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진 진흙같은 마음이 아닌 활짝 열린 허공같은 마음처럼
선(禪)에서는 굳어진 진흙같은 마음이 아닌 활짝 열린 허공같은 마음처럼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 상근기가 도를 들으면 마치 허공에 도장을 찍는 것 같고, 중근기가 도를 들으면 물에 도장을 찍는 듯하며, 하근기가 도를 들으면 진흙에 도장을 찍는 듯하다. "
즉 상근기는 법문을 듣지만 마치 허공에 도장을 찍으면 도장을 찍는다는 말은 있지만 실재 허공에는 도장이 찍히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듯이, 법문을 듣되 법문을 듣는 바 없이 들어 그 흔적이나 이해, 정리, 해석 등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함이 없이 행하기에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무위행을 행합니다. 무명무상절일체, 이름도 모양도 없고 일체가 끊어진 진실의 자리에 늘 여여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근기는 법문을 들으면 물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아, 잠시 모양이 찍히는 듯하다가 곧장 사라지듯이, 설법이라는 방편을 통해 법문을 듣고 잠시 그 방편의 효용에 머물지만 곧장 그 또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임을 알고는 방편을 곧장 내려놓습니다.
하근기 중생들은 법문을 들으면 진흙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아 찍힌 도장 자국이 굳어져서 영원히 남듯, 법문을 듣고는 그 방편을 이치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기방식대로 정리하여 붙잡아 집착합니다.
방편인 법문을 듣는 것만 이런 것이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에게 욕을 먹었을 때,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하근기 중생들은 진흙에 찍힌 도장처럼 그 자국을 마음에 남겨 집착한 채, 그 욕설과 화와 괴로운 일을 계속 내면에서 생각으로 반복 재생하며 괴로워합니다. 수행자라면 욕을 얻어 먹더라도 물에 찍힌 도장처럼 잠시 대응은 하되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고, 상근기 수행자라면 욕을 얻어 먹고도 얻어 먹었다는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매일, 매 순간 일어나는 일마다 마음에 붙잡아 진흙에 도장을 찍듯 거기에 얽매이지는 않으십니까? 이 세상 모든 일들은 그저 인연 따라 잠깐 일어났다가 인연 따라 사라질 뿐 실체가 아닙니다. 그저 허공에, 혹은 물에 찍힌 도장과 같아 실체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본인 스스로 진흙에 찍힌 도장 자국처럼 붙잡아 얽혀들 뿐이지요. 굳어진 진흙같은 마음이 아닌 활짝 열린 허공같은 마음처럼, 모든 것이 왔다 가되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십시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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