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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정말 아는 것일까?

장백산-1 2022. 7. 27. 15:16

무엇을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정말 아는 것일까?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이라는 매우 유명한 사구게가 금강경에 나옵니다. 색(모양, 이미지)에 집착하고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성향미촉법에 집착하고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히 집착하고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 말씀을 십이처, 십팔계로 설명하면서, 이 말씀을 통해 무아(無我)를 설명하였습니다.

 

눈이 색(모양, 이미지, 대상)을 볼 때, 그 보이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여기고, 실체시하게 되면 그 보이는 대상에 집착하고 머물게 되고, 본 것에 집착하고 머물러 마음을 내게 됩니다. 내가 본 것을 옳다고 여기면서 '내가 보았으니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을 아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사람을 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보았으니까 안다고 하는 것일까요? 사실 본다고 할 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본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석한 것을 본 것일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보고 좋지 않은 느낌이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반하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어떤 사람을 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안다고 여기거나, 내가 본 것에 대해, 보아서 안 견해에 대해 옳다고 여기거나 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식으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그려놓은 허깨비, 허상, 상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을 본 것이 아니라 허상을 본 것이지요.

 

만약 그 사람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면, 그 사람이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내가 빠져 있는 이 사랑의 감정을 실재라고 여기고 상대에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 상대방을 좋게 해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 매력 있는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집착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결혼 하고 살다보면, 때로는 그 때 사랑스러웠던 부분들이 오히려 더 미워질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을 아는데 왜 훗날 보니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오류였음이 밝혀지는 것일까요. 실상을 본 것이 아니라, 허상을 본 것을 진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았다고 다 믿지 말고, 보고 알았다고 그 생각을 100% 믿지는 마세요. 그것이 바로 불응주색생심, 즉 색에 머물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빨간색 도화지를 보고, 우리는 누구나 빨간색이라고 여기고, 내가 보았기 때문에 빨간색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그것은 빨간색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나를 바보 취급한다면 너무 황당해서 기가 막히겠죠. 제가 초등학교 때 모든 면에서 똑똑한 모범생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반에서도 별로 똑똑하지 못하던 한 친구와 교실 한 쪽에서 논쟁이 붙었어요. 빨간색인가 어떤 색깔을 보고 모범생은 다른 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너무 한 치도 물러섬이 없이 분명하게 자기가 주장하는 색깔이라고 하니, 반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누가 옳은지 보자고 했지요. 같은 반의 모든 친구들이 똑똑하지 못했던 그 친구가 본 색깔이 맞다고 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모범생 친구는 자기도 모르는 색약(色弱)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결정코 '무슨 색'이라고 믿었는데, 반의 친구들 모두가 전부 다른 색깔이라고 할 때의 그 친구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빨간색으로 보이는 것이 색약(色弱)인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색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자외선을 보는 곤충들은 가시광선만을 보는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을 봅니다. 자외선 필름으로 꽃밭을 촬영하면 그 색감이 우리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적외선 촬영기술로 사진을 찍으면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사진을 얻게 되지요. 사람들은 가시광선의 영역만을 볼 수 있는 것일 뿐, 적외선을 보는 뱀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내가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뇌과학에서 말하듯, 인간의 뇌는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를 근거로 제한적으로만 대상을 인식한다고 합니다. 인식 자체에서 자기 식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는 이렇게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보았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다고 집착해서는 안 되겠지요. 


2019.07.06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