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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중계로 삶을 해설하는 하는 생각( 생각’의 실체)

장백산-1 2024. 3. 30. 15:18

생중계로 삶을 해설하는 하는 생각( 생각’의 실체)


인도순례 중에 3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한국 남자분을 만나 며칠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하루 종일 옆에서 한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행지에서마다 어김없이 곁에서 나도 뻔히 보고 있는 눈앞의 모습을 곁에서 생중계를 하듯이 하나하나 중계방송을 해 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런 사람과 하루를 함께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아니 이런 친구와 평생을 함께 살면서 그 끝도 없는 소리의 홍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면 또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여기 제가 우려하던 바로 그 상황이 놓여있습니다. 끊임없이 떠들고, 재잘대고, 수다를 떨며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정신없는 그런 친구와 우리는 사실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 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 정도가 아니라, 나와 일평생 동안 한 몸을 함께 쓰고 있는 바디메이트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바디메이트가 누구일까요? 그 친구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생각은 도무지 조용히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미 없는 소리를 끊임없이 뿜어내지요. 심지어 참선을 하려고 선방에 앉아 있는 순간에조차 어김없이 지껄여 댑니다. 흡사 축구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듯 우리 내면에는 눈앞의 현실을 설명해주는 생중계 해설가가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 한 가지는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해 주는 중계해설이 그다지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 생각이라는 내면의 소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온갖 생각, 판단, 가치관, 과거 등에 걸러서 자기 식대로 판단함으로써 색안경에 걸러진 것만을 말하는 습성이 있지요.

현대 신경과학자들도 이러한 세상에 대한 ‘해석자’, 즉 생각의 존재를 인정하는데 그들은 그 해석자가 뇌의 왼쪽 대뇌반구에 있는 것으로 생각이 하는  이야기는 진실을 왜곡하며 신뢰하기 힘든 특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간의 왼쪽 대뇌반구는 진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신경생리학자 칼 프리브램은 원숭이가 받아들이는 시각정보가 시각피질로 바로 보내지는 게 아니라 두뇌의 다른 영역을 거쳐 일단 여과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임이 증명되었고, 심지어 어떤 연구에서는 인간이 보는 내용의 50% 이상은 실제로 눈으로 들어온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바램과 기대로부터 짜깁기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어떤 현실을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고 할지라도 사실 반 이상이 왜곡된 정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생각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던 모든 관념, 편견 등을 섞어 한없이 왜곡된 설명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평생을 살고 있는 우리 내면의 ‘생각’의 실체입니다. 그러니 생각의 속삭임을 곧이 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의 생각이 올라올 때, 그 생각이 곧 나라고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내 생각도 아니고, 진짜도 아니며, 그저 인연 따라 오고 가는 바람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생각에 깊이 빠져들지 마세요. 그럼으로써 보다 명료하게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