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계란
20. 착각 일으키는 분별
껍질이 흰색이든 갈색이든 둘다 결국 계란은 계란일뿐
분별심으로 본 세상은 망상의 세계 괴로움 근원 내 분별심에 있어
아마도 유치원을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일곱 살 꼬마였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분별 한 가지를 했었다. 아침 밥상에 올라온 계란 프라이를 보면, 도대체 그 계란이 흰색 계란 껍질에서 나온 계란인지, 아니면 갈색 계란 껍질에서 나온 계란인지를 쓰레기통을 뒤져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흰색 계란에서 나온 계란은 깨끗한 계란이라 먹어도 되는 것이고, 갈색 껍질에서 나온 계란은 더러운 계란이라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그때 그런 분별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갈색 계란은 깨끗하지 못한 계란이다’ 하는 믿음이 너무나도 견고해서 부모님께서 흰색이든 갈색이든 차이가 없다고 제 아무리 이야기하셔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부엌 휴지통에서 갈색 계란 껍질을 발견하는 날에는 어머니에게 소리를 치며 화를 내고 한동안 난리를 부렸던 것 같다.
그 당시를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어 헛웃음만 나오고, 막무가내인 나를 키우시느라 부모님께서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잘 인지하고 있듯, 계란 껍질 색깔이 흰색이든 갈색이든 그 자체는 사실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다. 그저 흰색 계란이고 갈색 계란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중 하나는 깨끗하고 나머지 하나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분별을 해서 믿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평화롭게 아무런 문제 없이 존재하는 세상에 임의로 분별을 해서 꼬리표를 붙여 놓으면, 그 렌즈를 통해 세계를 보게 되면서 왠지 그런 분별 자체가 원래부터 항상 있었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즉, 일곱 살 어린아이에겐 정말로 더러운 계란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이 세상에는 항상 존재해 온 것처럼 느껴지지, 그것이 본인의 분별로 인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어렸을 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분별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 세상 무엇을 보던 이것은 좋은 것, 저것은 싫은 것, 이렇게 하면 옳은 것, 저렇게 하면 그른 것 등등,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런 분별의 생각들은 끝없이 우리 의식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분별이 눈앞에 보이는 세상에다 우리가 임의적으로 내린 자기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내가 깨끗하고 더러운 계란이 원래부터 따로 존재해 왔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자기 분별을 실제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자기 분별로 본 세상을 실상이 아니고 망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괴로움은 이러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온다. 원래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분별 꼬리표를 붙여 놓고 좋은 것은 내 쪽으로 당겨오고 싶어 하고, 나쁜 것은 나에게서 멀리 밀쳐 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마음대로 이 세상이 잘 따라 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이 생긴다. 물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분별에게 있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광화문에 나가 나무 아래에 앉아 보면 새소리도 들리고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데 그 순간 새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이고, 앰뷸런스 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라고 분별을 하면, 앰뷸런스 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고역이 된다. 반대로 앰뷸런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환자 입장에서는 그 똑같은 소리가 아주 반가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즉 앰뷸런스 소리는 사실 좋은 소리도 나쁜 소리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싫다고 분별하고 저항하면 괴로움이 생기고, 분별인 줄 알고 아무런 견해를 첨가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괴로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해탈한다는 것은 바로 내 분별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래서 ‘신심명’에서도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간택만을 꺼릴 뿐”이라 하지 않았던가.
눈앞을 보면서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는 분별의 스티커를 떼고 보면 어떤가? 세상이 나뉘어져 보이는가, 아니면 연결되어 보이는가? 어떤 문제나 어떤 이야기, 괴로움이 여기에 있는가?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50호 / 2024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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