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밝게 항상하는 앎
규봉종밀 스님의 '도서'의 한 부분입니다. '마음은 밝고 밝아 미혹하지 않으니 '요요상지(了了常知 : 밝고 밝게 항상하는 앎)'하여, 미래세가 다하여도 상주불멸(常住不滅)하니 이 마음을 불성이라 하고, 여래장이라 하며, 마음땅이라 한다... '이미 자성이 청정하여 요요상지하다면, 어째서 굳이 부처님들은 중생들에게 청정한 자성을 다시 열어 보일 필요가 있습니까?'
위에 나오는 '요요상지(了了常知)에서의 지(知,앎)는 증지(證知 : 증득된 앎)가 아니다. 곧 참된 성품은 허공이나 목석과 같지 않다는 것을 설하려는 뜻에서 지(知)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이것은 진여의 성품으로 자연적인 상지(常知)이다. 규봉종밀 [도서] 중에서
선에서는 불성, 자성, 본래면목, 마음, 법, 해탈 이라고 하는 이것을 '요요상지', '공적영지', '영각성' 등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공적영지란 텅 비어 공적하지만 소소영령하게 '아는 놈'이 있다는 방편으로 설명하지요. 그래서 선사 스님들은 볼 때 보는 줄 아는 그놈, 들을 때 듣는 줄 아는 그놈, 이 몸은 송장과 같아 몸은 말하거나 움직일 줄 모른다 이 몸을 말하게 하고 듣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그 놈, 이런 식의 표현을 쓰곤 합니다.
지눌스님도 공적영지란 표현을 잘 쓰셨는데요, 자성, 불성의 체(體)는 공적하지만 그 용(用 ; 쓰임)은 영지라고 하셨습니다. 즉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이렇게 내가 있는 줄 알고,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볼 줄 아는 이 근원적인 공적영지심, 영각성인 이 '앎', '아는 놈'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선에서는 주로 자성, 불성, 본성, 본래면목을 공적영지라는 용어로 자주 쓰는데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이 '아는 놈'이라는 무엇이 실체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무아(無我)'입니다. 그래서 영지, 영각성 앞에 공적(空寂)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지요. 그런 소소영령하게 아는 놈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그 본성은 공적하다는 것입니다. '참된 성품은 허공이나 목석과 같지 않다는 것을 설하려는 뜻에서 '앎'이라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육조스님도 '본래무일물'이라고 하여, 한 물건이라고 할 것도 없다고 하셨듯, 선에서는 본래면목, 공적영지심을 설하지만, 그같은 표현은 방편일 뿐입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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