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부처에겐 아무런 견해가 없다

장백산-1 2024. 7. 8. 21:37

부처에겐 아무런 견해가 없다

13. 마음이 힘든 이유

마음이 힘든 진짜 원인은 바로 분별심 때문
바깥 경계서 마음이 힘든 원인 찾으면 안돼
부처는 견해를 붙잡는 일 없이 그저 자유롭고 걸림없이 살 뿐

 

우리 중생이 살면서 심적으로 괴로울 때를 보면 다 마음에서 올라온 생각이나 감정에 갇혀 살기 때문이다. 주어진 상황이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아~ 싫다!’ 하는 분별이 올라오면 그 분별과 동시에 그 대상에 저항하는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면서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좀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연이어 들기도 하고, ‘저 사람이나 지금 상황 때문에 내가 괴롭다’는 생각이 들면 본인이 피해자가 된 것 같다. 더불어, 싫다고 하는 분별이 짜증이나 억울함, 분노와도 같은 부정적 감정을 연달아 만들어 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부정적 감정 안에 갇혀 있게 되면서 마음이 아주 괴로운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어진 상황이나 만나게 되는 사람을 보면서 이번에는 마음속에서 ‘아~ 좋다!’ 하는 분별이 올라오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좋다는 분별과 동시에 그 대상에 집착하는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면서 역시 또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그 사람을 내 옆에 잠시라도 더 두고 싶은데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막상 가버리고 나면 서운한 마음과 함께 갈애를 느끼게 된다. 아니면, 주어진 지금 상황이나 사람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콘트롤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 대상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콘트롤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런 좋은 상황이 변하거나 어느 순간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운 감정이 들어 또 불안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심적으로 그렇게 힘든 것이 분별심에서 비롯된 저항하거나 갈망하는 생각과 감정 때문이 아니고 외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괴로운 것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즉, 진짜 원인은 바로 분별심 때문인데, 그 점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 괴로움의 원인을 바깥 경계에서 찾는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마음에 맞게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괴롭다며 세상 탓을 한다. 혹자는 본인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타인을 원망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런 시대에 태어난 사실을 한탄하기도 한다.

남 탓이나 환경 탓을 하면서 사는 것은 사실 편리하다. 본인이 책임질 일이 없고 세상이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끝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내 생각의 틀에 딱 맞게 바뀌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계속해서 피해자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맞게 세상이 바뀌어 주었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다른 불만들이 올라온다. 왜냐면 진짜 괴로움의 원인인 분별하는 버릇은 그대로 두고 외부 환경만이 바뀌어졌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분별하면서 그 분별로 인한 불편한 생각과 괴로운 감정 속에 빠져 사는 중생에 비해, 부처의 마음은 밝게 항상 깨어 있지만 아무런 분별이 없다. 예를 들어 중생이 하듯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생각의 틀이나 견해 자체가 없다. 무언가를 콕 찍어 문제시하는 경우도 없고, 이게 더 좋으니 이런 좋은 일들이 더 생겨야 한다고 보는 일도 없다. 생각을 따라가면서 생각에 끄달려 다니지도 않고, 세상 일체가 저쪽에 따로 있지 않고 다 마음 하나의 일임을 알기에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지 피해자로 사는 일이 없다.

아무리 옳고 좋아 보이는 견해라도 견해는 결국 분별이기 때문에 전체가 아니고 일부인 것이다. 어디인가에 마음이 머무는 일이 있다면 전체에서 일부를 쪼개서 분별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부처의 마음은 아무런 곳에도 머물지 않는 무주심(無住心)이자 밝게 깨어 있지만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무념심(無念心)이다.

하지만 부처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중생처럼 살면서 해야될 생각이나 온갖 분별은 다 하지만, 그 생각의 실체가 공하다는 사실이 아주 자명할 뿐이다. 즉, 생각을 몽땅 다 없애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있지만 본래 또 없다는 사실에 밝은 것이다. 생각은 다 하지만 그 어떤 견해를 붙잡는 일도, 마음에 큰 자국을 남기는 일도 없이 그저 자유롭고 걸림없이 살 뿐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36호 / 2024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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