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전하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바뀌면 좋겠다, 남들처럼 부자가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자신으로 꽃피어난 부처의 성품(佛性, 부처의 씨앗)을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자신’의 자연스러운 천연 성품이야말로 내가 그렇게 찾아왔던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부처를 찾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완전히 사랑하고, 완전히 수용하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주어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삶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100% 완성되어 있고 온전합니다. 지금 여기 말고 다른 것을 더 기다리거나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라는, 지금 이 순간 이 저라라는 현실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눈부신 순간이고, 가장 위대한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 자체는 완전한 진리가 나로 피어나고 있는 순간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다‘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바로 그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삶의 모든 일들은 일어나야 할 바로 그 때'를 정확히 알고 일어납니다. 삶 자체가 진리의 드러남 곧 법계(法界)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거나, 어떤 사람이 되려 하는 것, 부자가 되려는 것 등 그 무엇이 되었든 ‘다른 누군가가 되길’ 바라기 보다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나’이길 바라야 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이길 바랄 때 그 바람은 언제나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로 존재합니다. 더 이상 바랄 그 무엇도 없게 되지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100%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일이 쉽게 잘 풀리고 나는 안 풀린다는 것은 지금은 그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될 시간이고 나는 그 사람에게 박수쳐 줘야 할 때입니다. 나는 아직 조명을 받을 때가 안 되었을 뿐입니다. 비록 내가 생각하는 그런 성공의 순간은 오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그 자리에 도착해 있습니다. 언제나 '매 순간이라는 삶의 진실'에 우리는 도착해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때, 다른 순간, 다른 성취의 순간, 다른 사람, 이런 것을 기대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다른 때를 바랄것이 없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각자에게 주는 무한한 감동과 감사할 것들과 찬란한 빛들을 충분히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침에 창을 열면 눈부신 햇살이 우리를 축복하듯이 온 존재 위로 쏟아집니다. 법회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면 상서로운 바람이 우리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낍니다. ‘아! 한 줄기 바람이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바람은 누구에게나 불어오고, 햇발은 누구에게나 내리쬐지만 우리가 마음을 닫고 있을 때, 자꾸 다른 사람의 가치를 좇아가려고 할 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 행복감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과 나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풍요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은 저렇게 일이 잘 되는데, 남들은 뭐든 하면 잘 되는데 나는 못한다'는 비교에서 오는 어리석은 착각은, 남의 부처를 좇아감으로써 나의 부처를 죽이려고 하는, 즉 자신의 삶을 죽이려고 하는 허망한 생각일 뿐입니다.
2015.05.13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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