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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인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임시 쓰고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장백산-1 2024. 7. 25. 15:13


방편인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임시 쓰고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법화경에 나오는  화성유품에서는 보물이 있는 곳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인솔하는 인솔자가 사람들을 인솔해 가다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주저앉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들을 위해 거짓으로 안락하고 평안한 성을 만들어 사람들을 편안히 쉬게 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을 찾아가던 사람들은 거짓으로 만든 그 성이 목적지인 줄 알고 마음놓고 편히 쉬게 됩니다.

 

어느 정도 쉬었다 싶을 때 인솔자는 그 사람들에게 이 성은 목적지가 아니라 임시로 그대들을 쉬게 하기 위해 만든 방편의 성일 뿐이고, 이제 좀 더 힘을 내어 진짜 목적지를 향해 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부처님의 방편의 힘으로 삼승(三乘)으로 나누어 말하지만, 오직 일불승(一佛乘)이 있을 뿐, 중간에 쉬었다 가게 하려고 이승(二乘)을 말한 것이니라.' 즉, 방편인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이같이 임시로 만든 성(화성)과도 같아서, 그 방편의 성에서 여정 중에 잠시 쉬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곳이 목적지일 수는 없습니다. 즉 뗏목의 비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방편일 뿐인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임시로 쓰고는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방편일까요? 염불, 다라니, 독경, 좌선, 절 수행, 사경 등의 모든 수행법, 기도법이 다 방편이고, 심지어 경전에 있는 모든 말씀들이 다 방편일 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문자주의를 타파하여 문자 그대로를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전은 방편일 뿐이라서 강을 건널 때 사용하는 뗏목과 같아서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고 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수행법이 사실 방편입니다. 방편에 집착하면 진짜 도착지에 갈 수 없습니다. 방편은 필요할 때만 임시로 잠시 쓰고 버릴 일이지, 방편일 뿐인 불교의 그 어떤 가르침, 수행법 등에 묶이고 사로잡혀, 이것만이 진실이라 믿게 되어 거기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중도가 아닙니다.

 

참된 중도는 어떤 견해에도 치우침이 없는 견해없음의 지혜가 중도입니다. 모든 방편일 뿐인 수행법, 가르침, 교리들은 필요할 때 충분히 쓰되, 버려야 할 때 가차없이 버리십시오. 오직 일불승(一佛乘)만이 진실입니다. 승(乘)은 고해바다를 건너는 '탈 것'이란 뜻입니다. 즉 이승, 삼승이란 수많은 방편들이란 뜻이고, 일불승이란 방편 너머의 참된 진실은 오직 둘이 아닌 불이법 하나일 뿐임을 설합니다. 일불승, 일진법계, 일심 등으로 표현되지요. 진실은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진실은 하나로 귀일합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