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과 같은 인생
‘연생(緣生)은 무생(無生)’이라고 사실은 인연(因緣)따라 생겨난 모든 것들은 생겨난 바가 없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고, 도로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며 놀지만 저녁 때가 되면 모든
것들을 다 허물어버리고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한창 모래성 도로 도시를 만들 때는 저녁이 되면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애써 잘 만들려고
공을 들이고 다른 애들보다 더 잘 만들려고 애를 쓰면서, 설사 누가 무너뜨리기라도 하면 화도 내고 싸웁니다.
놀이에 몰두할 때는 거기에 의미부여를 하고 만들다보니까 그게 진짜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지요.
삶도 애들의 모래성 쌓기와 하나도 다를게 없습니다. 많은 돈, 크고 좋은 집, 고급차, 더 높은 자리, 명예와
권력 등을 얻으려고 애쓰며 살고는 있지만 모든 것은 모래성처럼 언젠가는 무너질 것들입니다. 모래성을
저녁 때 다 허물고 집으로 가듯이, 죽을 때가 되면 ‘이 한 생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것을 왜 그렇게 집착하며
살았나’ 하는 후회를 합니다.
아이들이 하는 모래성 놀이처럼 사람들의 삶 또한 인연 따라 잠시 잠깐 만들어진 것일 뿐이며 인연 따라
만들어진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인연 따라 만들어진 것에 저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중요도를
부여함으로써 집착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실은 본래 일어난 바가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돈, 명예, 지위, 사회적 영향력, 권력이나 모든 것이 본래 일어난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인연을 계속해서 맺어
주고 공급해주니까 그게 나한테 실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이지 인연 공급을 딱 멈추면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한 번 높은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라고 계속해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을 계속 공급해
주니까 높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뿐이지요.
예쁜 외모를 가졌다고 아름다운 외모가 계속 공급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갈수록 변할 수밖에 없죠. 늙고,
병들고, 죽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이처럼 인연 따라 만들어진 것은 인연을 공급해주지 않음과 동시에
없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각오하고 있어야 돼요.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아름다운 시죠. 그런데 이 시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고, 누군가가 잊혀지지 않는 어떤 의미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이렇게 의미 부여하는 것, 이렇게 실체를 부여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모든 것들이
사실은 본래 일어나지 않은 것에 이 마음이 의미부여를 통해 실체화함으로써 허망하게 집착하여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불러주고 나서 '꽃'이 된 어떤 그런 것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뭐로 불러주느냐, 뭐로 이름을 하느냐 그것일 뿐이지 본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실 우리가 그 무엇에 집착할 게 있겠습니까? 본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진짜라고 지금까지 착각해 온 것일 뿐이고, '모래성을 좀 더 잘 지었느냐 못 지었느냐' 가지고
지금까지 막 싸우고 했을 뿐이지 실제는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고, 실제는 모든 게 연생일 뿐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무너지는 허망한 것들입니다.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이와 같이 사실은 생겨난 바가 없는 ‘무생’
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삶에 마음으로 일을 만들지만 마세요. 일 없는 자, 무사인이 되어 일 없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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