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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일 뿐! 이것이 무엇인가?

장백산-1 2024. 6. 22. 18:10

바로 이것일 뿐! 이것이 무엇인가?

 

황벽스님이 배휴에게 말했습니다. " 부처와 중생은 다 한 마음일 뿐이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마음은 본래 생겨나거나 죽은 적이 없고, 푸르거나 누렇지도 않다. 마음은 정해진 틀이나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으며, 새롭고 낡음을 따질 것도 없다. 길지도 짧지도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다. 마음은 모든 한계와 사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넘어 있는 것이니 지금 여기 있는 바로 '이것'일 뿐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 자리는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곧 어긋나 버리니, 지금 여기 있는  이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시작도 끝이 없고 재볼 수도 없다. 지금 여기 있는 이 자리는 바로 '이것'일 뿐이다. ”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혀에 맛봐지고, 감촉을 느껴지고 하는 모든 이 두두만물이 우리가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쓰지 않고 살지 않음이 없는,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도 없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따로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으니, 그저 이것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이것은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인형극을 할 때 보면요, 객석 앞에는 무대가 있고, 그 무대 위에서 사람이 줄을 당기고 놓았다 하면서 인형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러면서 인형들 둘이서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밥도 먹고, 움직이기도 하고, 뛰어놀기도 하고 인형들이 마음껏 뛰어논단 말이죠. 그 인형이 우리라고 봤을 때, 이 중생이라고 봤을 때, 그 인형이 저 혼자 움직입니까? 인형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죠. 먹고 자고 말하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이러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인형 그것이 전부가 아니잖습니까? 인형이 실체입니까? 인형극 하는데 인형이 움직이고 있지만, 인형만 들여다보면 진짜같이 움직이니까 신기하게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린 애들이 신기해가지고 좋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것과 똑같아요. 그 인형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인형극 이게 진짜구나’ 이렇게 착각하는 거예요. “인형 뒤에서 사람이 인형을 움직이게 해주는 거야.” 해도 어린 애들은 안 믿어요. 인형이 진짜 움직이는 것으로 안단 말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그 인형이 인형일 뿐인데, 무아일 뿐인데, 진짜라고 집착해가지고, 착각해가지고 인형극 속에서 헤어지니까 괴로워하고, 인형극 속에서 인형이 어떤 옆에 있는 인형은 좋은 집에 살고, 나는 나쁜 집에 사니까 괴롭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그래서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께서 ‘야, 이건 다 인형극일 뿐이다. 인형극 이게 진짜가 아니다. 이 인형을 움직이는 뭔가가 따로 있다.’라고 말해 줍니다. 그렇게 얘기를 해줘도 우리들은 믿지 않습니다. 여기 이렇게 내가 분명히 있는데, 이게 어찌 없습니까?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에요. 인형이 진짜가 아니라 인형 뒤에 이걸 움직이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먹고 마시고 말하고 행동하고 이러고 살고 있지만, 이 몸이 하는 게 아닙니다. 몸도 진짜 내가 아니고, 뇌도 내가 아니고, 느낌, 생각, 의도, 의식도 내가 아닙니다.

 

‘색수상행식이 다 공하다’ 이러잖아요. ‘오온개공’이라 이러지 않습니까?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존재는 실체가 없어 공하다는 말이죠.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온 그것은 그냥 이 삶이라는 인형극에 있는 인형일 뿐이라는 거죠. 인형을 움직이는 누군가가, 뭔가가 있단 말이죠. 그 뭔가가 누구일까요?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살고 있다’라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죠. 다만 그것은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처럼, 무언가 어떤 존재라고, 혹은 무엇이라고 딱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기 때문에 ‘이것’이라고 하면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