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참사람과 무위진인(無位眞人)

장백산-1 2024. 7. 8. 22:17

69. 임제의 선사상 - 하 -  참사람과 무위진인(無位眞人)

 본래부터 구족되고 내재된 법성 강조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불성을 구족하지만
구족한 불성을 인식하지 못함을 탄식했듯
모든 중생이 부처임을 모르는 안타까움을
 과격한 행동이나 말로 연출

지난 회에 임제의 인간 중심 사상에 대해 언급했다. 중세의 서양은 신(神) 중심의 세계관이었다. 그러다 종교혁명이 일어나고, 르네상스가 발생하면서 신에서 내려와 ‘인간’을 중심에 두었다. 그런데 임제 의현(?∼867)은 당나라 9세기 사람으로 적어도 서양보다 500∼600년 앞서서 인간 중심 사상을 언급하였다. 

임제가 말한 인간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임제는 누구나 차별 없는 참사람을 무위진인(無位眞人) · 무의도인(無依道人 )· 무의진인(無依眞人)이라고 하였다. 무위진인에서 ‘인’이란 지금 목전(目前)에서 그의 설법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부처이며 조사임을 뚜렷이 선언한 것이다. 무위진인이란 어느 누구나 차별 없는 참사람이 있다는 사상이다. 인간의 본원적인 자유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초기불교의 종교적 본질과 일치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처음 출가할 때, 당시 브라만에 저항한 사문(samaṇa) 가운데 한 분이다. 

사문 싯달타의 출가와 전법은 브라마니즘(Brahmanism)과 카스트(caste)제도의 반발로 시작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은 출신 성분으로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귀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숫타니파타’]. 즉 사람은 태어나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브라만이 아니라 설령 그 사람이 천민으로 태어났어도 업(karma)에 의해 브라만이 된다고 하는 인간 평등의 정신이요, 인간 본위에 근거한다.

근래 서양 명상과 심리학이 유행하면서 동아시아 선사상이 사장(死藏)되고 있는데, 임제 등 여러 선사의 법문에도 서양 불교에 충분히 맞설 만큼 메리트가 있다고 본다. 

본 원고인 임제의 사상으로 돌아오자. ‘임제록’에서 무위진인 내용을 보자.  임제선사가 법을 설하셨다. 

여기 빨간 몸 덩어리[적육단 / 赤肉團] 안에 한 ‘차별 없는 참사람[無位眞人]’이 있어서 항상 여러분의 면문(面門)을 통해서 출입(出入)한다.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은 똑똑히 보고 보아라.”  그때 한 승려가 나서서 물었다. 

“어떤 것이 차별 없는 참사람( 無位眞人 )입니까?” 

임제가 선상(禪床)에서 내려오더니 그 승려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이르라, 이르라.” 

잠시 후 그 승려가 무엇이라고 대답하자, 임제는 그를 밀치며 말했다. 

“이 무슨 똥 막대기 같은 무위진인인가!” 

6근 작용으로 숨 쉬고 말하고 행동하는 보통의 인간에게 있는 무위진인은 어느 계위에도 속하지 않으며, 분별심이나 차별의 위상(位相)이 없다. 곧 참사람으로 인간 누구나에게나 본래부터 구족되어 내재되어 있는 절대 주체인 것이다. 즉 불성(佛性) · 법성(法性) · 자성(自性)·주체(主體) · 인격(人格) · 인간성(人間性) 그 자체를 말한다. 한마음선원의 대행 스님은 ‘주인공’이라고 하셨다. 또한 마조의 즉심(卽心) [平常心]과 같은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마조의 즉심이 무위진인으로 변형되었다고 본다. 한편 임제의 스승 황벽에게서는 무심(無心)으로 나타나고 , 위산 영우(마조의 손자)에게는 여여불(如如佛)로 나타난다. 바로 이런 사상에 매료되어 백양사 서옹(1912∼2003)스님께서 생전 ‘참사람 운동’을 펼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빨간 몸 덩어리’란 본래는 사람의 심장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기서는 인간의 육신,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면문인 눈·귀·코·입을 통하여 출입하는 무위진인은 일정한 모습이나 형태가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존재다. 

‘무위진인이 무슨 똥막대기인가?’라는 구절은 임제가 무위진인을 설하면서도 벌써 말로 표현된다면 어긋나는 것이니 일정한 틀에 고정화하지 말라는 경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고 난 뒤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으면서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였듯이, 임제는 제자들 각각이 견문각지를 통해 불성을 갖추고 있는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과격한 행동이나 말(할 / 喝)로 연출하곤 했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36호 / 2024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