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온(五蘊)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붓다의 통찰은 ‘뇌과학’
붓다, 괴로움 원인을 이해하고 벗어난 깨달은 자
마음은 몸이 인식대상과 반응해 만들어짐을 파악
나라는 정체도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연기한 결과
붓다의 마음을 공부하는 이유는 괴로움[苦·Dukkha]의 원인을 이해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온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이다. 붓다는 그것을 실현하여 ‘깨달은 자[붓다·Buddha]’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은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긴 무덤덤함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경우 즐거움은 자주 오지 않고 오더라도 잠깐뿐이다. 하지만 괴로움은 자주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 번 오면 대개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즐거움은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 힘겹게 만들지만 괴로움은 원하지 않는데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왜 괴로움은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찾아올까?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에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세상’과 ‘실제로 벌어지는 세상’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나의 괴로움을 만드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이러한 괴로움은 계속 발생되며 절대로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나의 욕심, 편견, 망상 등의 어리석음이며, 그 어리석음의 결과는 필히 괴로움을 초래한다. 마음의 괴로움은 이렇게 무명(無明)에서 시작된다. ‘괴로움을 낳는 무명은 대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는 것’(‘잡아함경’)이라고 붓다는 설명하였다.
마음은 무엇일까? 마음의 괴로움을 해결하러 나선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마음의 정체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 마음을 잘 다스려 괴롭지 않은 마음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의 마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든다. 그렇기에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나’는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붓다는 철저하게 현실적, 분석적 사고로 ‘나’를 정의한다. 아리아인[Aryan]들의 특징일까? 그는 ‘나’라는 존재는 나의 몸과 그 몸에서 생겨나는 마음을 합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몸은 물질이다. 그 생명이 있는 물질에 마음이 생성된다. 살아있는 생명은 항상 대상을 인식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고 촉감을 느낀다. 붓다는 그런 알음알이들이 마음을 만든다고 분석하였다. 즉, 마음은 살아있는 ‘몸’이 인식대상에 반응하여 만들어진다고 파악하였다.
붓다는 마음을 생성하는 인식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다음은 괴로운 마음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한 붓다의 설명이다.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인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識]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괴로움경(Dukkha-sutta), 상윳따 니까야(S12:43)]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와 법을 조건으로 각각의 여섯 가지 알음알이[六識]가 일어나며, 이러한 감각접촉으로 느낌이, 갈애가, 괴로움이 이어서 일어난다고 설하였다. 대상을 인식하면 알음알이가 생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느낌이 일어난다. 나의 몸에 느낌이라는 마음요소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붓다는 더 깊이 분석한다. ‘나’라는 몸뚱이[색·色]는 인식대상을 만나면 여섯 가지 알음알이, 즉 육식을 통하여 느낌[수·受]이 생기고, 그 대상에 대한 기억과 지식이 떠올라 그것이 무엇이라고 알게 된다[상·想].
예로서, 길을 가다가 살모사를 만나면 무섭다는 느낌이 먼저 생기고, 그것이 살모사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필연적으로 ‘피해야지’라는 심리현상[행·行]이 생긴다. 이 모든 과정이 합쳐져 궁극적으로는 ‘살모사구나. 무서워, 빨리 피해야지’라는 마음[식·識]이 된다[그림참고].
이렇게 마음[識]은 나의 몸[色]에 수(受)·상(想)·행(行)을 거쳐서 일어난다. 나의 몸과 마음이 나를 구성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섯 가지 구성요소들[色·受·想·行·識]이 합쳐진 것이다. 그렇다. 붓다는 ‘나는 이 다섯 가지가 쌓인 무더기[오온·五蘊]일 뿐이다’라고 통찰하였다. ‘나’라는 존재는 나누어서 보면 오온이 연기된 것이다.
그런데 오온 하나하나는 항상 변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몸[색온(色蘊)]도 변하고, 정신[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도 변한다. 고정불변하는 나는 없다[無我].
그런데 편도체로 가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 시각피질에서 ‘살모사’라는 자세한 형상이 분석되는 과정보다 더 빠르다. 그래서 ‘무섭다’라는 느낌[受蘊]이 먼저 들어 얼른 피하고 본다. 돌아서 보면, 즉 자세한 모양새가 파악되면 위험한 살모사가 아니라 꼬부라진 나무막대기라던가 널브러진 새끼줄이다. 우선 위험한 대상을 피하는 것이 살아남는데 상책이기 때문에 뇌가 그렇게 진화하였을 것이다.
붓다도 이것을 알았을까, 수온이 상온 앞에 설정된다. 최초로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느낌[감정]의 생성이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는 속도보다 빠르다. 인식(認識, Perception, 지각)은 최초로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은 인지(認知, Cognition)라 한다. 인지 과정에서는 수·상·행·식(受·想·行·識)에 순서가 없다.
지금부터 2500여년 전에 뇌의 기능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붓다도 뇌에 대하여 특별히 교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붓다가 통찰한 괴로운 마음이 일어나는 과정과, ‘나’의 정체에 대한 통찰은 철저하게 뇌과학이다. ‘괴로운 마음’을 ‘아니 괴로운 마음’으로 바꾸는 방법을 발명한 붓다는 분명 위대한 뇌과학자임에 틀림없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40호 / 2022년 7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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