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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없는 허망한 상 놀이를 끝내라

장백산-1 2024. 6. 18. 14:58

실체가 없는 허망한 상 놀이를 끝내라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만들어졌기에 실체적인 것이 아니고 다만 인연이 잠시 화합함으로써 만들어진 가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공하게 보이지 않고 진짜인 것처럼 보입니다. 진짜처럼 보이니까 우리 마음은 그 대상을 하나의 실체적인 상으로 그려냅니다. 인연따라 생긴 허상을 실체가 있는 실상으로 착각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컵을 보자마자 ‘컵이다’하고 이름과 상으로 기억합니다. 막 태어난 아기들은 상이 없죠. 컵을 컵이라고 알지도 못하고, 사람과 짐승도 모르고, 니 편 내 편도 없고, 엄마다 아빠다 하는 구분도 없습니다. 도둑이 들어와 칼을 들이대더라도 생글생글 웃지요. 아기들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들은 대상 경계를 분별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체로 봅니다. 통으로 하나로 보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차차 커가면서 이것은 사람이고, 이 사람은 가족이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이것은 컵이고, 하는 등의 상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온갖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상을 만들어서 기억하는 것이지요. 이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 어때?” 하고 물어보면 우리는 다 나름대로 판단해요. ‘성격이 좀 나빠 보인다, 이 사람은 좋아 보인다’하고 생각합니다. 만약 상을 짓지 않았다면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옛날에 나를 차버린 첫 사랑과 닮았다, 그럼 좀 재수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상을 내는 거죠. 과거에 나한테 사기 쳤던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면 아주 기분 나쁘게 느낄 수도 있고 말이지요.

 

이처럼 자동으로 우리 머릿속에서는 옛날에 우리가 배워오고 경험했던 것을 탁 돌이켜 가지고 현재를 그걸로 분별하고 해석해서 인식합니다. 그렇게 제 스스로 분별해서 인식해 놓고, 그렇게 분별 인식된 대상을 진짜로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에 따라서, 우리가 어떤 상을 머릿속에 딱! 짓고 있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대학교는 어느 정도를 가야 된다’라는 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보다 못한 대학에 가면 괴롭고, ‘돈을 얼마큼 벌어야 된다’는 상이 있는 사람은 그것보다 못 벌면 괴롭습니다. 이처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괴로워하는 모든 것은 내가 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가짜를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죠. 이처럼 모든 괴로움은 제 스스로 만들어놓은 가짜의 상에 제 스스로 얽매여 걸려 넘어져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선악의 관념 또한 정해진 ‘절대선, 절대 악’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규정해 놓은 것뿐이지요. 그래서 사실은요, 이 세상이라는 곳은 자기가 규정한 방식대로, 저 마다 자기다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뿐이지, 옳은 삶이거나 틀린 삶을 살았다고 할 만한 정해진 삶은 없습니다. 그저 저마다의 자기다운 삶이 있을 뿐이지요. ‘어느 것이 정답이다’ 하는건 없단 말이죠.

 

근데 우리는 머릿속에 상으로 ‘이것은 옳고, 이것은 그르고, 이것은 정답이고 이것은 틀린 것이고,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이런 삶은 살면 안 되고’ 이걸 너무 많이 정해놓고 내 스스로 만든 틀이 진짜인줄 알고 빠져가지고 내 스스로 괴로워하는 겁니다. 그래놓고 부처님께 ‘내 괴로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만들어 놓은 내 머릿속에서의 허망한 상, 허망한 착각 이것을 깨기 전까지는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이것만 없으면, 이 망상 덩어리만 없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완전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완전하다. 지금 여기서 완전한 부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라는 것은 바로 제 스스로 만들어 놓은 허망한 상 놀음을 제 스스로 끝내는 것, 그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