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의 선어록 전심법요] 방편은 진실이 아니다
여래가 설하시는 법은 모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마치 누런 나뭇잎을 황금이라고 여기게 하여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한 것일 뿐, 결정코 진실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진실한 것을 얻었다고 한다면 우리 종문(宗門)의 선객(禪客)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본바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얻을 만한 조그마한 법도 진실로 없음을 일컬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 한다.’ 만약에 이 뜻을 참으로 알았다면, 비로소 불도(佛道)와 마도(魔道)가 모두 잘못된 것임을 알 것이다.
여래의 설법은 전부 괴로움에 빠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가짜의 임시방편일 뿐, 결코 진실한 것이 아니다. 중생이 스스로 허망하게 분별심을 일으켜, 특정한 대상을 집착하면서 그것을 갖지 못해 괴롭다고 여기다 보니, 부처님께서는 그 대상은 결코 진실한 것이 아니며,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님을 설해주신다.
유(有)에 집착하는 이에게는 무(無)를 설하여 유에 대한 집착을 깨주고, 무에 집착하는 이에게는 유를 설하여 무에 대한 집착을 깨준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이 어디에 치우쳐 집착하느냐에 따라 유도 설하고 무도 설하는 것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유만이 진리라거나, 무만이 진리라고 설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무든 유든 거기에 무슨 절대적인 진리성이 깃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모두 진실하지 못하다.
중생이 돈에 집착해 괴로워하면 돈이 본래 공함을 설하여 돈에 대한 집착을 깨주고, 또 다른 중생이 너무 나태해 열심히 일도 안 하고 돈도 안 번다면 그 사람에게는 다시 열심히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경제적인 생활을 하도록 이끄신다. 이처럼 치우쳐 있는 이에게 그 치우침을 깨주기 위해 방편으로 설하는 것일 뿐, 돈을 벌라고 하는 것이나 돈을 벌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그것이 다 방편이지 어찌 진실일 수 있겠는가?
만약 진실한 것을 얻었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참된 선객이 아니다. 이 법은 얻고 잃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으며,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다시 잃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얻을 만한 작은 법도 진실로 없음을 일컬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 한다.’고 했다.
글쓴이 : 법상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쌍윳다 니까야] 4가지 믿음(3보 +계율) (0) | 2025.03.13 |
---|---|
원격 치유의 비밀 (0) | 2025.03.11 |
[쌍윳다 니까야] 모든 것은 무너진다 (0) | 2025.03.11 |
스스로 쳐논 울타리를 부수어버려라 (0) | 2025.03.10 |
[상윳다 니까야] 오온의 무상함, 오온의 괴로움, 오온의 무아 (0) | 2025.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