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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찾는 '이것'이 찾는 바로 '그것'

장백산-1 2022. 7. 25. 12:39

깨달음을 찾는 '이것'이 찾는 바로 '그것'

 

'대승찬((大乘讚)' 첫 구절에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큰 도는 눈앞에 있다는 말입니다.. 대도((大道, 큰 도)는 언제나 눈앞에 있습니다. 목전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 등 다양한 방편상의 이름으로 '이것'을 설하지만, '이것'은 나와 분리되어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닙니다.

 

불법은 불이법이며, 불이중도입니다. 즉, 이 세상과 나는 둘로 나뉘어져 있지 않은 것이 불법 불이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이 내가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바깥으로 찾아나선다고 '이것'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한한 대도가 눈앞에 있다는 말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둘이 아니고, 가까이 있다는 말을 목전(目前)의 당처(當處: 이곳, 이 자리)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내가 바로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입니다. 나를 떠나 따로 있는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꼴이고, 눈을 가지고 눈을 찾는 격입니다.
찾고 있는 대상은 놔두고, 먼저 찾고 있는 그놈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십시오.

 

명백하게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지요. 사실 찾고있는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은 중요하지 않아요.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고 있는 놈이 누구입니까? 무엇이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고 있지요?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렇게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바로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고있는 놈이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을 것입니다.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이라는 찾아야 할 객관(대상)이 따로 있고,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는 놈이라는 주관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다르게 둘로 나뉘는 것입니다. 그렇게 둘로 나뉘는 것은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이  아닙니다. 둘이 아닌 불이법만이 참된 법입니다.

 

불법, 불이법,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을 찾는 놈이 있다는 사실이 곧 찾고 있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도를 찾고, 깨달음을 찾는 당신이 곧 도, 깨달음 자체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찾는 '이놈'이 찾아야 할 '그놈'입니다. 이렇게 작용하는 순간 그것은 명백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모양으로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생의 업습은 모양만을 볼 줄 알다보니, 그것을 모양으로만 찾으려고 해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본다는 사실이 눈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로 눈을 찾아야지만 눈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9.07.01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