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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중도 수행, 수용, 허용)

장백산-1 2024. 3. 29. 14:46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중도 수행, 수용, 허용)


불교 수행의 핵심인 중도를 조금 더 쉽고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받아들임'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라는 현실, 삶에 대한 온전한 허용이 받아들임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임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인 지금 여기 현재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지요. 다만, 분별을 일삼는 생각으로 현재를 거부하거나 집착하면서 취하거나 버리려는 분별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생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 간격 만큼의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고통이 올 때, 스트레스가 올 때, 통증이 올 때, '받아들임'이라는 중도 수행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이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통, 스트레스, 통증이 일어날 때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고통 통증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려는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이렇게 고통, 통증,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면 이 고통 통증 스트레스가 사라지겠지' 하는 기대, 추구, 바람이 깔려 있습니다. 즉, 받아들임을 통해 고통 통증 스트레스를 거부하려는 것이지요. 받아들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받아들임의 반대인 '거부'입니다. 즉 우리는 받아들임을 수행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받아들임의 반대인 '거부'를 행해왔던 것입니다. 받아들임, 알아차림이라는 중도수행을 가장한 교묘한 거부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열심히 받아들임이라는 영적 수행의 무기를 들고, 고통, 통증, 스트레스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인 괴로움, 통증, 스트레스은 지속됩니다.

그래서 다시 스승을 찾아가 말합니다. '받아들임을 아무리 실천해도 고통 통증 스트레스가 호전되지가 않아요. 당신의 수행법이 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받아들임을 하지 않고, 열심히 거부를 실천해놓고 말이지요. 참된 받아들임은 이렇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받아들임은 그저 이미 저절로 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받아들임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받아들임은 이미 저절로 일어나는 이대로의 현실을 그저 알아차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도, 위장된 거부도 없어요.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들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