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분별하는 마음

장백산-1 2023. 10. 31. 15:12

분별하는 마음


법화경에서는 제법실상, 즉 일체 모든 것은 그 자체로써 참된 모습, 실상이라 합니다. 선에서는 입처개진, 즉 
내가 있는 바로 그곳이 모두 참된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거우리가 살고 있는 삶 그 자체, 나라는 존재 
자체, 지금 여기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쁨 슬픔, 행복 불행의 모습 그대로가 더없이 진실하고 참된 진리가 
펼쳐진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제법실상 인처개진으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지요. 우리가 보기에 세상은 
진리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거짓도 많고, 불행, 괴로움, 질투, 화, 분노, 전쟁 등 도저히 진리라고
볼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삶을 봐도 수많은 괴로운 일들, 서럽고 화나는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전이나 선사스님들께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왜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진리처럼 참된 
진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은 바로 사람들의 분별심(分別心) 때문입니다. 세상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상대로 헤아리고 분별해서 둘로 나누어서 이해했기 때문에 문제가 시작된 것이지요.

쉽게 말해 사람들은 세상을 볼 때 둘로 나누어 바라봅니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 아름답다
추하다, 길다 짧다 등으로 나누어 놓고 그 중 한 쪽을 선택합니다. 좋거나 옳거나 마음에 드는 쪽은 집착하고 
애착해서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싫거나 틀렸거나 마음에 안드는 쪽은 미워하고 증오하고 거부하려고 애쓰지요.

이처럼 세상을 상대로 둘로 나누는 분별심은 곧 좋고 싫은 쪽으로 마음을 몰아가고 그것은 다시 집착이나 거부를 
만들어 냅니다. 애착이나 소유욕도, 싫어서 하는 미움이나 거부감도 모두 결국 괴로움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좋은 
것을 가지지 못할 때 괴롭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데 떠나가면 괴롭지요. 싫어하는 대상에는 
미움과 증오가 생겨나기에 괴롭고,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할 때 괴롭게 마련입니다.

사실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이 정말 나에게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거사님께서는 10년 쯤 전에 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 후에 지금까지 더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매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몸을 돌보지 않던 삶에서 수술 이후에는 더욱 더 건강을 챙기고, 술담배를 끊고, 운동
하면서 그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시지요. 그 분은 말씀하십니다. 10년 전에 암 진단을 받을 때만 해도 
순간 죽을 것처럼 괴롭더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우주법계에서 부처님이 나를 돕기 위해 보내 준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말이지요.

이 거사님처럼 암 진단을 받은 것 조차 그 순간에는 괴로운 일이라고 분별했지만, 알고보니 그것은 그를 돕기 
위한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사실 우리는 우리 앞의 그 모든 문제들에 대해 괴롭다거나 싫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왜 나에게 온 것인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도우려고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삶에서 우리는 삶의 그 어떤 작은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모를 뿐이지요. 그렇기에 나의 작은 알음
알이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현재를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 앞에 지금 당장에는 괴로운 일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 또한 사실은 입처개진이며, 제법실상이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 자체는 좋거나 싫은 어떤 경계가 아닙니다. 다만 내 스스로 그 일에 대해 좋다거나 
싫다거나 헤아려 분별하고, 좋은 것은 집착하고 싫은 것은 멀리할 뿐이지요. 둘로 나누는 분별심만 없다면, 
지금 여기 있는 우리 앞에 펼쳐진 그 모든 삶의 현장은 그것 자체로 진실한 자리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