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후보로서 실력이 모자라지 않는데,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선이 안 될 경우 미국은 세계의 인권, 가치, 자유 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이제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냉전 체제의 종식과 같이 국제 사회의 경제, 외교 질서의 큰 국면 전환이 다가왔다. '미국 이후의 사회로 가자'라는 말이 미국 내에서 회자 될 정도로 미국의 패권적 외교 정책이 다자주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의 파생상품들은 신고도 되지 않았고, 이는 결국 관리 감독이 어렵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부실의 규모 또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미 문을 닫은 은행들의 부실 규모마저도 파악이 어려울 정도이므로 이 사태는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나아가 신용의 붕괴는 미국 내 소비를 감소시키고 결국 중국의 수출,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감소하게 만들 것이다. 내수가 작은 우리나라는 수출의 감소와 환율 문제 등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태는 예견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도래한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입법을 막는 등, 미국의 금융자본은 미국 정부와 의회를 관리(?)했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자동차 3사를 국유화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이지만 규모와 전후방 효과를 생각할 때 자동차 3사를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현실을 오늘날 미국은 맞이하고 있다. 오만한 외교에서 겸손한 외교로, 다자적 협력 체계로 전환하는 미국의 변화는 물론, 새로운 세계 경제, 안보 질서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2. 오바마 정부의 대외전략 기조
'미국의 지도력 회복을 위한 7대 전략 목표'를 보면 5개의 항목은 전과 동일하지만, '동맹과 동반자 관계 강화를 통한 공동 안보 모색' 및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처' 부분은 변화된 것이고 우리는 이를 주목해야 한다. 특히 동반자 관계 강화를 통한 공동 안보 부분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조명해 봐야 한다.
큰 변화의 성격을 모르고 대응하면 언제나 한계가 있고,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개발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경제 구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개방, 개혁이 아닌 고립주의적 사고로 판단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면이 변화할 때 대응하는 큰 조망을 잃은 북한은 오늘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노태우 정부의 동구권 수교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노태우 정부의 참모들은 대통령을 잘 보필한 것이다.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잘 적응하지 못하면 필리핀이나 북한과 같은 현실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이명박 정부가 잘 대응했으면 좋겠다.
3. 동북아 정책의 변화 전망
'새롭고 항구적인 아시아 집단안보의 틀을 구축해야 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정부의 동북아 정책의 기조다. 이는 이제까지 일본을 정점으로 아시아를 관리해 왔다면 이제는 중국과 일본 등의 균형을 이루면서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중국의 달러 보유 상황과 제조업 크기 및 성장한 경제 규모를 간과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현재 상당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고, 지금 총선을 하면 자민당 집권이 보장받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무라야마 수상 이후, 극우 세력의 계속적인 집권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외교적 권위와 도덕성 손상을 불러왔다. 일본 내부적으로 극우적인 분위기가 일부에서 환영을 받더라도 한편으로는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전후에 EU 통합을 이루는데 주역이었지만 일본은 주변국과의 사이조차 좋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6자 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외교적 행동이었으며, 이는 또한 미국에게 있어서는 관심 밖의 일이다.
이번 오바마의 외교 정책을 보아도 미일동맹을 강화한다는 언급 정도만 있을 뿐이다. 사실상 일본의 외교 안보는 미국에 예속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이다. 오바마 측의 북한에 대한 판단은 대화를 하지 않아 핵개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6자 회담을 통하여 폐기를 선언하게 한 것은 그나마 의미 있는 일이며, 이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오바마 본인의 견해다. 나아가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 그 차원만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 체제의 관점에서 볼 것이고 이에는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 또한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를 보면, 오바마 정부가 동북아 문제에 대해서 잘 정리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며, 이는 동북아 문제에 대하여 큰 전환을 의미한다.
부시의 역주행 외교는 2005년 '젤리코 보고서'의 외교적 해결 방식을 수용하면서 결국 전환을 했지만 5년여에 걸친 부시의 강경 정책과 발언들로 말미암아 북한의 불신을 불러옴으로써 이후 북한 핵 협상 국면에서도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의 오바마 정부 구성을 보면 동북아 문제 해결에 있어 최상의 라인업으로 짜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핵의 이전 등을 막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북한 핵의 폐기를 통한 전 세계적인 핵 확산 방지의 성공적 모델을 만들려고 시도할 것이다.
또한 2012년에 '강성대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북한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시점을 맞아 협상을 통하여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좋은 기회를 맞았다. 아마도, 오바마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면 6자 회담과 북미 회담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측은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승격시킨다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합의를 계승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빌미로 한미동맹에 따른 군사적 비용의 한국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한미 FTA 또한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경제 현실과 특히, 자동차 산업의 문제 또한 오바마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미국 의회에서 비준되는 것이 아니다.
4. 한국 정부의 대응 전략
한국 정부가 이런 시점에 미국과의 관계와 동북아 관계를 잘못 대응하면 여러 가지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역사의 전환 단계에서 헛발을 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용 외교란 역사 발전과 전환의 성격을 잘 파악해서 그동안 주장하던 것도 접을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항상 국가와 국민의 관점에 서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자제할 수 있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있어야 국가를 끌어가는 실용적 자세를 갖춘 것이다.
냉전도 끝났고, 신자유주의 체제도 끝났고, 이제 다음 단계로 전화하는 시점이다. 70년대식 냉전적 사고방식과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 새로운 스테이지를 준비하고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정책 또한 북미관계의 전개 양상을 잘 파악하면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종전처럼, 한미일 삼각동맹만 주장하며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는 나중에 비용부담만 전가되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다.
중국과 한국의 무역 관계와 군사적,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해 보면서 중국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반기문 사무총장을 선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가장 큰 힘을 발휘해준 나라다.
동북아 정세는 크게 바뀌고 있는데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인식이 대북관계 또한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북한에 대하여 어떻게 대우하고 어떻게 발언하는가는 북한의 큰 관심사다.
때론, 작은 일이 큰 노력과 대가를 불러온다. 금강산 총격 사건 등, 위기관리는 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특히 인도적인 지원 등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나마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식량 지원이었다. 북한 식량 부족분의 3분의 2를 지원해 왔던 것인데 이를 금년에 들어 일체 제공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면 남한에 대하여 무시하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수교를 통하여 경제적 지원과 차관 등이 가능해지고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을 통하여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상황이 되면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규모의 경제 지원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금액이다. 어려울 때 지원한 소액이 중요하다. 국내산 쌀을 주는 것은 보관된 재고의 소진이고 결국 농민에게 정부가 지불하는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정상 간의 합의사항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정상간의 합의 사항을 무시하는 것은 외교 관례에 있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이를 엄하게 문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에 방문한 우리 대통령이 원조 합의를 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외교관계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서명하면 다음 정부는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과의 합의 사항은 쌍방에 경제적으로도 이로운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행위는 있을 수도 없는 일임은 물론, 북한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한국 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성향은 항상 엇갈려 왔다. 대화와 압박 등, 시각 차이가 나는 정부가 양국에 공존해 오면서 시기를 놓쳐온 것이다. 이제 북미간의 관계에 따라 우리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잘못되면 남북이 직접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결국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을 통하여 북한과 접근해야 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결과는 우리만 고립될 상황을 불러올 것이고, 결국 실익도 잃고 명분도 잃는 것이다. 이에 군사적 긴장마저 온다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이 올 것은 분명하다.
"핵 문제가 해결되면 3,000불을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북한은 우리와 유엔에 동시 가입한 국가다. 민족의 문제를 떠나 국제적으로 보면 국가인 것이다. 타국의 주권과 내정에 대하여 "만들어준다"는 식의 발언은 상식 밖의 언행이며, 언제나 대통령과 각료 등은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호,불호를 떠나 외교적인 표현을 견지해야 한다.
지도자의 국면 전환에 대한 인식, 국가간의 실용적인 이해관계의 발전, 유연성, 냉철한 판단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성공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국면의 전환기에 해야 할 일을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전환기의 지도력은 유연해야 하며, 나라의 진로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남북 관계는 이제 정권 차원의 문제도, 이념 차원의 문제도 아닌 생존 차원의 문제다. 체제 경쟁은 이미 결과가 나와 있으며, 이제는 남북 공존의 틀을 어떻게 만드느냐, 동북아 평화 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개념으로 접근해 공동체 안보를 통해 우리의 생존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 예산은 연간 300억불 규모로 우리보다 국경이 많은 독일이나 영국의 군사 예산 150억불 수준보다도 많다. 중국은 20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600억불 규모이다. 군사 예산의 절약은 그만큼 복지와 교육에 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평화가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라면, 이는 주변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약소한 나라인 우리가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다. 3단계 핵 폐기 협상의 결과로 발생할 에너지 지원 합의는 결국 우리의 부담이다. 지원할 것이 분명하고, 할 수밖에 없다면 기왕에 유연한 정책 전환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