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일에 생각한다
성적 · 학벌 · 돈으로 내린 평가를 행복의 기준이라는 속임수에 더이상 속지말자.
이제 수능시험도 끝났다. 그동안 수능시험에 매달렸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어머님들은 기도하느라, 스님들은 축원하느라 모두들 고생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이제 한 고개를 넘어섰을 뿐이다. 이제 다 끝났으니 남은 것은 그저 다 맡겨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싶다. 그러나 세칭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정작 이제부터다. 과연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인가. 좋고 나쁜 대학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른’ 대학이 있을 뿐이고, 서로 다른 학과가 있을 뿐이다. 다르다는 것은 좋고 나쁨이라는 차별이 아니라 다만 서로 다른 개성이 존중되어진다는 말이다.
이 대학을 가도 괜찮고 저 대학을 가도 괜찮다. 이 전공을 택해도 좋고 저 전공을 택해도 좋다. 어느 한곳을 고집하고 집착을 해서 ‘꼭’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고정짓고 있다면 그같은 마음은 진리에서 멀어진 마음이다. 그런 마음은 집착심이고 욕심이며 자신을 고착화시키는 일이다.
수능 성적이 ‘나’가 아니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어느 학과를 나왔느냐가 ‘나’가 아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수능성적, 어느 대학, 어느 학과 그것이 ‘나’라고 고정지을 것이며 수능성적, 어느 대학, 어느 학과로 학생들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속지 말라.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라면 거기에 놀아날 것도 없고 함께 속아서 휘둘릴 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이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숫자 놀음이나 관념놀이에 이제 더 이상 휘둘리지 말자.
수능시험일에 생각해 본다. 우리 모든 아이들이 대자연 속에서 환한 웃음으로 뛰어놀 수 있는 그러한 놀이와 자연 속에서 또 벗들 가운데에서 온전한 진리를 몸소 터득할 수 있는 교육, 그런 세상을.... 알량한 숫자인 성적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세상, 그런 판단으로 아이들이 얼굴 찡그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성적을 가지고 아이들을 전국적으로 일등에서 꼴지까지 줄 세우지 않는 세상을. . .
요즘 시행되는 교육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안타깝고, 또 이미 그렇게 자라서 깊이 세뇌되어 이제는 바꾸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어른들도 안타깝고, 그렇게 어리석은 제도만을 자꾸 기술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윗사람들도 모두 다 안타깝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해도, 설사 몇몇 분들께서 ‘그래 맞는 말이다’ 하고 맞장구를 치더라도, 이 말이 내 삶에서 실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그런가. 그건 그만큼 내가, 어른들이 이 세상에 세뇌당했고, 그런 고정관념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돈 많이 벌어야 하는,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하는 등등의 그런 것들로 평가받고 또 남들을 평가하는 그런 세상에 우리도 물들어 있어서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나 먼저 그 엄청난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깨고 나올 수 없는데, 수행자라고 하는 우리가 그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자식을 바꾸고 우리 주위 사람들을 바꾸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깨고 나오면 자유롭다. 그러나 그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 틀이 너무 견고하고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깨는 게 수행자의 일이다.
법상 스님, <법보신문/2004-11-24/7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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