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인 현실이 도대체 무엇이 모자란가?
언제나 우리는 삶에서 경험해야 할 것만을 경험한다. 지금 여기 내게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내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경험하고 배워야 할 바로 그것이다. 제법실상(諸法實相), 현실이야말로 언제나 진실이기 때문이다.
괴로움이 내게 오는 이유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괴로움 그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괴로움은 문제로써 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답’으로써 왔다. 그 괴로운 현실 자체야말로 나에게 최상의 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현실이야말로 언제나 진실이다. 제법(諸法)이 그대로 실상(實相)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은 바로 그것이 참된 진리의 실상이며, 진실이기 때문에 나에게 온 것이다. 지그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인 현실은 언제나 우주법계가 판단하기에 가장 유효하고 가장 적절하며 가장 좋은 시기에 나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나를 깨닫게 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는 언제나 옳다. 현실이 아무리 역경이라 느껴지고, 괴로움이라 느껴지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있는 것일 뿐, 그 분별망상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본다면 현실은 언제나 옳은 것만을 보내준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전하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지금 여기 있는 이 모습 그대로로 완전하다. 완전해지기 위해 더 이상 무언가를 행할 필요는 없다. ‘육조단경’에서 육조혜능스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어찌 자성이 본래 모자람 없이 이토록 완전함을 알았겠습니까?”라고 노래했다.
그러니 주어진 지금 여기라는 현실을 문제라고 여기고, 괴로움이라고 여기면서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삶을 살 필요는 없다. 지금 여기에 주어진 것을 버리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무리 열심히 달려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처럼 ‘지금 여기에 있는 현실이라는 진실’ 속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들과 비교 분별하면서, 지금은 무언가가 남들보다 부족하며, 지금 이대로를 가지고는 안 될 것 같고, 더 많이 벌고, 더 나아져야 하고, 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바로 그 착각을 버리는 것 뿐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이 자리라는 현재에 멈춰 서서 지금 여기 속에 이미 주어진 무수한 보배와 보물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관찰하고 느끼고 누리면서 만끽하는 삶, 지금 여기에서 존재하는 삶이 전부이다.
현재가 괴롭다고 할지라도, 그 괴로운 상황을 문제라고 여기면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지 말라. 오히려 그 괴로운 상황과 함께 있기를 선택해 보라. 그 괴로움이 바로 지금 이 현재에 나를 찾아 온 이유는 나에게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나를 돕기 위해,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찾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괴로움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라. 괴로워 해 주기를 선택하라. 현재에 무엇이 있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이것을 선택하라. 지금 이대로를 받아들이라.
문제는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바로 지금, 당신의 현재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당신이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유일한 답일 뿐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이것 말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을 통해서는 행복도 평화도 깨달음도 결코 얻기 힘들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이렇게 이미 다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이렇게 있지 않은가. 도대체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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