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지켜보는 자(者)
어느 날 남편이 밤늦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 받으면 부인의 내면의 목소리라는 생각은 속삭입니다.
‘남편의 귀가가 왜 이리 늦지?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술 잔뜩 먹고 취해서 오다가 길에서 쓰러져 자나? 아니면, 예전에 빨래 하다가 보았던 루즈 자국이 있었잖아? 혹시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바람피우고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럴 위인도 못돼! 그러면 왜 이리 늦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 몰라 몰라 복잡해...’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남편이 그저 집에 늦게 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부인의 내면의 생각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남편을 살리고 죽이기를 반복하고, 교통사고에 바람피우는 사람으로까지 몰고 가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심장은 두근두근 발작을 일으키곤 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있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과 편견 등을 덧씌운 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내 식대로 왜곡하고 해석해서 괴로움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식대로 각색하고 창조해 놓은 가짜 현실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현실 세상에 살고 있고, 저마다 현실 세상을 보는 필터를 갖고 있습니다. 필터를 근사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 필터 또한 내 안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사실 실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 생각이 만들어낸 거짓된 구조물이요, 마음에서 일어나는 헛된 소란일 뿐입니다.
그러면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생각이 만들어내는 허망한 조작과 소란스런 창조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 해답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냥 그저 생각을 무시하면 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그 내면의 목소리가 ‘나’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목소리가 ‘나’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는 내가 아닙니다. 그저 내면 거기에서 무슨 소리가 끊임없이 지껄여지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그러면 나는 누구일가요? 그 생각이 나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 생각을 지켜보는 자(者)’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까요? 내면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고요히 앉아 내면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지켜보면 그 소리는 점점 힘을 잃고 침묵하기 시작합니다.
왜 내면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이 몸을 함께 쓰고 사는 생각이라는 바디메이트(bodymate)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라는 녀석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생각의 꿍꿍이에 속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지금껏 생각이라는 녀석이 온갖 목소리를 지어내며 나를 조종하고 내 안에 거짓된 세상을 창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생각이 그렇게 함으로써 생각이 나를 휘두르고 주인 행세를 해 왔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저 힘없이 생각의 놀음에 휘둘려 오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생각의 놀음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지요. 생각의 작난을 분명히 알았다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려면 내면의 목소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알려면 두 눈 멀쩡히 뜨고 생각이 하는 짓을 똑똑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생각이 하는 짓을 지켜봄으로써 생각과 생각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내면은 점차 고요함과 사랑과 번뜩이는 지혜로 물결치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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