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나네
중국 양나라 때 선승 부대사의 시 한 편을 보시죠.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나네.
앉으나 서나 늘 따라다니고 말할 때나 안 할 때나 함께 머물고 함께 움직이네.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져 있지 않으니 마치 몸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 하는구나.
부처가 계신 곳을 알고 싶은가? 단지 이 말소리가 나는 곳이 부처일세."
선승 부대사는 불이법(不二法), 부처를 위 시처럼 표현했습니다. '곧바로 이것'이라는 자성, 불성, 본래면목을 부대사는 이처럼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난다고 표현했습니다. 방편의 표현이지요. 함께 머물고 함께 움직인다고 이해하면 가까이 있는 것인가보다 하고 헤아릴까봐 다시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법이란, 둘이 아니라는 의미죠. 둘로 나뉠 것 없이, 일체시 일체처에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 부처일까요? 무엇이 불이법일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할 때 이것이고, '바~'할 때 바로 이것입니다. 이처럼 털끝만큼도 떨어지 있지 않고 바로 이것입니다. 굳이 말로 표현 해 본다면, 말소리가 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하든, '바~'하든, '이것이다'하든, '뜰 앞의 잣나무'라고 하든, '마삼근'이라 하든, '마른 똥막대기'라 하든, '옴 마니 반메훔'이라 하든, 말 뜻을 따라가지 않고, 그 말 나온 곳을 돌이켜 회광반조하면, 곧장 바로 이것입니다. 말의 내용을 따라가지 않고, 말이 나오는 곳을 통해 이것이 확인됩니다.
듣고, 말하고, 보고, 맛보고, 냄새맡고, 생각하고, 감촉을 느낄 때 바로 거기에서 확인됩니다.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그 '있음', '생명력', '현존' 등 뭐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그 말 너머가 가리키고 있는 이것이 확인됩니다.
너무 단순한 이것이라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뿐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다 쓰고, 다 100% 활용하고 있는 이 단순한 이것입니다. 문득 돌이켜 보면, 발을 헛디딜 때, 이 당연하고 고작 이것인, 이 아무 것도 아닌 이것이 확인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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