제기한 문제도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항일 독립운동가 세대가 다 늙어 죽어도 친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여전히 남았고 결국 후배 세대들이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냄으로써 그 과업을 이었다. 민청련 세대는 가도 박정희 전두환 독재체제 청산은 여전히 남은 미완의 과제이다.
김성환 민청련동지회 회장 /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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