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프랑스 파리에서 봉하로 보내는 편지

장백산-1 2008. 3. 20. 17:13
프랑스 파리에서 봉하로 보내는 편지
번호 66507 글쓴이 황양경(ykhwang)) 조회 1034 등록일 2008-3-20 15:56 누리399 톡톡0


※ 편집자 주 - 이 글은 황 양경 박사님께서 서프라이즈에 보내주신 편지를 편집한 글입니다. 황 양경 박사님은 앞으로도 편지글 형식의 칼럼을 서프라이즈에 게재하실 것입니다. 서팡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봉하로 보내는 편지 (1)
 -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황 양경(프랑스 여성학박사)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움과 그리움이 더해가는 사람이야말로 우리는 진정한 영웅이라 가슴에 새길 수 있으리라.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권좌를 떠나는 그 모습은 손을 흔들며 정치적 권력에 마지막을 고하는 아쉬운 작별도 될 수 있고 어쩌면 가장 자연적이고 순수한 지향을 향해 나가는 첫 발자국처럼 새로운 기대로 더욱 인상적일 수 있을 것이다.

Charles de Gaulle ⓒ wikipedia

프랑스 국민들에게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훌륭하고 기억에 남는 대통령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프랑스 국민들은 80퍼센트 이상이 드골 대통령을 최고의 대통령으로 지명한다.

드골 대통령 사후 25주년을 기념한 앙케이트로 그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시라크 대통령 취임 기에 이루어진 조사라지만 이런 프랑스 국민의 열렬한 지지는 좌파와 우파를 떠나 한 명의 자연인이자 프랑스 국민의 다정한 벗으로 기꺼이 되돌아간 드골에게 줄 수 있는 신뢰와 존경의 표현일 것이다.

비록 그의 집권은 좌파 사회당의 프랑소와 미테랑의 14년이란 기간보다 짧은 10년간의 시간으로 1968년 5월의 젊은 물결(진보적 사회계열의 대대적인 데모)과 개혁의 외침 속에 "아디유" 해야 할 프랑스 최고의 권력가의 씁쓸한 결과의 승복이었지만 사임 이후의 그가 남긴 이미지는 고귀하기까지 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친근해 프랑스 국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더욱 사랑하고 그리워 하는게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프랑스 18대 대통령 샤를르 드골(1890-1970)

1969년 국민투표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인구 650명이 사는 파리근교의 작은 시골마을 꼴롱베(Colombey)로 돌아가 모든 정치적 연관을 끊고 자연과 글로 세상과 소통했다.

한적한 시골에 묻힌 드골의 소박한 묘지 (오랜 좌파의 집권에서 승리한 시라크 대통령은 우파의 영원한 상징으로 드골을 부활시키고 싶어 했지만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드골집권기의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를 프랑스 국민적 영웅을 모시는 팡테옹 묘지로 1996년 이장했다) ⓒ wikipedia

역대 프랑스 대통령으로 그렇게 소박한 묘지가 있을까? 그의 유언은 너무나 단순했다. 어떤 멋진 묘지도 쓰지 말고 이 시골 마을에 묻어주고, 그 어떤 화려한 장례식도 필요 없으며 특히 대통령도 장관들도 장례식에 참석지 못하게 했다. 단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되찾기 위해 생사를 같이한 동지들만을 추모객으로 허용한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아마 권좌를 떠난 한 위대한 정치가의 뒷모습에 그 어떤 정치적, 권력적 여운도 배제한 채 한 명의 프랑스를 사랑한 국민으로 남고 싶은 그의 신념에 더 끌리는지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의 치욕적인 독일점령기 속에서는 이국땅에서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군인으로서 프랑스를 구해낸 <위대한 쟌다크>(처칠은 그를 구국의 영웅처럼 "쟌다크"로 비유했다.) 드골이었지만 1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프랑스 임시정부의 골격만을 갖추어주고 정계를 떠난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이 다시 그를 필요로 하는 그 시간까지 (약 10여 년 동안을) 그는 은거할 줄 알았다.

하지만, 프랑스가 위기에 처할 때 - 알제리와 인도차이나 등 식민지 전쟁기의 어려운 정세에서-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받아들인다(1958년~1968년까지). 다시 평화기가 오고 그를 받드는 우파연합의 국회의 과반 차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68년 노동자와 젊은 프랑스의 새로운 개혁의 외침과 국민투표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고 1969년 4월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그는 프랑스 국민과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 젊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자신이 이미 구태의연하고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시대적 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사회 전반(사회제도나 성적 모럴 등)에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였고 어떤 불평도 회한도 없이 자신의 권좌를 떠났다. 그리고 1년 후 그의 소박한 죽음 앞에서 프랑스 국민 모두는 존경과 사랑의 눈물을 아낌없이 흘려주지 않았던가?

닉슨과 드골 (1969년 퇴임을 앞두고) ⓒ wikipedia


봉하(峯下)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수려한 경관 때문이던가? 아니면 나라를 지키는 봉화가 훨훨 타올랐던 역사적인 곳이라서 인가? 그 이름만으로도 편안한 고향 같은 소박함이 묻어나지 않는가?

포퓰리즘 속에 피어난 역경의 꽃망울 같던 그 대통령의 자리도 채 2년이 지나기 전에 한국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되었고 국회는 물론이고 각 언론들은 쓰디쓴 물이 나올 때까지 씹어대더니만… 오랫동안 사회 구석구석을 틀어쥔 권력과 특권을 내모는 전쟁에 지치고 권위 없앤 대통령에게 해대는 국민들의 원망과 저주에 시달려서 이젠 평화의 땅 봉하로 내려앉으신 건지… 이젠 편안하신지? 정말 묻고 싶다.

프랑스 국민만이 아니라 드디어 우리도 정치적 힘과 자유라는 당당한 권리를 국민 모두에게 다 나누어주고 훌훌 떠난 <아름다운 대통령>을 가슴에 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대도시의 빌딩 속이 아니라 아무 대답 없는 외로운 들판일지라도 우리가 다시 찾아가는 열정과 애정이 있다면 봉하는 그냥 아름다운 시골이 아니리라. 그곳에서 자연이 주는 새로운 생명력과 헐렁한 고무신을 신고 건강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소박하지만 꿋꿋한 <디지털 시대의 선비> 같은 모습으로 우리 모두와 너무나 가까이 있을 것만 같은 그날이 밝았다.


어디에서든 세상과의 이별이 아니더이다.

기대와 사랑이 깊었기에 실망과 원망 또한 깊었던 국민들이 다시 되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인가? 조용했던 <봉하마을>에 다시 봉수대가 켜지려는지 퇴임대통령의 홈페이지는 매일 폭주상태이고 멋진 대통령의 모습을 잊지 않겠노라는 그리움이 절절한 글들이 감동을 자아낸다.

드골의 정치적 생명을 끝까지 함께한 앙드레 말로는 드골을 <거대한 떡갈나무>에 비유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영웅은 아름드리나무처럼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넓고 편안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넉넉한 고목에 비유되는 것 같다.

드골처럼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도 아닌 너무나 젊은 사고, 아직도 할 말이 너무 많이 남은 노 대통령의 귀향은 사실 세상의 그 어떤 대통령보다 더 존경스럽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여이든 침묵이든 퇴임 대통령의 앞으로의 시간들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프랑스의 드골과는 다른 퇴임 후의 <열혈 클린턴 유형>도 살펴볼 만하다. 그는 "나는 나의 조국과 전 세계에 빚을 진 사람이다"라는 표현으로 권력에 대한 진한 여운을 던지며 미국만이 아닌 다시 세계 속에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나? 미국의 정치와 사회적 여정에 항상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온 짓궂은 프랑스…. 지난해부터 프랑스의 중도신문 르몽드지는 클린턴을 '세상의 구원자(Sauveur du monde)'라는 아부 아니면 비꼬는 타이틀로 퇴임한 미국 대통령의 정치이벤트를 자세히 보도해주고 있다.

그의 정치적 행보가 미국이란 지구 상의 대제국(아직까지는 유효하지만!)의 권좌를 떠난 그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미완의 세계경영에 대한 야망인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경제외교와 교육과 복지 그리고 지구환경의 보호라는 21세기 당면한 슬로건을 내걸고 정치 여정을 성큼 드러내고 있다. 그 자신의 앙가주망이 여성계에서는 아름다운 외조처럼 남편보다 나은 여인 힐러리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정치적 동반자로 지원군으로 나섰다고 아름답게 비판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웃집 밥그릇을 감시하며) 너무 많이 담겨있으니 굶고 있는 불쌍한 나라를 위해 몇 숟갈 내어놓아라. 미국의 대 부호들이여!! 나는 기꺼이 기부에 앞장설 테니 당신들도 앞장서서 이 아름답고 고결한 기부들을 잘~해주시지요!!"(클린턴이 지난해에 쉐라톤 호텔에서 가진 기부행사 중에서 - 그는 이념, 권력 그리고 금전만이 새로운 세상을 잉태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그의 오지랖은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펄떡거린다.

그러나 클린턴의 오지랖에서 배우는 교훈도 있다. 우리도 "무조건 충성”의 후진국형 카리스마가 아닌 의식 있는 선진국민으로 존경과 사랑을 후임 대통령에게 줄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와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선진국민이 되고 보니 글로벌한 세상 속에 우리만이 아는 멋진 대통령에게 계속적인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은 욕망도 슬그머니 일어난다.

정치적 이념적 전쟁터를 좁은 대한민국에만 집중하지 말고 딴 국가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우리보다 못한 뒤진 나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일본은 벌써 세계 곳곳, 요소요소에 인재들을 심어놓고 그 영향권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 우리가 그렇게 뒤떨어져 있나? 세계 속에서 일할 인재들의 실력이 문제 되나?? 단지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였던 것은 아닌지. 아직도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그 시절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뉴스는 온통 우리들끼리 물고 뜯는 싸움판을 포커스로 삼는다. 우리가 우리들의 우물 속에서만 정치를 논한다고 세상의 테러와 전쟁 그리고 급변하는 세계정세가 우리를 관대히 배제시켜 줄 것인가? 내 자신 속에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그런 배짱 좋고 간덩이가 큰 젊은이들을 키우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란 우물은 이젠 포화상태다. 그리고 너무나 열정과 실력이 넘쳐 우물 자체를 다시 넓게 파야 할 실정이다. 이왕이면 더 넓은 세상에다 우물을 파서 그곳에 인재를 심고 우리의 정신과 전통을 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끼리의 경쟁이 전부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와 인재들…. 그 전부가 우리들이 포커스로 삼아야 할 경쟁 상대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요 몇 년 사이에 부쩍 눈독을 들이고 있는 아시아라는 소비시장은 21세기 주연배우로 등장했음을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아직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정보와 디지털시대에서 일본과 중국을 앞서는 완전 주연급으로 대한민국이 선점하려면 정치와 외교에서 세련된 의식과 저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 첫 출발점을 나는 노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본다. 새로운 정치 환경 그리고 통일과 외교 등에서 그는 분명히 원하는 만큼 다 이루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멋진 침묵을 보임으로 드골처럼 아름다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영원히 영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설익고 벌써 조숙해져 버린 대한민국은 프랑스처럼 한가할 틈이 없다.

진보와 개혁의 바람 속에 사라진 드골이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평등이 아닌 특권과 기득권이라는 사형선고 받았던 식물인간들이 되살아나는 역사적 후퇴의 역풍에 떠밀리지 않았나? 패전한 전쟁터에서 맥없이 엎어져 있는 국민들에게 전사처럼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에너지를 누구에게 청해볼까?


귀향하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통령께 바란다면… 

활짝 웃고 계신 노무현 대통령 ⓒ 까르르새댁

드골식이든 클린턴식이든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도록 역사 속에 국민들에게 감동과 깨우침을 계속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그런 혜안을 지쳐 있는 국민들에게 열어줄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이제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더 멀리 내다보는 21세기를 사는 디지털 국민의 한 사람으로 세계를 다시 그려보는 것은 어떠신지?

만일 당신이 지구 상의 평화를 논하고 21세기적 선진 한국의 모습과 비전을 제시해주신다면…, 다른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참여하고자 하는 <환경과 복지>의 화두들을 아직은 좌파인지 우파인지 그 근본조차 아리송한 대한민국의 뿌리 없이 뒤엉킨 정치코드와 그 속에서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던져주신다면…

똑똑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좀 더 빨리 겁 없이 당당히 세계 속에 리더쉽을 발휘하는 주체로서 풀쩍 뛰어오를 것 같습니다.

열정의 국민들에게 부족한 것은 사실 내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젠 잃지 않고 간직해야 할 역사와 전통이 무엇인지 깨쳐버린 국민들은 당신을 기억하는 그 열정대로 과감히 승부할 것입니다.

세계가 내 경쟁자이지 대한민국은 보듬어야 할 정체성이자 정신적 자부심의 중요한 인프라일 뿐이라는 것을…….
        
프랑스는 우파의 사르코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좌파의 분열과 무능함을 심판했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확실하게 좌파의 견제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실망과 좌절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을 한 번 더 믿어 볼까 합니다.
               

2008년 3월 18일

평등과 문화의 저력이 살아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이제 막 피어오른 희망의 땅 봉하로 띄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