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윤석열 정부를 통해 보고 있다
한국사회가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사회의 위기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 무책임. 무도함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런 정부를 낳은 것은 문재인 정부였다. 국민들은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대한민국을 새롭게 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었지만, 제대로 된 개혁과 혁신을 하지 못하고 권력을 내주고 말았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위기가 온다는 것은 역사나 운동경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대한민국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쇄국을 빗장을 연 이후, 국민들은 왕조에서 제국으로, 제국에서 식민지로, 해방이 되고 민주공화국을 만든 이후에도 전쟁과 빈곤, 독재와 민주화, IMF파국과 부활 등 파란만장한 148년을 살아왔다. 세계사에서도 보기 힘든 고달픈 역사였고, 지금도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몰락과 망국의 길로 가지 않고 제3세계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 것은 위기 때마다 나선 시민들의 헌신적인 의지와 노력 때문이었다. 위기는 항상 기득권과 지배층들이 불러왔지만, 이를 버티고 극복한 것은 민초들이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파란만장한 위기를 겪은 이유는 무엇인가? 1인의 왕과 소수의 기득권 집단에게 권력이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이 위에 있다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쓰러지고 말지만, 아래에 있으면 웬만한 충격에도 쓰러지지 않거니와 쓰러져도 금방 일어선다. 오뚝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뚝이의 회복탄력성이 큰 것은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다종다양한 위기에도 망국의 길로 가지 않고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 때마다 민초들이 의병과 독립운동, 근대화와 민주화 등을 통해 선각자들이 자기 몸을 낮은 곳으로 던졌고,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무게중심, 즉 권력이 아래쪽 민초들에게 있을수록 웬만한 충격에 끄떡하지 않고, 충격을 받아도 보란 듯이 회복할 수 있다.
무게중심 이론은 다른 국가에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국민들의 권한이 강한 나라들이다. 발달한 직접민주주의 제도 덕분에 국민들의 직접 헌법이나 법률을 제안할 수 있고, 이를 국민투표를 통해 개정으로 이끌 수도 있다. 외국인에게 스위스 국적을 부여할 지 여부는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주민들이 주민총회에서 결정한다. 왜냐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이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막강한 국민들의 권한 때문에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역동적인 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멀지 않은 대만의 경우에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경험을 가진 대만은 2018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와 경제력에서 대한민국에 뒤쳐졌다. 2006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기관 EIU의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 초기에 20위(2017년), 21위(2018년)을 기록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올라섰지만, 대만은 33위(2017), 32위(2018)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하지만 2018년 대만은 국민들이 직접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는 국민투표법을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대만민주주의의 위상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주요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대만유권자의 1.5%가 동의하면 국민투표를 발의할 있고 유권자의 25%가 찬성하면 정부가 관련 입법을 하고, 국회는 통과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스위스에 비해 불완전한 국민발의-국민투표법이지만, 2018년 한 해에만 일본 후쿠시마 농산물 수입여부 등 10건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2021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역대 가장 높은 17위를 기록했지만, 대만은 국민투표법의 영향으로 북유럽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8위에 올랐다. 올해 발표된 23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22위로 완전한 민주주의 상태에서 겨우 턱걸이를 유지했지만, 대만은 세계TOP10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도 하나가 한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5차 국민행동의 날'에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의회를 통한 숙의하는 시민에게 권한을
스위스처럼 주민과 시민에게 강한 권한을 부여해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당사자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권력을 아래로 내리는, 오뚝이처럼 사회적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스위스 모델을 바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스위스는 알프스 지리가 가지는 독특한 자연환경에다, 500년 동안의 직접민주주의적 전통이 제도적으로 자리잡은 것이기에 역사문화가 다른 나라가 바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서도 스위스식 국민발안 제도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에 국민들도 헌법과 법률 개정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원포인트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됐다. 국회에서 1/2의 동의로 국회발의는 했지만, 개정을 의결할 수 있는 2/3까지는 이르지 못해 개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민사회에서는 헌법에 국민들의 발의조항을 넣자는 개헌안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지만, 현재의 정치구조로는 난망해 보인다. 1987년 같은 혁명적 상황이나 돼야 헌법개정의 가능성이 열릴 듯하다.
차선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시민의회를 통한 방식이다. 시민의회는 국민 모두가 공론장에 참여할 수는 없기에 인구대표성을 고려한 작은공중(mini public)을 구성해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사회적 엘리트·기득권들로 구성된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직접민주주의가 가지는 실현가능성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융복합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위기는 중첩적이고 복잡하지만 제대로 진단하고 극복할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한 사회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는 길을 잃은 지 오래됐다. 정당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고, 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토론과 성숙한 합의를 들어본 지 오래됐다. 한국 사회는 이미 추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고, 빨리 제동을 걸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파국적 상 황 혹은 피를 부르는 혁명적 상황이 오기 전에 시민들에게 권한을 주어 시민적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의회, 어떻게 가동할 수 있을까?
한 사회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윤석열 정부를 통해 보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기관으로 인정받는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 17위에서 22년(28위), 23년(47위)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이미 국민들의 2/3이상이 윤석열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해 사실상 국정마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와 야당은 탄핵을 외치고 있고, 정부와 여당은 국정 방향을 바꾸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남은 2년 반 동안 이전투구를 계속할 경우에 한국사회는 회복하기 힘든 상태에 이를지도 모른다. 더 이상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기성 권력들의 이해관계에서 보다 자유로운 시민들에게 합리적인 토론과 숙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안을 만들 권한을 주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1단계로 무작위 추첨으로 대한민국의 작은 시민의회를 구성하자. 현재 대한민국 유권자가 4000만명 가량이므로 전국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4000명을 선발하자. 여·야가 합의를 통해 선관위에게 추첨식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선관위가 유권자명부를 여야시민사회의 입회하에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유권자중에 0.01%를 선정하면 된다. 4000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들면 8천명, 1만2000명도 합의하면 되겠지만, 비용과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을 고려하면 된다.
2단계로 4000명이 2~400명씩 10~20개의 권역에서 모여서 여야정부의 의견과 해결 방안을 듣고, 전문가들의 진단과 제언도 듣고, 20명씩 소그룹으로 나눠 참여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숙의토론을 하자. 토론의 주제는 먼저 윤석열 정부의 중도하차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니 개선을 전제로 계속 운영하도록 할 것인지,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도하차가 나은 지를 숙의토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론이 나면 세부적인 방향에 대해서도 시민적 합의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시민의회에 참여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말에 진행하되, 적정한 시민수당과 교통비·식비 등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 복잡한 사안은 아니니 몇 차례의 숙의과정을 거치면 합리적 시민안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3단계에서 시민의원들이 충분히 토론을 거치고 나면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하고, 시민의회의 결정안을 국회 및 정부에 전달하는 일이다.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기득권자과 피기득권자의 구별없이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토론과 숙의를 거친 합의안이니 기성의 정치권이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만약 거부하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하도록 하고,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선거를 통해 그 정치세력을 심판하면 될 일이다.
시민의회와 한국 사회의 미래
시민의회를 통해 현재의 난국의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이지만, 자신들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보는 기성의 정치권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설득해야겠지만, 만약 기성의 정치권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의 힘으로 직접 진행해볼 필요가 있다. 예산, 집행기구 등 풀어야 할 문제는 적지 않지만,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모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민의회가 자리잡는다면 한국 사회의 갈등 비용은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우리 사회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2~300조에 달한다고 한다. 엄청난 비용이다. 우리 사회 개개인들의 낮은 행복감과 복지,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율 등은 이런 갈등과 사회적 비용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시민의회가 사회적 신뢰를 가진다면 헌법이나 선거법 개정 등 수십 년 간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난제들을 시민의회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기후시민총회처럼, 기후문제도 시민의회의 의제로 다뤄 지구적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한국사회가 시민의회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선보이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지구촌의 기후문제, 전쟁과 난민문제 등 글로벌 이슈들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K-문화, K-민주주의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당당히 선진국으로 진입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6-17년 겨울이 데칼코마니처럼 떠오르는 요즘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명성을 얻는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으로 몰락할 기미가 보인다.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지만, 시민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드는 그들만의 권력놀이·권력싸움을 그치게 해야 한다.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잘 모여들지 않는 이유도 지난 촛불의 방식으로는 그들만의 권력싸움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적지 않은 듯 하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시민의회의 도입필요와 사회적 실험을 전개하기 위해 '시민의회 전국포럼'이란 이름으로 닻을 올린다. 12월 9일에 제안을 하고, 올 겨울에 풀뿌리부터 논의를 거쳐 내년 3월 1일에 시민들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시민의회는 권력의 무게중심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민주주의자가 있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처방이다. 겨울광화문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온라인에서 키보드 난타전 대신에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고, 공정하게 합의를 만드는 시민의회를 도입해보자. 올 겨울에 '새술을 새부대'에 담아보자.
▲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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