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 - - - 생각을 쉬는 것이 공부입니다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전부 실체가 없기 없기 때문에 허망하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모든 모양을 모양으로 보지 않는다면 곧장 여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이 몸뚱이를 끌고 화계사에 와서 법회에 동참하고 있는 이 몸뚱이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고 할 것인가, 없다고 할 것인가.
〈법화경〉에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본래 다 적멸상이며 모든 것이 다 생각이 쉬는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착하다, 악하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세상이 악한 세상인가, 착한 세상인가.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본래 무일물이라” 본래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인가, 죽어 있는 것인가. 오늘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만물의 영장인가. 아는 것이 사업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라도 그 아는 것이 나 자신을 찾는 데는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았느냐.
어떤 사람이 서울에 왔습니다. “너, 어디에서 왔느냐?” “모르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왔느냐?”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할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갈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서울에 왔는지, 어디서 서울에 왔는지, 서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서울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을 살펴봅시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느냐, 그 의문점을 해결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태자로 태어났는데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왜냐,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지, 무엇 때문에 늙는지, 무엇 때문에 병이 들고 무엇 때문에 죽는지를 몰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면할 수 없다는 의문 때문에 사유하시다가 하루는 죽고 사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유성출가를 하시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 들어가서 6년간의 끝없는 고행 끝에 아침에 샛별을 보고 득도를 성취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몸뚱이를 위해 평생 사셨다는 말입니다. 몸뚱이는 죽고 사는 것이 있으나 이 몸뚱이는 허공의 뜬 구름과 같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몸뚱이를 위해서 살다 보니 이 몸뚱이가 ‘나’인 줄 알고 있습니다. 몸뚱이가 아픈데, 내가 아프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은 내가 무엇인가, 모를 뿐이야 모를 뿐인 그 놈을 6년을 끌고 나갔다는 말입니다.
6년을 끌고 나가다가 모를 뿐인 그것이 터지는 바람에 아! 내 몸뚱이는 생사가 있어도 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놈은 생사가 없는 것을 부처님께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같이 나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몸뚱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됩시다. 그것을 배우는 곳이 바로 절입니다. 참나를 위해서 살아보자. 이 몸뚱이는 잠시 빌린 렌트카입니다.
“내 몸뚱이 위해 살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라 몸뚱이는 잠시 빌린 자동차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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