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뒷공간
비교는 ‘뭐뭐보다’라는 한 생각서 펼쳐지는 망상 세계, 그에 따른 고통은 한 생각 낸 사람 몫
햇살이 투명한 가을 아침이다. 동네를 걷던 중 감 따던 어른을 만나 마알간 홍시를 얻었다. “더 줄까요?” 하신다. 소박하고 기분 좋은 시골 인심이다. 이맘때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 북인도의 라다크가 떠올려진다.
라다크는 인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네팔과 국경이 맞닿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이다. 버스로 델리에서 마날리, 마날리에서 하루 머물렀다가 다시 버스로 낭떠러지 산길을 꼬박 18시간을 달려야 다다를 수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 해발 5325m 따그랑 라(Taglang-La)를 넘어야 아름다운 라다크의 설산과 초원을 만난다. 그곳에선 고산 증세로 숨을 쉴 때마다 얼음장 같은 공기가 폐를 찌르는 듯하다. 지친 여행자들은 따스한 블랙티를 선사 받는다. 감사하고 겸허해지는 순간이다. 오랜 시간 겨울을 버티며 습득해온 라다크인들의 따뜻한 마음과 이웃을 끌어안는 온정이 느껴진다. 길을 만들기 위해 세월아 네월아 혼자 돌을 깨던 아저씨의 맑은 눈빛도 선명히 기억된다. 까맣고 주름진 얼굴 가득히 퍼진 온화한 미소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라다크는 인도에 속해 있지만 티베트 유목민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일 년 중 8달이 겨울이고 강수량이 부족해 태양이 최고조에 이르는 3~4개월만 문을 열어 여행자들을 받는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에 그동안 라다크인들은 중국, 파키스탄 등 외부 국가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내고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여자, 노인,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구성원으로 꼭 필요한 사람이라 스스로 느끼며 서로를 소중히 여겼다. 탐진치가 없었고 비교 우열이 없었다.”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 말한다. 비슷한 부의 분배 하에 상대적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들은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여행객과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호기심과 유행이 생겨나고 점차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듯하니 조금은 걱정스럽다.
비교를 통해서 ‘뭐뭐보다’라는 인식이 생겨나면 열등감, 박탈감, 경쟁심이 사회 곳곳에 싹트기 시작한다. 그 생각들은 부지불식간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비교는 ‘뭐뭐보다’라는 한 생각에서 펼쳐지는 망상의 세계다. 그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한 생각을 낸 사람의 몫이다. 나는 ‘뭐뭐보다’로 시작하는 한 생각을 내고 있지는 않은가?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관찰자 모드를 하면 할수록 나의 본 모습과 가까워진다. 그것은 진리다. 만약 내가 어떤 생각 속에 빠져 있으면 본래의 나와 멀어지게 된다. 진리와 멀어짐은 불행이고 고통이다.
비교라고 하는 분별과 세상의 논리가 침투하지 않는 틈새는 어디나 존재한다. 그 틈새를 이용해 나만의 뒷공간 만들기를 제안해 본다. 그 공간이 있으면 널널해진다. 고즈넉한 사찰의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편안한 여백의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뒷공간은 성취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리다. 쫓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편안하고 괜찮은 자리다. 마음의 고향 같은 이곳에서 현재를 놓치지 않으려면 진심과 열정이 필요하다. 내가 단지 나일 수 있는 곳, 그것으로 충분한 곳 ‘저스트 비(Just be!)’. 가만히 나의 호흡을 지켜보며 이 순간에 있어 본다. 유난히도 청명한 가을 하는 아래 단풍나무 잎사귀들이 속삭인다.
‘우주 법계에 우열은 없다. 존재가치만 있는 것이라고!’
선우 스님 bababy2004@naver.com
[1751호 / 2024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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