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전전두엽과 불성, 그리고 수행
누구나 갖춰진 불성(佛性이) 차이 있는 건 전전두엽의 차이
전전두엽 발달되면 지혜로움 발달해 반야지혜의 뇌로 발달
수행 한다는 것은 명품 반야지혜 전전두엽을 만들기 위한 것
전전두엽을 명품으로 계발해 번뇌의 불꽃 끄게 되면 ‘깨달은 자’
인간이라는 셍명체는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특별한 생명체다. 인간만이 고도로 발달된 언어능력이 있으며,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엄청난 인류문명을 이루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특별함에는 기술적인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측면은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다. 인간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성으로, 이 마음의 속성을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 하지 않을까. 인간의 마음의 속성인 불성을 추구하는 과정이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修行)이다. 수행은 삶의 본질을 깨달아 해탈 · 열반에 드는 것, 즉 부처(붓다, Buddha, 각자/覺者,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줄이며,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인들의 명상(瞑想 Meditation)과 분명히 다르다.
처음으로 부처가 된 사람이 고따마 싯다르타이다. 고따마 싯따르타 그는 석가족(釋迦族)에서 나온 성자(聖者)이었기에 석가모니 부처라고 부른다. 고따마 싯따르타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부처를 이루었을까? 싸띠(알아차림, Sati) 수행을 통해서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의식(意識, 알음알이)을 알아차리는 것이 싸띠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히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을 싸띠라고 하는 것이다.
고따마 싯다르타는 의근(意根, Mano)이 의식(意識)을 만든다고 하였다. 의근(意根, Mano)은 법경(法境)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다. 법경(法境)은 눈, 귀, 코, 혀, 피부(촉감)가 감지할 수 없는 비물질적 존재 또는 정신적, 추상적 개념이다. 아름다움 추함, 슬픔 기쁨, 생각 분별 시비 판단 비교 해석 등이 법경(法境)이다.
고따마 싯다르타는 법경(法境)들이 의근에 감지되어 의식에 들어온다고 간파하였다. 예로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혹은 비물질적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의근에 감지되어야 ‘아름답다’라는 의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달리 의근은 보이지 않는다. 의근은 무엇일까? 거기에 대한 설명은 추후로 미루고, 싯다르타는 어떻게 의근이 있다고 생각하였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더 나아가 싯다르타는 의식을 알아차림하고 관리하는 싸띠 기능이 우리 마음에 있음을 간파하였다. 싯다르타는 싸띠가 의근을 잘 관리하면 의식을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싸띠 수행의 발명이다.
싯다르타는 호흡을 알아차림(싸띠)하는 들숨 날숨 싸띠수행(Ānāpānassati sutta, MN 118)을 함으로써 부처(해탈·열반)를 이루었다. 부처(해탈 · 열반)은 탐 진 치 삼독심이라는 번뇌의 불이 꺼져 마음이 완전한 평안함에 놓인 상태로서, 불교수행의 최고 이상향이다. 의식, 싸띠[알아차림], 열반은 모두 정신영역에 속한다. 이들의 상관관계를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다섯 가지 감각기능(눈, 귀, 코, 혀, 몸)은 의근(Mano)을 의지한다. 의근이 다섯 가지 감각기능(눈, 귀, 코, 혀, 몸)과 그들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한다./ 의근은 마음챙김(Sati)을 의지한다./ ……마음챙김은 해탈을 의지한다./ ……해탈은 열반을 의지한다.” ‘Uṇṇābhabrāhma ṇasutta, S48:42’
눈, 귀, 코, 혀, 피부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의근을 의지하고, 의근은 싸띠를, 싸띠는 해탈을, 해탈은 열반을 의지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의지한다는 것은 조절 · 제어를 받는다는 뜻이다. 마음은 천층만층 구만 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아래층의 단순한 마음은 보다 복잡한 위층의 마음에 조절을 받는다.
대뇌의 앞쪽인 전전두엽(PreProntal Cortex, PFC)이 마음을 창발(創發)한다. 전전두엽은 앞 · 뒤 방향으로 기능적 계층구조(階層構造, Hierarchy)를 이룬다. 천층만층 구만 층의 마음은 전전두엽의 기능적 계층구조에서 나온다. 전전두엽의 맨 뒤쪽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이나 운동 행위를 조절하고, 그 앞부분은 지금 이 순간의 행위(생각, 말, 행동)를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 맞게 조절한다. 이를 학문적인 용어로는 맥락적 조절(Contextual Control)이라 한다.
전전두엽의 맨 앞부분은 미래지향적으로 맥락적 조절도 한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현재 상황에 맞게, 그리고 가급적 미래를 예측하여 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면 상을 받고 어떤 행위는 벌을 받는지 안다. 그러한 지식이 행동 요령 원칙이 되고, 그것이 전전두엽에 저장되어 있다. 그 지식들은 켜켜이 쌓여 계층을 이루고, 맨 위층에 해탈 · 열반층이 있으리라.
사람들 마음의 영적수준(靈的水準), 즉 불성(佛性)은 천차만별이다. 뇌로 보면 불성 그것은 전전두엽의 수준 차이다. 불자들은 불성을 높이기 위하여 수행을 한다. 명품 전전두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뇌는 전전두엽이 잘 발달 되어 있다. 세상의 존재 가운데 유일하게 잘 발달된 전전두엽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뇌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뇌이다. 척수 바로 위에 연결된 뇌줄기, 그 위쪽에서 뇌의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는 둘레계통(구포유류 뇌), 그리고 맨 위쪽에 신포유류뇌(대뇌 및 소뇌), 이 3개의 뇌가 합쳐져 이루어진 삼위일체의 뇌이다. 사람뇌는 여기에 전전두엽을 더하여 사위일체(四位一體)의 뇌이다. 전전두엽은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잘 발달 되어 있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전전두엽의 기능은 각자 계발하기 나름에 따른 수준을 갖게 된다. 전전두엽이 잘 발달된 사람은 지식을 지혜롭게 적용하여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잘 관리한다. 이것이 반야(般若, Paññā, 지혜)의 뇌(腦)이다. 전전두엽에는 지혜까지도 관리하는 해탈 · 열반의 뇌가 있다.
이처럼 전전두엽에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라는 현재의 상황을 제어하는 낮은 차원의 지식관리에서부터 고도의 지적 통합에서 나오는 지고한 수준의 불성(반야지혜)을 나타내는 뇌 부위까지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 모두는 불성의 기반인 전전두엽을 갖고 있다. 전전두엽을 잘 계발하여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꺼버리면 ‘깨달은 자, 부처’가 된다. 수행은 그 길로 나아가는 과정 발걸음이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38호 / 2022년 6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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