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순간 조차 삶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누구나 삶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적인 스승들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을 '받아들여라', '허용하라', '인정하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여기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이미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분별하는 것을 일 삼는 생각으로 지금 여기 있는 삶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란 놈은 늘 지금 이 순간을 둘로 나누어서, 지금이라는 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좋은 순간'이거나, '싫은 순간'으로 둘로 나눕니다.
'좋은 순간'은 집착며 더 지속되기를 원하고, '싫은 순간'은 거부하며 피해 도망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삶을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순간 조차, 삶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오직 내 의식, 분별, 생각만 삶을 홀로 좋다거나 싫다고 여기며 취사간택을 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마음공부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인정하라는 공부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삶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말이지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것이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것을 내 생각만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 생각이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중도의 마음공부는 단순합니다. 뭘 억지로 하라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애쓸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저절로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것은 그저 저절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저절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인연이 생겨나고 사라지도록 허용해 주세요. 아니, 그걸 허용해 주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을 피해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도망쳐 봐야, 다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이 삶 뿐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곧 수행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이 곧 진리입니다. 지금 여기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럴 때 삶과 싸우지 않고, 비로소 지금과 화해하게 됩니다. 지금 이것과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하나는 하나와 싸우지 않습니다.
완전한 평화만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 주어진 삶의 본질입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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