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진 교수의 과학과 불교사상] 44. 이사무애(1)
- 도봉산 보는방향 따라 모습 다르지만 -
- 상주불변하는 본체는 오직 하나일 뿐 -
전자나 빛은 한 쪽에서 보면 파동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입자이다. 도봉산을 서울 쪽에서 보면 남도봉이요 의정부 쪽에서 보면 북도봉이다. 큰 물에 바람이 일면 이 파도도 있고 저 파도도 있다.
도봉산을 어느 쪽에서 보느냐의 인연에 따라 수많은 도봉이 나타나며, 바람이 언제 어느 곳에 어떻게 부느냐의 인연에 따라 수많은 파도가 일어난다. 이렇듯 수많은 도봉과 파도가 나타나지만 그 불변하는 본체는 오직 하나 도봉산과 물일 뿐이다.
이 예로서 체와 용의 관계를 비유하여 설명해 보자. 여기서 체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일체 차별상의 근본이 되는 절대평등의 본체로서 일체 만물의 불변상주하는 본 모양을 가리키며, 용이란 체를 근거로 하여 인연에 따라 일체 차별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위의 예에서 도봉산과 물은 남도봉과 북도봉, 이 파도와 저 파도의 차별이 없이 불변하는 본체이므로 체가 된다. 도봉산과 물이라는 본체가 여러 각도에서 본 다양한 도봉과 여러 곳에서 이는 다양한 파도로 나타나 갖가지 차별상이 생기는 것을 용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다만 비유로서만 성립할 뿐 체와 용에 대한 완벽한 예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산이나 물도 다른 산이나 다른 물건과의 관계에서 보면 엄연한 차별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와 용에 대한 긍극적인 예는 색즉시공과 공즉시색 즉 진공묘유(眞空妙有)에서 찾을 수 있다.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은 결국 같은 말이지만, 이를 굳이 나누어 본다면 진공과 묘유를 의미하게 된다. 색즉시공이란 색으로 나타나는 온갖 차별상은 결국 무자성이어서 평등 무차별한 공이라는 의미이므로, 색이 숨고 공이 드러나는 것으로서 체의 면에서 공을 강조하는 진공의 의미이다. 공즉시색이란 진여의 본체인 공이 곧 색이라는 의미이므로, 공이 숨고 색이 드러나는 것으로서 용의 면에서 색을 강조하는 묘유의 의미이다.
이제 이러한 체용과 관련하여 화엄에서의 사종법계(四種法界)에 대하여 알아보자. 사종법계라 함은 사법계, 이법계,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사법계(事法界)란 우주 만유의 현상이 서로 대립하여 차별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남도봉과 북도봉, 이 파도와 저 파도의 차별상이 드러나는 색의 세계이다. 물리학에 비유하면 이는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고 하늘에는 달이 떠있는 현상의 세계이다.
이법계(理法界)란 차별의 만유는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그 모든 것에 일관한 본체는 절대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여러 도봉과 여러 파도가 인연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상주불변하는 하나의 본체인 도봉산과 물의 세계를 가리킨다. 색과 대비하여 본다면 공의 세계이며, 물리학에 비유하면 사과와 달의 현상을 있게 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이제 이사무애법계관을 살펴보자.
물리학이란 자연 현상의 규칙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그 모양이 훌륭하게 보이는 법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 현상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면 물리 법칙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예로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이더라도, 그것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등의 무수한 개개의 현상과 떨어져서는 성립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봉이나 물이라는 본체는 우리 앞에 나타나는 개개의 도봉이나 개개의 파도라는 차별상을 떠나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파도가 곧 물이요 물이 곧 파도이며, 개개의 도봉이 곧 도봉산이요 도봉산이 곧 개개의 도봉이 된다. 이는 일체 차별상의 사법계가 절대 평등의 이법계와 상즉상입하여 원융무애함을 나타낸다. 이와 사를 다시 체와 용으로 보고 진공과 묘유를 그 예로 든다면, 이사무애법계관이란 체가 즉 용이고 용이 즉 체이니 진공이 즉 묘유이고 묘유가 즉 진공이어서 진공과 묘유가 원융무애하고 색즉시공이며 공즉시색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단공(斷空)이 아니고 진공이다.)
그리하여 색즉시공이라 하면 색이 숨고 공이 드러나 공뿐인듯하고 공즉시색이라 하면 공이 숨고 색이 드러나 색뿐인듯 하지만, 색과 공은 상즉하고 상입하여 서로 방해하지 않고 오직 원융무애할 뿐이다.
글: 양형진<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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