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범부가 알고 있는 세계는 변계소집에 의해 조작된 세계

장백산-1 2024. 10. 20. 18:06

20. 변계소집 구성 요건

 범부가 알고 있는 세계는 변계소집에 의해 조작된 세계

변계소집은 독립적 실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해 일어난 비실체
중생은 ‘생각  개념’ 을 고정화하려고 해 변계소집 소멸 땐 생각 개념에 대한 집착 사라져

마음의 세 가지 모습인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의 교설은 유식불교의 근간을 이룰 만큼 중요하다. 부처님께서는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 각각의 모습에 대해 비유로 설명하셨다. 먼저 변계소집상을 설명하는 비유는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어질어질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의 눈에는 눈과 관련한 질환이 있는 것처럼 변계소집상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비유는 변계소집상이 무명으로 인해 왜곡된 망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한다. 이는 마치 눈병이 난 사람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눈병은 변계소집상이며, 눈병 난 사람은 중생이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생의 마음을 살펴보면, 언어와 문자로 구성된 개념을 고정화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같은 경향을명(名)과 상(相)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명과 상과 집착은 변계소집의 구성 요건이다. 가령 눈앞의 국화꽃에 대해 ‘이렇게 생긴 것은 국화꽃이다’라고 할 때, 국화꽃은 명(名)이고, 이렇게 생긴 것이라는 생각은 상(相)이며, 고정화하는 것은 집착(執着)이다.

반면 변계소집이 사라지면 국화꽃에는 본래부터 이름도, 개념도 없다. 따라서 고정화된 집착도 성립하지 않는다. 중생이 인식하는 세계는 언제나 변계소집에 의해 조작된 유위 세계인데 반해, 부처님이 인식하는 세계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보는 원성실상의 무위의 세계이다.


의상조사께서는 ‘법성게’에서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無名無相絶一切 證智小知非如境)’이라고 하셨다. 이는 부처님의 경계는 명칭과 개념을 넘어 모든 분별이 끊어진 상태에서 증득한 지혜로 나타날 뿐, 소인의 알음알이 경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변계소집상을 끊지 않고서는 원성실상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타기상을 설명하는 비유는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어질어질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의 눈에는 여러 가지 모습들, 즉 털로 된 바퀴 모양, 벌, 날파리, 거승(인도에서 자라는 일종의 넝쿨식물), 청색, 황색, 적색, 백색 등 갖가지 색깔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의타기상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변계소집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들에 의존해 일어난 연기된 비실체적 모습임을 보여준다. 눈병이 난 사람에게는 단지 눈앞이 어른거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심한 경우 본문에 열거한 털바퀴, 벌, 날파리, 거승, 청, 황, 적, 백의 상들이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은 눈병에 의해서 일어난 모습들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변계소집에서 비롯된 여러 분별된 상(相)들도 본질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변계소집 또한 연기와 의타기에 의존해 일어났기 때문이다. 유식불교에서는 전오식, 제육식, 제칠식, 제팔식의 모든 마음은 자체적으로 발생하지 못하고 서로 의지한 연기된 의타기의 모습들이라고 한다. 전오식, 제육식, 제칠식, 제팔식  모든 식은 각기 의지처를 바탕으로 발생한다. 중생들의 모든 식은 변계소집에 의해 작용하며, 연기와 의타기에 의존해 성립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체 모습과 자체 성품이 없는 무자상(無自相) 무자성(無自性)의 공성(空性)으로 본래부터 실재한다고 볼 수 없다.

‘원각경’에서 중생의 근본 번뇌인 “무명의 정체는 무엇입니까?”라는 문수보살의 질문에, 부처님은 “무명자비실유체(無明者非實有體)” 즉 무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셨다. 이는 끊어 내야 할 중생들의 번뇌들이 본질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거짓된 존재들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변계소집은 곧 의타기에 의해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눈병 난 사람에게 갖가지 모습들이 어지럽게 나타난다 해도 그것들은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변계소집 역시 그러하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49호 / 2024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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