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슬플 땐 그냥 슬퍼하라

장백산-1 2022. 6. 13. 15:49

슬플 땐 그냥 슬퍼하라


온갖 느낌도 인연따라 온 환영(幻影)일 뿐이니 느낌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찰하라

 

나는 노을이 질 때가 되면 해가 지는 풍경 속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외롭다고 할 수도 있겠고, 고요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뭐랄까 내 안의 본래적인 느낌 감각을 온전하게 끌어내 주는 이 느낌 감각에 가만히 마음을 집중하다 보면 대자연의 숨결과 하나되는 듯 내 마음은 어느덧 선정(禪定, 고요함)에 빠져든다.

 

느낌은 참 소중하다. 느낌을 그저 휙 지나쳐 버리지 말라. 가만히 느낌에 마음을 집중해 보면 그 모든 느낌들 속에서 명상의 연결점을 만날 수 있다. 느낌에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은 사념처 수행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수념처 수행).

 

사람들은 수많은 감정 느낌 속에서 살아가지만 느낌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데는 무척 인색하다. 느낌 감정에 아무런 차별심(差別心)이나 분별심(分別心)을 일으키지 말고 그냥 텅~빈 마음으로 느낌 감정을 느껴보는 것에 익숙치 않다. 그러다보니 좋은 느낌에 속아 집착하고, 싫은 느낌에 속아 멀리하려 하고 아파하며 스스로를 구속한다. 그러나 본래 느낌 감정 그 자체에는 아무런 분별이나 차별도 없다.

 

어떤 느낌 감정이 되었든 지금 이 순간에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 느낌 감정에 마음을 집중하라. 그 느낌 감정을 온전히 느끼라. 온전히 느낀다함은 그 느낌 감정을 싫다고 피하려 하거나 좋다고 더 집착려고 애쓴다거나 하는 좋고 싫은 분별심을 다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며, 충분히 그 느낌 감정을 즐기고 느껴본다는 말이다.

 

외롭다면 외로움을 흠뻑 느껴보고, 화가 날 때는 그 화에 마음을 집중하며, 슬플 때는 슬픔과 하나가 되어 슬퍼하라. 외로움, 화, 슬픔 그 느낌을 아무 분별없이 지켜보고 충분히 느끼라. 우울증을 치료하는 음악치료의 원리도 그렇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울할 때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반대로 신나는 음악을 들으려 애쓰지만 그것은 우울감 치료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울할 때 일수록 우울한 노래를 듣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울할 때 흠뻑 우울해 하고 슬플 때는 충분히 슬퍼할 때 내적인 치유는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우울함이나 슬픔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옭아 매어질 뿐이다.

 

느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느껴보고 즐기고 바라보면 그 느낌 감정을 느끼는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느낌 감정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텅 비어 있다는 사실. 충분히 그 슬픈 느낌이나 감정에 젖어보면서 슬퍼하는 나를 관찰하게 되면 슬픈 내가 사라진다. 슬픔이라는 느낌을 찾을 수 없고 결국에 그 슬픔도 가짜였음을 알게 된다. 온갖 느낌 감정이라는 것은 인연따라 잠시 나타난 환영이며 신기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충분히 알아차리면서 느끼기만 하라.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수행의 길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그 느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집착하려고도 하지 않고 멀리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랬을 때 느낌 속에 살면서 느낌을 초월할 수 있다. 이것이 함이 없이 모든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슬플 때는 온 존재로써 슬퍼하라.


법상스님, <법보신문/2004-12-22/7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