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24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해도 안 되기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해도 안 되기에 이 하나의 법은 사람들이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이 하나의 법을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법은 찾고자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 하나의 법은 찾아도 안 찾나지고, 그렇다고 찾지 않아도 안 되니,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어, 발 딛을 곳 없이 꽉 막힐 뿐이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해도 안 되기에, 의식이 어찌 할 바를 몰라, 의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의식으로서는 모를 뿐인 공부가 무위의 공부, 불성, 자성, 주인공, 일심, 한마음, 본래면목 등의 공부다. 이 하나의 법은 보려고 하면 볼 수 없지만, 보려고 하지 않..

다만 모른겠다는 그 마음이 곧 '이것'이다

다만 모른겠다는 그 마음이 곧 '이것'이다 분주무업 선사가 마조를 찾아왔다. 마조는 무업의 풍채가 좋고 목소리가 우렁찬 것을 보고 말했다. '몸은 으리으리한 불당인데, 그 속엔 부처가 없구나.' 무업이 마조에게 다시 물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학문으로써 대강 살펴보았습니다만, 선에서 말하는 이 마음이 곧 부처란 말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조가 대답했다. '다만 알지 못하는 그 마음이 곧 이것이다. 다시 다른 물건은 없다.' [마조어록] 중에서 불교는 자성, 불성, 본래면목, 열반, 해탈, 주인공, 참 나, 본지풍광 등 다양한 방편의 용어를 써서 법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편상의 용어 속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냥 '이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

마음, 본래면목, 자성

마음, 본래면목, 자성 예수님의 말씀이 잘 녹아들어 살아있는 도마복음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주리라. 눈으로는 결코 보지 못하는 것, 귀로는  결코 들어보지 못하는 것, 코로는 결코 냄새 맡아보지 못하는 것, 혀로는 결코 맛을 보지 못하는 것, 손으로는 결코 만져보지 못하는 것, 생각으로는 결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인류 역사상 많은 성인들은 바로 '이것'을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여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가 직지인심으로 가리켜 보이는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 없고, 혀로 맛을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황벽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은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으..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다 진실하니(立處皆眞)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공이다(隨處作主)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다 진실하니(立處皆眞)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공이다(隨處作主) 어디를 가나 있는 곳마다 주인공이니(수처작주), 지금 있는 자리가 그대로 진실하다.(입처개진)... 만약 그대들이 태어나고 죽고, 가고 머무는 분별심,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법문을 듣는 그 놈을 알도록 하라. 그 놈은 모양도 없고, 뿌리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이 활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임제록] 임제록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있는 그 자리가 가장 진실하니(입처개진), 있는 그 곳에서 주인공이다 (수처작주) 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일 뿐, 다른 때 다른 곳은 없습니다. 진실하다는 말도 하나의 방편일 뿐, 그저 지금 여기 눈앞의 ..

너무 평범하고 당연해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너무 평범하고 당연해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공기는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숨쉬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특별히 애쓸 필요도 없다. 물은 맛이 너무 맹맹하고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마실 것들에 비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와같이 물이나 공기처럼, 존재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는 방편으로 회자되는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도 비슷하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하기도 하다. '이것'은 공기처럼 물처럼 늘 항상 곁에 있지만, '이것'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아지거나 ..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것!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것! 사람들이 숨을 의지하고 사는 공기는 너무 흔해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공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물도 공기와 마찬가지로 물도 너무 흔하고 그 맛이 너무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음료수에 비해 별로 특별한 맛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공기나 물처럼, 존재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소위 우리들이 말하는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고 하는 이것도 공기나 물과 비슷하다.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하기도 하다.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고 방편상으로 말하는 이것은 ..

모든 것에서 이것을 본다.

모든 것에서 이것을 본다. - - 릴라 붓다, 마음, 청전심, 진성, 자성, 불성, 진리, 도, 깨달음, 하나, 불이, 중도, 주인공, 진짜 나, 본래의 나 등등의 ... 이름들은 그냥 이름일뿐 '이것' 이 아니다. 하늘, 땅, 구름, 새, 공기, 바람, 사람, 나무, 동물, 식물, 광물, 흙. 물, 바위, 돌, 모래, 태양, 달, 별, 등등의... 모든 것들이 '이것' 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보통으로 일컫는 붓다는 석가모니로 태어났던 한 인간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붓다이다. 사람만이 붓다가 아니다, 흙, 물, 불, 공기가 붓다이다. 붓다는 물질세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 즉 붓다는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이다. 여기 저기 모든 곳이 붓다이다. 붓다는 기쁨이고 슬픔이고 사랑이다. 불쾌이고 가벼..

영원히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뿐이다.

영원히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뿐이다. - - 무비스님 셀수 없는 세월이 흘러갔어도 옛 날이 아니고 만세월을 돌고 돌았어도 영원히 지금 여기뿐이다. 그동안 바다가 육지로 육지가 바다로 수도 없이 바뀌었는데 풍운이 변하는 모습 얼마나 보았던가.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역천겁이불고 선만세이장금 多經海岳相遷 幾見風雲變態 다경해악상천 기견풍운변태 『금강경오가해, 함허』 흔히 말하는 '한 물건'의 물건됨됨이를 설명한 시다. 이 '한 물건'은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로 이어져 가고 있으며, 언제 끝나는 존재인지를 모른다. '한 물건' 이것을 마음, 진여, 법성, 자성, 진성, 본성, 불성, 진심, 주인공, 본래면목, 여래, 부처, 도, 법, 밑이 없는 발우, 전시안(The all seeing eye), 본..

비워야 채워진다

비워야 채워진다 / 월호스님 마음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참회야말로 첫 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마음", 본성, "본래의 나"를 찾기에 앞서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마음 본성 본래의 나"는 그만두고라도 "거짓된 마음, 거짓된 나" 라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스스로를 돌아다보는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마음공부의 진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반성이 없는 것은 마치 꽉 찬 그릇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 아무리 귀한 체험이라도 그릇 밖으로 흘러 넘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사고방식에 대한 과감한 포기야말로 "본마음 그릇비우기"입니다. 비워진 그릇이라야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