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필자의 글에는 거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육두문자와 저속한 단어가 등장한다. 진리가 깊고 어려울수록 더 그렇다.
이는 필자가 워낙 무식해서 필자가 너무 고상한 단어만 골라 글을 쓰면 나중에 필자가 읽기도 졸리기 때문이다)
참나와의 만남 제 1권
<참나와의 만남> 이 대강 정리되어 올려놓았습니다.
이 내용은 과학과 논리의 입장으로 밝혀본 '자기 자신의 실체'에 관한 글로, 필자 글의 중심사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필자가 쓴 글이나 앞으로 쓸 글은 모두 이 사상에서 나옵니다. 이 글만 읽으시고 좀 생각만 깊이 하고 잠재의식에 담아둔다면 반야심경 풀이나 노자 도덕경 풀이, 그리고 창세기 해석은 물론 이 현세에서 부자가 되고 신선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 분량은 대강 책 두 권 이상이 되니 시간 있으실 때 차분히 읽어\시기 바랍니다. 우선 목차부터 확인 바랍니다. 단, 앞으로 보강, 수정할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퍼가시는 것은 차후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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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와의 만남 [서론]
참 나(眞我)와 만난다?
아니, 내가 여기 분명히 있는데 어디가서 진짜 나를 만난단 말인가?
이거 정신병자 소리가 아닌가?
이 글은 이미 20여 년 전에 원고지에 써놓았던 것인데, 원고지가 다 삭아서 바삭대기 때문에 우리 아이를 시켜 다시 정리하는 것이고, 이 원리는 이미 필자의 카페에 많이 인용되었고 또 앞으로 쓸 글도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글은 책 두 권 이상 되는 방대한 양이지만, 이것을 읽음으로 정말 내가 이 지구 상에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될 것이므로 독자님께 일독을 권한다.
이 서론과 끝 부분의 결론은 매우 길기 때문에 편의상 목차를 붙인다.
1. 나(我)란 무엇인가?
2. 부처님한테 물어보자
3. 예수님에게 알아보자
4. 동물은 죽지 않는데 사람만 죽는다
6. 우주와 물질의 생김새
7. 생명이란 무엇인가?
8. 진화론 고찰
9. 신본주의인 창조론과 심본주의인 연기설의 고찰
10. 창조적 진화론
11. 생물의 진화 과정을 말하는 천부경 속의 홍익인간
12. 인간은 神의 피조물인가?
13. 자연 속에서 자살하는 동물들과 그 이유
14. 인간이 동족만으로 번식하려 했던 이유
15. 인간의 먹거리 문제
16. 동종 간 성생활을 하는 이유
17. 나는 바로 하느님이다!!!
1. 나(我)란 무엇인가?
요즘 TV 광고에서는 '나만의 개성!', ' 나만의 공간! ', '나만의 패션!', 을 선전하고 있고, 연속극에서는 '나만의 사랑' , '나만을 위하여!' 등의 주제로 철없는 극작가들이 시청자를 이끌다 보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특히 청소년들은 저만을 알고 저만을 위해줄 것을 바라게 되었다.
이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개인 우월주의적 사상의 독소로써, 그러다 보니 요즘 결혼하는 젊은이들은 서로 자신은 상대를 필요에 의해 결혼한 채 상대가 저만을 사랑해주고 저만의 개성을 맞추어주기를 바라니, 그러고도 이혼이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한 것! 현재 우리의 이혼율은 결혼 대비 48%로 미국과 네델란드를 빼놓고는 세계 1위. 완전 선진국이 되었다.
그럼 우선 이'나, 나, 나'하는 '나'의 정체에 대하여 알아본다.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 이름이 나인가?
아니다. 내 이름을 홍길동에서 김선달로 바꾸었다 해도 나는 나이다.
그럼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나인가?
이도 물론 아니다. 옷을 날마다 갈아 입어도 나는 나니까 ...
그럼 내 직위와 내 명예가 나인가?
이도 물론 아니다. 내 직위는 요즘 정치인들처럼 하늘의 나는 새까지도 떨어뜨리다가도 하루 아침에 쇠고랑을 차고 따라서 하늘 같던 명예도 개떡이 되니까...
그럼 내 몸둥이가 나구나.
그러나 내 몸둥이의 세포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즉, 피부의 세포는 3개월쯤 밖에 못 가고 가장 오래 간다는 뼈의 세포도 길어야 5 년... 그러니까 5 년 전의 나는 이미 죽고 다시 태어났단 말인가?
또 몸이 있다 해도 그 몸은 일단 물질인데, 이것을 분해하고 또 분해하면 결국 원자가 되고, 이것을 또 분해하면 쿼크가 되어 진공 속의 에너지에 불과한데....
그럼 나의 마음이구나.
그러나 살인 강도 짓하고 감옥살이 하던 놈이 어떤 종교에 귀의하여 아주 착한 사람으로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 그러니까 마음은 딴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나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이 나인가?
물론 아니다. 허깨비를 아무리 모아 놓아봐야 역시 허깨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내가 정말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내 인생을 산다면 이것보다 더 허무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 상의 60억 인구 중에서 정말로 참 내가 무엇인지 알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59억은 내가 뭔지도 모르며 내 인생을 살 것이고, 그러면서 인생의 행복을 찾으려 한다고 본다.
우선 이 내가 무엇인지 필자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성자들한테 물어보자!
2. 부처님한테 물어보자
부처님, 예수님 역시 그 진리가 우주 섭리에 통하는 분들이시니 우리 하느님과 다를 게 없는 분들이다. 백두산 정상처럼 올라가는 가는 길이 좀 다를 뿐이지 올라가면 다 같다.
불경에서 주기도문 같은 반야심경 (般若心經) 말씀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
즉 '물질이 곧 허공이며 허공이 곧 물질이니,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 이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생각도 없고, 물질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각이나 뭐가 어떻게 된다는 법(진리)도 없으니, 눈으로부터 의식의 세계까지 실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반야심경은 네 눈코를 비롯한 너의 감각 기관은 실은 헛된 것이고, 이 세상의 물질을 비롯한 너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도 실은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이 너의 감각기관과 이 감각기관으로 성립되는 모든 것, 또 허공과 물질이 다르지 않다는 반야(般若)의 지혜는 결국에 가서는,
菩提薩陀依般若波羅密多故心無碍無碍故無有恐怖遠離顚倒夢想究竟涅槃
'보살 등 선지자들은 이 반야바라 밀다에 의지한 고로 마음에 장애가 없고 공포가 없어서 헛된 꿈을 버리고 열반(부처님 세계, 천국)에 이르게 된다'
이번에는 금강경(金剛經)도 알아보자.
금강경의 핵심은 非相 非非相이다 (여기서 물질의 형상은 像이고, 물질을 포함한 마음의 상까지는 相)
즉 '相은 相이 아니며 相이 아닌 것 아니다' 이다.
이게 무슨 헷갈리는 소리인가?
또 이 금강경의 사구계(四句契)에,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즉 '무릇 모든 相이 모두 허망된 것인데, 만약 모든相을 相이 아닌 것으로 보면 이는 바로 如來(부처,진리)를 본 것이다'이다
그러니까 '진리는 바로 어떤 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相은 모두 허망된 것이고 그 相을 있게 하는 원리 속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주 공간에 널려 있는 물질이면서 허공인 존재들은 무엇인가?
먼저 내 몸을 포함한 물질은 분해하면 원자가 되고, 이 원자를 다시 분해하면 쿼크가 되는데, 원자도 그렇지만 이 쿼크는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진공 속 에네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이 에너지를 또 분해하면?
이 문제는 입자 물리학을 연구해봐야 알기 때문에 본론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논한다.
3. 예수님에게 알아보자
그렇다면 태양도 있기 전 그 빛은 무슨 빛인가?
예수님은 말씀한다.
' 나는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그렇다. 그 빛은 바로 생명이며 진리의 빛이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태초에 대생명이 자기표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천부인>과 <천부경> 등 민족의 뿌리를 연구하는 필자가 부처나 예수를 논하는 것은, 그분들은 모두 정신세계가 우리 하느님처럼 우주의 진리와 통하시는 분들이라, 먼저 말했듯이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오르고 보면 백두산 천지는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빛이나 불가의 대일광여래(大日光如來)는 모두 우리의 '한'과 같은 빛이고, 생명이고, 하느님이다.
창세기에는 흙(각종 아미노산, 단백질)을 빚어 육신을 만들고,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 즉 아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갈빗대를 분열시키어 아담의 짝인 이브를 만들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지금도 해양 연체동물, 즉 오징어 류는 수컷과 암컷이 교대로 성전환을 하기도 하며 달팽이 류는 아예 암수가 한 데 붙어 있다가 짝 짓기를 할 때는 또 이와 같은 달팽이를 만나 숫은 다른 것의 암과 , 그리고 그 암은 다른 것의 숫과 유전자를 교환 한다.
왜 생명체들은 이렇게 힘든 짓을 할까?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이 자기 복제를 하지 않고 다른 유전자와 교환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복제 또는 근친상간을 했다가는 무지랭이나 병신을 낳아 결국 멸종하게 되고, 유전자 교환을 해야만 건강한 후손을 얻게 되는 자연의 섭리 때문이라 했다.
즉, 생명의 본성은 저 혼자 놀게 아니라 같은 류끼리 널리 어울려 좋은 유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자연의 섭리를 일찍 깨달아 '홍익인간'이라는 교훈을 내린 것은 우리 하느님이다.
그러니까 인간도 태초에는, 아니 지금도 남녀 양성의 유전자 속에는 성을 전환할 수 있는 원인인자를 가지고 있고, 사람도 태초에는 양성이 같이 붙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원시 공룡들은 암컷이나 수컷 중중 어느 것이 다 죽고 짝이 없으면 어떤 독초나 어떤 풀을 먹고 성전환을 한다고 했다.
또 지금 은사시나무 등은 수컷나무에서 너무나 꽃가루가 날리어 공원에서 숫나무들만 골라 모두 베어버리면 몇 년 뒤에는 암 나무들 중에 어느 것이 수나무로 성전환을 하여 도루묵이 되게 한다 했다. 이는 원래 그 나무 속에 양성의 원인 인자가 다 들었다는 증거이고, 이상으로 보아 태초에 아담의 갈비대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몽땅 거짓말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뱀은 무엇이고 선악과는 무엇일까?
다시 예수님한테 물어보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육시킨 다음 전도 파견을 보낸다. 그때 주의사항이 '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여라'이다.
즉, 당 당시 유대인들은 뱀을 지혜의 동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지혜는 하느님의 지혜가 아닌 간교한 인간의 지혜이다.
' 저 뱀 같이 간교한 놈! ' 우리 말도 같다.
이상으로 보아 뱀의 유혹을 받았다는 것은 동물인 뱀과 통화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이 지혜의 유혹을 받았다는 이야기 이다.
다음 선악과는 무엇인가? 이는 善惡果라 하니까 착하고 나쁜 열매로 알면 헛일이다.
善惡의 뜻은 '좋고 싫은 것' 이라는 뜻도 있고, 果는 결과(結果)도 말한다.
다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들도 다 하느님이 먹여주니...'
이상으로 보면,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살던 아담과 이브가 지혜가 생겨 자아(自我)를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이 자아를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지혜가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는 눈이 밝져서(지능이 생겨서)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그곳을 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류는 원죄를 짓게 되어 지금껏 내려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가금 기독교인들한테 질문한다.
'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을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겠습니까? '
' 글쎄요. 한 10분쯤 걸렸을까? 30분? 아니, 한 시간? 근데 그게 왜 중요합니까? "
필자는 또 묻는다.
'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인지 불량식품을 먹어 식중독에 걸렸다면 그들이나 뒈지던지 말던지 할 것이지 왜 죄 없는 그 후손, 그러니까 6천 년 후의 우리까지 원죄가 있습니까? 글구 그들에게 원죄가 있어 우리에게 원죄가 있다면, 예수 아니라 예수 핼애비를 믿어도 우리의 원죄가 없어집니까? '
이런 질문에는 아예 대답조차 않는다.
아담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시간은 지금 현재 우리까지도 깨물고 있고, 그 독은 점점 더 퍼져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즉, 자아가 생기고 이 자아 만을 위한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성은 그 물질에 갇히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예수 가라사대, ' 회개하라. 그러면 천국에서 영생할 것이다. '라고 하니까, 회개가 전에 도둑질이나 서방질 한 번 한 것, 그리고 교통신호 한 번 위반한 것을 회개하라는 건 줄로 안다. 그러나 회개(悔改)란 그렇게 잘못한 것을 뉘우쳐 고치란 말이 아니고, '네 몸뚱이가 너인 줄 아는 네 자아를 선악과 이전으로 돌리라'는 말이다.
즉, '너는 네 몸뚱이가 네가 아니고 모든 생명인 '우리'가 바로 너이며, 이 모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네 개인의 지혜가 아닌 자연의 섭리 즉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하면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 되고 너에겐 죽음이 없다는 말이 되는데' 도둑질 한 번, 서방질 한 번 한 것을 아무리 후회하고 죽어서 천당 가기를 빈다면 그건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다.
예수는 다시 말씀하신다.
" 마음이 가난한 자여,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의 것이요. "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아가 없으므로 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자기의 소유는 진정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소유 즉 '우리 것' 이라는 것이다.
그럼 자아가 없이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이 나의 소유와 무소유에 대하여 현대인들의 착각을 예로 들면서 한번 비교해보자.
여기에 만약 어떤 사내가 창녀촌에 가서 창녀와 하룻밤을 같이 했다고 하자. 그때 이 남자는 그 창녀가 어젯밤에 어떤 녀석과 어떤 짓을 했는지에 따지거나 그에 대해 질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자기 부인이 딴 남자와 간통을 한다면 질투와 증오에 몸부림을 칠 것이다. 이는 물론 자기 부인이 자아에서 나온 '내 것'이라는 개인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유의할 것이 있다. 이렇게 내 것이란 없다고 하니까 일할 것도 없이 허구 한날 놀다가 어쩌다 몇 푼 생기면 남들한테 다 퍼주어 항상 알거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하느님의 교훈 천부경처럼 '하나, 둘, 셋에서 아홉까지 완성한 다음 그것을 열라' 했으니, 가령 천 억을 모은 사람이 있더라도 이는 결국에 가서는 그 기업의 종업원들 것, 또는 그 공장의 여러 사람들이 먹고 살 터전, 더 나가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는 또 지금 우리가 나무를 심는다거나 자연을 보호한다는 정신과 같은 것인데, 이는 내가 아닌 후손에게 좋은 땅을 물려 주기 위한 것이니 여기에도 비유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런 사람이 드물다.
6. 우주와 물질의 생김새
우선 이 글은 본론에서 철저히 연구되겠지만 대략적인 서론만 말한다.
우주를 논할 때 아인슈타인의 '마이너스 곡률에 의한 말안장형 우주론'과 하블의 '적색편이에 의한 팽창하는 우주론'이 있는데, 지금은 하블의 팽창하는 우주가 정론이 되었는데, 그는 우주는 태초, 그러니까 약 150억 년 전에 하나의 점에서 폭발하여 고무풍선 커지듯 자꾸 커지고 있다는것 을 적색편이로 증명하였다.
그러나 원리상 우주는 커지기만 할 수 없다. 그 에너지가 다하면 다시 축소하여 언젠가는 다시 하나의 점으로 돌아가 우주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현대 천문학이다.
그러나 불경에는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 즉 만들어지고 머물고 허물어지고 허공이 되는 것을 우주로 보며 이것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설명이 길어지기 때문에 '우주관과 현대 천문학이 본 우주관'에서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 태앙 이야기나 잠시 하자.
우리 태양은 대략 5억 년 전에 태어나 아시다시피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그리고 깨진 별 소행성 띠 화성, 목성, 토성, 해왕성, 명왕성이 있어 우리 지구는 태양의 은혜를 받으며 생명들이 살고 있고, 달은 엉뚱한 데를 떠돌던 별이 지구의 인력에 이끌리어 지구를 돌며 태양이 잠자는 사이 지구를 비추어 시인들이 시를 쓰게 하고, 연인들이 그 달빛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게 한다. 그러나 그건 아무 것도 아니고 이 달이 있으므로 그 인력에 의하여 바다가 숨 쉬어 바닷속의 생물을 살리고 산소를 만들어 인간이 숨을 쉬게 한다.
또 우리 태양과 같은 별들이 수 백억 개 모여 우리의 은하계가 되었고, 이 은하계들이 모여 섬우,주 즉 성운이 되는데, 우리가 지금 망원경으로 보는 성운의 수만 해도 수 백억만 개 자승 수 백억만 개라니, 그 별들의 수를 생각하느니 차라리 사막 모래의 수를 세는 게 빠를 것이다.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성운이 안드로메다 성운이고, 여기에 가려면 일 초에 30만 키로, 즉 일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광속으로 5만 년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 거대한 우주 어느 별엔가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 더 과학이 발달한 인간이 살 지도 모른다고 인간들은 끊임없이 우주를 향하여 특정 전파를 보내고 있는데 아직은...
또 모든 별들은 끊임없는 핵 융합작용, 즉 핵폭탄이 연속적으로 터지면서 빛을 내고 있는데, 우리의 태양도 예외는 아니고 그 수소 연료가 다 타려면 150만 년...
그러니까 그 뒤에는 적색 거성이 되어 우리 태양계를 다 덮고도 남게 커지다가, 에너지가 다하면 다시 찌그러져 백색 왜성이 되고, 이는 다시 블랙홀이 되어 아귀처럼 아무 것이나 다 잡아 먹는데... 이것은 점잖게 늙어 죽는 별의 이야기이고, 우리 태양만 하더라도 갑자기 미쳐서 당장이라도 폭발한다면 우리 태양계는 순식간에 우주의 먼지가 될지도 모르는다.
그리고 이 먼지들은 언젠가는 어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이 아귀 같은 불랙홀은 무엇이든 실컷 먹고 나서 배가 차면 다시 빛을 내는 별로 발전하는데...
이렇게 순환하는 우주 내의 물질과 진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노벨상 수상자인 영국의 물리학자 디랙은 '물질의 어머니는 바로 진공'이라 했다. 즉, '진공에서 모든 물질이 태어나고 태어난 물질은 진공속으로 증발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물질이 분해되면 원자가 되고, 이것이 다시 분해되면 쿼크가 되는데, 이 쿼크를 아직은 더 분해할 기술이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만약 더 분해된다면 진공과 다름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위 불경에서 말한 '물질이 허공이고 허공이 물질'이란 말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 공간에 널려 있는 물질이면서 허공인 존재들은 무엇인가?
도대체 우주에는 왜 물질과 진공이 끊임없이 그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을까?
이것도 본론에 들어가서 상술하기로 한다.
7.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탄생은, 원시 불덩이 같던 지구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식기 시작하자 하늘에 올라갔던 수증기가 식고 떨어져 원시 바다를 만들었고, 이 바닷물에 끝임없는 원시 태양의 강렬한 빛과 천둥 번개 또는 방사선에 의해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나고, 이 생명체가 진화하여 현재의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이 현재 과학의 진화론이다.
그러나 현재 끓인 물을 시험관 속에 넣고 태양의 자외선 등 빛은 물론 전기를 방전시키어 번개불을 만들어 비추고 방사선까비 쪼이길 수 십 년을 해봐야 원시 생명이 만들어질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또 애초 원시 세포가 무수한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고등동물로 진화했다고 하는데, 지금 트란지스터 부속 등을 아무리 많이 혼합해놓고 흔들고 돌리길 수 백 년, 수 천 년, 수 만 년 자승 수 만 년을 해봐도 래디오가 조립될 확률은 완전 제로이다. 트란지스터 래디오는 그만두고 사발시계 하나가 우연히 조립될 확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복잡하다는 인간의 두뇌세포는 그만두고, 단세포 생물인 대장균 세포 하나가 필요한 영양소만을 흡수하여 자기 증식을 하는 신비한 작용은 현재 슈퍼컴퓨터를 남산만큼 크게 해놔봐도 절대로 불가능한 것으로 볼 때, 어쩌다가 우연으로 생명이 만들어졌다는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즉, 컴퓨터는 그만두고 사발시계나 래디오 하나만 하더라도 이것이 만들어짐은 엄청난 지성들이 연구와 연구를 거듭한 결과라는 것으로 볼 때, 생명이라는 신비한 현상도 절대로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어떤 지성이 설계하고 그 설계대로 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8. 진화론 고찰
지금 우리 지구가 이 우주 안에서 어쩌다가 물이 있고 산소가 있는 별이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어쩌다가 우연히 지나던 혹성을 지구 인력으로 잡아다가 달을 만들어 밀물 썰물 등을 일으키고, 따라서 바닷물이 순환하여 고기들이 살고 있으며 산소를 만들어 생물들이 살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 태양은 거대한 수소 폭탄이 연속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그 방사능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어쩌다 지구에는 오로라를 만드는 자기장이 있어, 이 방사능을 제거시켜주어 생명체들이 살게 하며 동물과 식물은 그 공기를 서로 교환하고 있단 말인가?
세포가 분열하는 것부터 이 모든것이 모두 우연이란 말인가?
역시 어떤 지성의 의지가 아닌가?
9. 신본주의인 창조론과 심본주의인 연기설의 고찰
창조론은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우주의 주인은 神으로, 이 신이 이 세상 만물과 사람을 창조해놓았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본주의(神本主義)다.
그러니까 창조주의 종에 불과한 인간은 그 주인의 명예 때문에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호와나 알라를 우주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인간은 그 종에 불과하여 그 종들이 아무리 많이 죽어도 그 주인을 위해서라면 상관없다는, 그래서 전에 십자군 전쟁이나 지금 중동전에서 보듯이 피의 전쟁이 끊일 날 없다.
또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의 사상으로 인간의 위치는 십이연기에 의한 허상일 뿐이라는 불교, 힌두교 등 심본주의(心本主義) 사상도, 그 心은 따지고 보면 부처나 브라흐만의 心이니 이는 신본주의와 다름이 없다.
또 이렇게 神이나 心이 우리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나 절에 가서 헌금이나 시줏돈을 내면서 복을 빌어야 하는데, 알고 보면 여호와나 부처님은 인간에게 복을 줄 능력도 없고, 또 만약 자기에게 복을 빌며 아양떠는 자들에게만 복을 준다면 이는 하급령도 한참 하급령이 된다. 만약 그들에게 복을 빌어 정말 복이 왔다면 이는 자기 위안으로 인한 자기 믿음 때문이다.
10. 창조적 진화론
이 지구 상에 생명을 설계하고 만들고 살리는 지성은 과연 누구인가?
먼저 이 우주 안에는 진공이면서 물질이고, 물질이면서 진공인 존재들이 어떤 에너지에 의해 반복 운동을 하고 있다 했는데, 이 에너지가 과연 무엇인가?
반드시 어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란 대생명의 에너지가 자기 표현하는 과정 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진화이고, 인간이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여 창조적 진화론을 말하는 것이다
애초 이 우주덩이는 거대한 생명 에너지가 작용한다고 보면 어떨까?
따라서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바로 대생명의 몸이라고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진공이나 물질들, 그리고 이것으로 만들어진 불타는 별로부터 죽은 별까지 모든 물질이나 그 토대 위에서 꽃을 피우는 생명체 등 모든 존재는, 오직 대생명이 자기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이 대생명 속의 인간의 위치는?
애초 누군가가 무엇이든 만들 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화가나 조각가 등 어떤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면 이것을 실제 작품으로 나타내고 싶어지고, 이 작품은 그 작가의 의도 대로 나타나야 하며, 이것이 바로 작가의 자기 표현이다.
이와 같이 대생명도 자기 표현을 하고 있다면, 먼저 말했듯이 진공이나 물질이라는 토대 위에, 아니 이것마저도 저 차원의 생명체이겠지만 그 위에 원시 생명체를 만들어 결국 고등 동물을 만들고, 이 대생명의 존재, 즉 자신을 인지할 수있는 인간을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는가?
그래서 그 만드는 과정이 진공관 라디오에서 트란지스터로, 그리고 흑백TV에서 칼라TV를 만들 듯 애초 원시생명체에서 고등생명체, 즉 유인원에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즉, 모든 유전자는 불변인 것 같아도 바이러스 유전자처럼 끊임 없이 변하며, 또 큰 동물의 유전자라 하더라도 방사선 등 어떤 원인에 의해 그 유전자가 변형을 이르키는데, 그 변형된 유전자로 태어난 후손이 다행히 그 환경에 보다 더 잘 적응할 수 있으면 더 번식할 것이고, 무지랭이 유전자는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진화론은 많은 의문이 간다.
이 이론을 창조적 진화론이라 하자!
11. 생물의 진화과정을 말하는 천부경 속의 홍익인간
본론에 들어가기 전 우선 천부경의 핵심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무엇인가부터 말한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바로 '하느님 교훈'이다.
그런데 천부경 이외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써 있는 문서는 아무데도 없고, 그 말씀이 훼손이나 변질이 없이 그대로 보전되는 문서는 오직 신지녹도전문 천부경 밖에는 없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홍익인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라고 임의로 해석하고, 우리 헌법, 특히 교육법 1조에까지 써놓고 있다.
이 신지녹도문을 처음 해독하여 천부경을 말한 이는 아직까지는 고운 최치원 한 분으로, 많은 이들이 그의 81자ㄹ르 진짜 천부경으로 알고 있고,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하느님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음양오행설이나 한자, 그리고 컴퓨터로나 가능한 숫자풀이로 풀이하고 있으나 누구 하나 속시원이 풀었다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필자는, 최치원 만이 해독했다는 신지녹도문과, 천부경이라는 그의 81자에서 힌트를 얻고, 신지녹도문을 다시 한 번 해독하여 천부경이란 바로 '하나, 둘, 셋... 열'이라는 우리의 숫자였고, 최치원의 81자는 천부경이 아니라 천부경의 예찬시첩이라는 결론을 얻어, 그 자세한 내용을 이 카페에 써놓았다.
여기서 하나, 둘, 셋은 '하늘과 땅이 인간을 만든 이유와 원리'가 되고, 넷, 다섯, 여섯은 '만들어진 인간이 이 땅 위에 정착하여 번성하는 과정'이며, 일곱, 여덟, 아홉은 '그 인간들의 진로'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홉'의 뜻은 원래 '남근'이지만, 이는 '씨족의 완성'이기 때문에, '씨족이 완성되도 그것으로 만족하고 머물러 있을것이 아니라 그 울타리를 열고 나가라'는 말을 마지막 '열'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자기의 씨족만이 사람이 아니라 타 씨족도 사람이고 그들과 씨를 섞어 어울리게 된다면 땅 위의 인간들이 한 가족이 되어 더욱 번성하게 된다'는 말로, 이것을 현대말로 하면 우리 88 올림픽에서 전 세계인이 외치던 'We are the world'가 된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참 뜻이고, 이것이 위에서 말한 인간이란 神의 종에 불과하다는 신본주의 사상과, 인간이란 그저 십이연기에 의하여 만들어진 허깨비 같은 존재라는 심본주의에 대응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인 것이다.
즉, 이 땅 덩어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허깨비 같은 심(心)을 위해서도 아니다.
만약 이 땅에 神이나 心만 있다면 이는 귀신 만이 사는 것이고, 또 인간과 같은 창조적 지성이 없는 동식물만 산다면 이는 시체만 사는 땅이다.
따라서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의 교훈 천부경은 이 땅이 만들어진 목적이며 결과이고, 그래서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론으로 참 나를 찾아본다.
그런데 이 천부경 이론은 신기하게도 현재 생물학으로 밝혀보는 생물의 생성요인과 그 진화과정, 그리고 인간들의 진화과정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므로 본론을 제기하기 전 우선 이 말부터 하는 것이다.
인간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논리적으로 고찰해본다.
12. 인간은 神의 피조물인가?
이상 인간은 이 神, 즉 '대생명'의 피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위에서 말한 화가나 조각가는 종이나 물감 그리고 돌이나 망치 끌 등 외부의 물건을 도구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작품은 그 작가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대생명은 외부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몸을 재료로 삼아 작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이는 대생명이 바로 자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은 이 대생명의 '자기 표현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인간이 창조된 원인과 진화과정이
'아홉을 열라!'는 홍익인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말했듯이 지금 사발시계 하나만도 엄청난 아이디어들로 연구 발전되어 만들어지는데, 진공관 래디오, 트란지스타, 흑백티비, 칼라티비, 컴퓨터, 그리고 생물, 동물, 사람, 사람 두뇌세포는?
이것들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엄청난 지성이 필요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에서 만들어진 대장균 세포 하나를 보고 우주는 맹목적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 있다는 것이며, 이 우주 의식을 하느님이라 하건 여호와라 하건 알라라 하건 그건 엿장수 마음 대로라는 것이다.
이 우주 의식은 그냥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뭐 신이 특별히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지 않고는 못배기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작가한테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는 자기의 정신을 그 작품을 통해서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못한다면 이는 애초부터 그런 아이디어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주의식도 자기와 같은 지성체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인간이다.
그럼 인간이 신과 같으냐?
그렇다. 단, 현재 그 알량한 인간의 지혜로 오염된 인간 말고 우리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또는 선악과 이전의 인간 같은 그 섭리가 신과 일치하는 분들은...
그런데 작가가 작품을 만들려면 반드시 재료가 필요하다.
이 재료가 바로 물질이다.
이 재료로 인간을 만들 때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기초부터 만들어 다듬어간다.
이 기초를 바이러스, 즉 미생물이라고 본다.
이 미생물은 아직 생명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물질로 아니다. 물질과 생명체의 중간부분이라고나 할까....
그 이유는 이것들이 번식하는 걸로 보면 틀림없는 생물인데, 이것을 분석해보면 이는 단순한 단백질 덩이이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에 의하면 원시 생명체는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원시 태양의 자외선, 천둥 번개, 벼락, 방사선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 실험실에서 원시 지구와 같은 조건을 갖추어놓고 아무리 오랫동안 실험을 해도 단백질 비슷한 것은 합성되었으나 생명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그들은 애초부터 어떤 무엇이 만들어지려면, 특히 생명체가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그 설계자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결국 원시 물질과 생명체의 중간인 미생물이 만들어졌고, 이 미생물들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생관계가 되어 융합하고, 여기서 단세포 생명체가 만들어졌으므로 우리 세포 하나에도 수 억 수 조의 미생물 집결체라는 것이 현재 마이크론 생명학자들의 이론인데, 이는 과연 수용할 만한 이론이다.
이 과정에서도 나는 우주의식의 설계 각본 대로 그리 됐다고 본다.
이 단세포 생명체들은 공생 융합하여 다세포 생물이 만들어지는데, 이것도 우주의식의 각본 대로라고 본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이 '이상하게....또는 신비하게'하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우주의식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유인원 과정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인가 하는 질문이 나오는데, 나의 대답은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은 아니지만 그 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은 그 각자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에선가는 같았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원숭이등 유인원도 언젠가는 인간으로 진화를 할까?
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애초 인간과 유인원의 공동조상에서 인간과 유인원이 갈라질 때, 자연의 섭리(神)는 자신의 표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여러 개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본 것이고, 여기서 가장 정확한 자신의 표현체는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유인원들은 인간을 만들어보기 위한 하나의 실험동물이었고, 이미 그들은 그들 대로 진로가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인간으로 진화할 확률은 제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우주 의식, 즉 神의 자기 표현체이고, 이는 자연 속에서 서로의 공생과 융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홍익인간의 원리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항상 말해오던 '자연 속에서 동물이나 인간은 인간의 간섭없이는 서로 유전자 교환이나 말등이 혼동되지 않는다'는 말과 상치한다. 그래서 이 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을 원론적으로 수정한다면 '자연 속에서 생물은 '그 몸집이나 진화 정도에 비례하여'인위적인 간섭 없이는 변하지 않는다'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현미경도 전자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생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질도 아닌 바이러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종이 생긴다.
그러나 몸짐이 크고 진화 과정이 거의 끝난 동물들이 자연 속에서 변종될 가능성은, 미생물의 크기와 비례되어 수 만 년이 아닌 수 십만 년 이상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생명체 뿐 아니라 물질도 이와 같다.
지금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 속의 전자를 예로 든다.
이 전자는 하나의 알맹이인 子이면서도 전파라는 말에서 보듯이, 하나의 波 이다. 이 子와 波의 물리학적 역학관계는 완전 반대이다.
그러니까 전자, 전파는 한 몸으로 완전 두 짓을 하는 도깨비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도깨비의 정체를 잡은 것이 하인리스타인의 '불확정 이론'인데, 이 이론은 얼마나 엉터린인지를 예를 들면, 한 시간 전에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출발한 자동차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면, 그 답은 '경부고속도로 상에 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이론을 좁혀가면 서울을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넘었으니 서울 나들목은 빠져나갔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전까지는 못갔을거라. 이를 더 좁혀가면...
그래서 이 이론은 도깨비 잡는 이론인데, 이 도개비의 하는 짓은 그 뿐 아니라 몇 백만 분의 일 초 사이에도 태어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이것도 없어진 그곳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엿장사 맘대로 이 곳 저 곳, 원자의 범위 안에는 아무 데나 나타 난다.
즉, 전자는 탄생하여 어떤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생멸을 거듭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멸 현상은 비단 소립자들 뿐 아니라 지구나 태양 같이 몸집이 큰 것들도 마찬가지라는것이다.
단, 여기서 그 생멸기간은 그 몸집에 비례되니, 지구의 1회 생멸기간을 보면, 지구 종말이 왔을 때 지구가 사라졌다가 다시 태어나는 기간, 곧 그 흩어졌던 먼지들이 다시 합쳐져 다시 지구를 만드는 기간이 된다.
다음 생명체의 설계(본능) 속에는 이미 만들어진 그 생명이 죽지 말고 잘 살아야 된다는 설계도 들어 있는데, 그래서 생명체들은 죽는 걸 싫어하고 살려고 한다. 그래서 자살은 이 신의 섭리인 본능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직 살려고만 하는 본능이 있으니, 자연 속에서 혼자 활동하는 게 불리하면 공생 융합하려 한다.
그런데 이 생명체가 어느 정도 애초 설계했던 목적(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그간 이루어진 것을 흐뜨러지지않게 하려는 설계도 동시에 들어 있다고 본다. 이것도 본능이다.
즉, 필자가 지금 쓰는 이 글이 어느정도 완성만 되도 사라지지 않게 '보관하기'하기 위하여 '보관하기'라는 컴퓨터 키를 눌러 자물쇠를 채워놓드시...
그래서 생물들은 죽길 싫어하는 본능이 있고, 그래서 자살은 신의 섭리에도 거역되는 행위가 된다.
13. 자연 속에서 자살하는 동물들과 그 이유
몇가지 예를 들면서 말한다.
송어 등 어류는 태평양 3만Km를 헤매고 커서 번식기가 되면 고향산천, 즉 자기가 태어난 개울로 회귀한다. 동해안의 남대천이 그 중 하나다. 이 송어들은 알을 낳고 그 알들이 부화할 때지 목숨을 걸고 지키다가 결국 알이 부화하면 그간 모래와 자갈에 살점이 뜯겨 뼈만 남은 채 최후를 마친다.
벌이나 개미의 숫컷은 교미하는 순간 그 생식기가 암컷의 자궁을 막고 빠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죽는다.
사마귀의 수컷은 교미하는 순간 암컷의 먹이가 되어 암컷이 알을 낳는데 영양소가 되게 한다.
지금 한라산에는 노루가 있는데, 천적이 없으니 엄청 번식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나났는지 들개들이 나타나 이를 잡아먹고 있다.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이 들개를 포획하려고 먹이와 덫을 놓지만 사람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는 이 들개들이 그 그물에 말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참으로 치사한 짓을 하여 그들을 잡는다.
즉, 발정한 암캐의 오즘 등을 그 근처에 뿌리고 암캐를 나무에 매어놓는다.
그러면 수캐들은 사람이 있건 말건 목숨을 걸고 암캐에게 찾아와 교미를 한다. 그런데 이 개들은 교미 후 한 30분 동안은 서로 떨어지질 않아 교미가 끝나기도 전 그대로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수캐만 다 죽이면 들개들이 번식을 못할 것으로 보고 이런 치사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데 만만치 만은 않다.
영화 '주라기 공원'에서는 공룔들을 번식을 못하게 수컷만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그 숫컷들 중 어떤 놈은 독초를 뜯어 먹고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
이 영화의 근거로 지금 공원에 은사시나무는 봄 만되면 꽃가루를 날려 사람의 호흡기 질환이 되므로 암컷나무들만 골라 모조리 베어버린다. 그러나 한 3~4년쯤 지나면 수컷들 중 어느 놈은 암컷으로 성 전환을 하여 다시 꽃가루를 날린다.
한라산에 노루가 너무 번식하면 풀들이 남아나지 않아 결국 모든 노루들이 전멸하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자연은 들개 같은 천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들개들을 번식 못하게 수컷들을 잡아 죽인다 해서 노루들의 천적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란 발상을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이렇게 동물들은 어떻하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오직 자신들이 유전자를 이어갈 번식에만 목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생물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어느 해안가에 고래들이 떼로 몰려와 자살을 하는 거다. 사람들이 아무리 도루 끌어다가 바다에 넣어 주어도 다시 나와 집단 자살한다. 왜 일까?
어는 섬에 나그네 쥐라는 쥐의 일종이 살고 있다.
이 쥐들은 너무 번식하여 먹이들이 고갈되면 그 쥐들의 반 수 이상은 바다로 뛰어들어 집단 자살을 한다. 이 역시 왜일까?
자기네 종족이 영위하던 범위 안에 먹거리가 떨어지면 결국 그 집단은 전멸하고 만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숫자가 없어지면 그들은 다시 살아간다.
지금 이락크 등지에서는 자살특공대가 미군을 괴롭힌다. 참으로 천인공로할 만행 같지만 우리의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도 이와 같았다.
즉, 개인이 죽더라도 그 종족을 살리고자 하는 것은 義이고 자연의 섭리다.
그래서 자살은 개인이 개인을 위해 하면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죄가 되지만, 그 종족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의가 된다.
또 인간이나 어느 정도 진화한 동물들은 자신들의 유전자 등을 함부로 뒤섞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고, 그래서 침팬지는 침팬지끼리 오랑우탕은 오랑우탕 끼리만 유전자를 교환한다고 본다.
그러나 만약 종이 다르면 아무리 교접해도 번식이 되질 않는다.
이 이유를 원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몸을 포함한 동물, 그리고 생명체들의 몸에는 그 진화의 목적(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 을 기준으로 하여 그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기 유전자의 파괴나 혼동을 막기 위하여, 즉 자기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설계도가 들어 있는데, 이를 초급성 거부반응인 '알파갈' 유전자라 한다.
이 이론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지금 서울대에서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하여 세계 특허를 얻어낸 황우석 박사의 이론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복제양 돌리나 돼지 등은 복제가 가능하고 이미 많이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만두고 사람과 비슷한 유인원에만 들어와도 복제가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바로 위에서 말한 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을 기준으로 하여 그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기 유전자의 파괴나 혼동을 막기 위하여, 즉 자기를 지키기 위한 또하나의 설계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와 같이 이 유전자 때문에 인간은 물론 인간과 가까워질수록 그 복제도 안 되고, 외부 유전자의 침입을 차단할 수 있다. 즉,외부로부터 어떤 균이 들어오면 이를 파괴시키어 우리 몸을 보호하므로 우리는 어떤 세균에 감염되거나 외상을 당해도 우리 몸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알파갈 유전자의 간섭으로 이종 간, 즉 다른 동물과의 교접은 번식을 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동종 간의 장기 이식도 그 유전자를 따져야 하므로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동종 간의 교접은 번식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세포가 번식을 하려면 반드시 그 유전자가 감수분열, 즉 꼬아진 사닥다리 같은 유전자가 반으로 갈려지고, 이 반반인 유전자들은 거의 비슷한, 역시 갈라진 유전자를 만나면 왕성하게 번식을 한다. 오히려 더 잘 번식한다. 이것도 홍익인간의 원리이다. 이것이 '수정'이고 새 생명의 탄생이다.
그러니까 정자와 난자는 모두 감수분열된 유전자들이고, 이것이 서로 만나 새 유전자, 즉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데, 그러니까 동종 간, 즉 사람과 사람, 개와 개는 그 감수분열된 유전자끼리 합성될 수 있으나 사람과 개 사이의 유전자는 아무리 감수분열된 유전자라 하더라도 그 코드가 너무 달라 맞질 않는다.
그래서 사람과 개 사이에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으나, 거의 사람인 오랑우탄(인도네이아 어떤 섬의 언어로 산사람이란 뜻)과 사람 사이에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도 있다 한다.
이상으로 모든 생명체들은 물론 사람까지 그 유전자는 부계만의 유전자를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부모의 반반의 유전자를 타고 나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 유전자는 부모로 볼 때는 그 반반이지만 조부모로 볼때는 1/4씩이며, 증조부모로 볼 때는 1/8, 고조부모로 볼 때는 1/16, 만악 100대만 올라가면 우리 조상은 천문학 숫자가 된다.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삼황오제, 또는 공자가 중국인이 아닌 우리 동이인이었다 하더라도 그 후손은 이미 우리가 아니며, 따라서 내 30대 조상이 중국인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나는 우리 말과 문화에 동화된 것 말고도 그 유전자로 볼때에도 이미 중국인의 유전자가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14. 인간이 동족만으로 번식하려 했던 이유
같은 종끼리 뒤엉켜 사는 인간 등은 유전자를 서로 교환해야 하는데, 인간이 각기 그 씨족만을 찾아 피를 교환하는 이유를 알아본다. 왜
그럴까?지금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을 예로 들면, 서로가 혹 친구는 할 수 있지만 될 수 있는 한 결혼을 하여 피를 섞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건 문화 차이로 오는 마찰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교적 성과 종족이 개방된 미국에서도 흑인, 백인, 황인종끼리 친구는 하되 서로 피를 섞지는 않으려고 한다.
오래 전에 미국사람이 되어 이미 그들의 문화에 동화된 황인종끼리도 중국인과 일본인과 한국인은 서로 피를 교환하는데는 망설인다. 이건 문화 차이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족 개념 때문이다.
지금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온 남만족, 즉 우리 곰 할머니와 같은 남만족인 보르네오의 숲속 푸난족은 먹을 것이 숲 속에 널려 있는데도 바로 얼마 전까지 공식적으로 타 종족을 잡아 먹었으며, 지금도 암암리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말로는 타 종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들 이기 때문에 짐승 잡듯이 잡아 먹어도 괞찮다는 것이다.
조금 전 시대로 올라가보자.
불과 60~70년 전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홍익인간이 뭔지 모르는 게르만 민족들은 자기네 종족들 이외엔 사람으로 보지 않아,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유태인 처녀들을 짐승 잡듯이 잡아 그 가죽으로 전등 갓을 만들고, 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썼을망정 그녀들을 성적으로 강간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자기네 순결한 게르만 민족의 피를 짐승들에게 더럽힐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건 히틀러 혼자 전 독일인 의사를 무시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네 게르만 종족 이외에 다른 민족은 짐승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잠재의식 때문이다.
역시 홍익인간의 교육을 받지 못한 중국인들의 <수호지> 등을 보면, 지나가는 나그네를 짐승 잡듯이 덫을 놓아 잡아다가 만두 속을 만들어 먹는데, 이는 역사를 더 올라가보면 중국인들은 외부 종족을 잡아다가 짐승이 고기 먹듯 먹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도 외부 종족은 짐승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하여 중국대륙에서 일어났던 식인 행위는 생략하고, 우리 하느님 시대로 올라간다.
하느님의 천부경 교훈을 하나, 둘, 셋... 아홉, 열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홉'은 바로 '업', 즉 '남근'이다.
그런데 최치원은 이것을 一積十鉅에서 鉅로 풀었고, 이 鉅는 '울타리'의 뜻이 있다고 필자는 '아홉'에서 자세히 풀어놓았다.
그렇다면 '울타리 안의 남근'이란 무엇인가?
남근이란 바로 '씨'이므로 씨, 즉 '씨족의 울티리를 '열'고 이웃 씨족과 유전자도 교환해가며 어울리라'는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뜻이다. 그래서 결국 환웅은 곰족과 피를 섞어 우리 민족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즉 하느님 시대는 우리도 울타리, 즉 씨족 간에만 피를 교환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중국 대륙에 여러 종족이 뒤엉켜 살았지만 서로 피는 지키며 살았다는 증거이고, 그렇다면 따라서 말이나 나중에 만들어질 글자에 혼동이 없었을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위 신의 섭리는 종이 다른 것들끼리는 유전자 코드가 맞질 않게 자물쇠를 채워놓았어도, 같은 종끼리, 즉 유전자 코드가 맞는 것들끼리는 서로 교잡해야 우수한 종이 번식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원시인들은 자연의 섭리, 즉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셈이 된다. 즉, 본능 대로 살던 원시인이 그 본능을 무시했다는 말이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원시에는 성생활이 지금과 같은 개인주적 향락이 아닌, 오직 그 종족의 번식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다.
짐승들이 각축전을 벌려 이긴 놈이 암컷을 다 차지하듯이, 원시 인간들도 '씨놀음'을 하여 이긴 놈이 자기 씨족 안의 암컷을 다 차지한다. 이것은 자연이 섭리이고 본능이다. 이 본능적인 씨놀음이 우리에게는 바로 지금의 '씨름'이 된다.
그러니까 이 씨름의 의식을 통하지 안은 개인들의 성행위는 불륜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씨족에서 축출되는 엄한 규율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축출이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외부 종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자연의 섭리가 사람의 눈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그 종족들의 알량한 자기종족 우월감 때문에 생긴 착각이다.
애초 성행위는 오직 종족의 번식을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씨놀음을 하던 원시인은 타 종족과의 혼혈은 아마 짐승과의 교접인 수간 취급을 하여 처음부터 기피했를 것이고, 그렇게하면 결국 그 씨족에서 축출되는 엄한 규율도 있었을 것이다.
즉, 개인주의 성생활 같았으면 아무 종족이나 처 들어가 그 종족의 암컷을 취했겟지만, 당시 씨를 퍼트리는 일은 반드시 씨놀음을 통하여 이긴 자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들은, 그 씨놀음에서 이긴 자가 자기 씨족의 많은 암컷들을 놔두고 구태여 짐승을 취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이 같은 종끼리만 교접해야지 다른 종하고 교접하면 그 유전자 코드가 맞질 얺아 번식할 수 없게 채워준 자물쇠의 뜻을, 다른 종족들을 짐승처럼 대하다 보니 좀 착각하게 된 것으로 본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은 다른 부족과의 교접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들을 잡아 먹기까지 하였다.
15. 인간의 먹거리 문제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라 무엇인건 먹을 수 있다.
즉 식물이건 동물이건 다 잡아 먹을수 있다.
그러나 이 '먹거리는 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을 기준으로, 그 정도에 비례하여 먹거나 죽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은 조금 먹어도 되고, 식물은 많이 먹을수록 건강하며 좋고...
이것을 쉽게 증명하기 위하여서는 육식성 동물들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육식성 동물은 그 구조상 식물을 먹을 수 없다.
육식성 동물이 육식만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초식을 하는 사슴이나 토끼등을 잡아 먹는 동물들의 수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초식성 동물이 너무 번성해도 풀들이 남아 나질 않을 것이며, 너무 없어져도 풀들은 너무 무성하여 떠서 죽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 바로 육식성 동물의 출현이며, 그래서 자연은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육식성 동물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의 지능으로 판단하여 자신보다 큰 동물이나 동종의 동물은 잡아 먹지를 않는다. 즉, 사자나 호랑이는 코끼리 등은 잡아 먹을 생각도 못하고 자기의 동종인 사자나 호랑이들도 잡아 먹질 않으며, 늑대 역시 사자나 호랑이, 그리고 자신과 같은 늑대는 잡아 먹질 않고 오히려 유전자 교환을 하려고 수컷 싸움 정도는 한다. 그리고 먹이는 반드시 자기보다 하급인 동물만을 주로 잡아 먹는다.
그러니까 인간이 다른 종족인 인간을 쓸데 없이 죽이거나 먹는다는 건 신(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며, 다만 인간은 다른 인간끼리 교접하는 건 할수록 좋다.
16. 동종간 성생활을 하는 이유
이것을 희한한 동물들을 예로 들면, 오징어 등 연체동물은 한 몸에 양성을 다 가지고 있어서, 한 해는 암컷이 되어 새끼를 치고 다음 해에는 수컷이 되어 다른 암컷에게 유전자를 전하며, 달팽이 류는 한 몸에 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가 번식기가 되면 양성 모두가 발정을 하여 다른 달팽이들과 동시에 교미한다. 즉, 자신에게 양성이 다 달렸으니 자신끼리 교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즉, 자기와 유전자가 거의 같은 근친끼리 상간을 하면 결국 무지렁이를 낳아 도태되게 되고, 자신의 유전자와 전연 다른 종족과 교접은 보다 훌륭한 후손을 두게 하는데, 이 자연의 섭리 역시 홍익인간 원리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이종과 교접하지 말라는 열쇠는 그런 뜻이 아니니, 네 그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 나가 너희들이 짐승 취급을 하는 그들을 잡아 먹지 말고 그들과도 어울리거라'한 것이 바로 '아홉, 열'에 나오는 홍익인간인 것이다.
즉, 그때 당시 사람들이 어떤 종족이건 기리지 않고 피를 섞었다면 구태여 하느님이 그 아홉을 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종족인 울타리 안에서만 피를 섞겠다는 것이 당시 중국 대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이고 풍습이라는 것이 입증되며 그 짐승인 곰족을 홍익인간 사상으로 사람을 만들어 피를 섞은 것이 환웅의 무리이다.
결론은 인간은 개체인 자신이 아니라 바로 신의 자기 표현체이다.
그러므로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란 내 자신인 개체가 아니라 바로 대생명인 하늘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리고 이 하느님들이 사는 이 지구가 하느님 세상이다.
17 '나는 바로 하느님 이다!!!'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 전자>의 '하나, 둘, 셋... 열'에서 '열'이란 바로 '그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 나가 다른 종족과도 피를 섞고 동화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신지녹도 전자의 그림글자는 '날아 오르는 새'이다.
이것을 최치원은 그의 81자 예찬문에서 '일적십거무궤화삼(一積十鉅無匱化三)', 즉 '한을 쌓고 씨족의 울타리를 열면 대 자유인으로 화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鉅는 씨족의 울타리 뿐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심지어 육체까지 무시하라는 말이고, 그렇다면 이는 바로 '신선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신선'이 바로 神이다. 그러니까 불교와 백두산 올라가는 길은 달라도 결국 올라가 보면 천지는 같아진다.
그러나 위 불교에서 사람의 목적은 이 지상에 육신을 두르고 사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고, 결론은 부처처럼 비상비비상처천(非相非非相處天)의 적멸보궁에서 아무 의식도 없는 백치처럼 앉아 있는 것과 다르고, 또 기독교 등에서 천당에 가기 위해서 사는것도 아니다.
위 천부경 사상의 본질에서 보았듯이 우주는 그냥 맹목적 우주가 아니라 어떤 의식이 있고, 이 의식은 바로 생명의식 밖에 없으며, 이 생명의식이 이 3원 세상에 자기 표현을 하려니 물질의 옷을 입은 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 땅의 주인이다. 그래서 이 땅에 살 이유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어짜피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잘 먹고 잘 번식하다가 신선이 되는 것이다.
이 삼차원 세상에 사는 사람은 3, 4차원에 다리를 걸치고 살뿐, 5차원, 6차원... 10차원 이상 부처가 앉아계신 100차원은 이 땅에 사는 인간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인간이 귀신 노릇이 정 하고 싶으면 우선은 부모 처 자식 잘 먹이고 잘 번식하다가 나중에 죽을 치고 앉아서 신선의 길을 가든지, 아니면 뒈져서 할 일이다.
결국 땅 위에 사는 인간은 홍익인간만 한다면 신으로 부터 태어나서 결국 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치원의 81자에서 一析三極이란 말이 있고,
이것은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에서 말했듯이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
그런데 이 天地人은 다시 歸三會一하여 다시 '한'이 된다.
이는 사실상 생명을 말하는 '빛'과 같다.
원래 우리민족의 뿌리는 하느님인데, 이 하느님은 해(태양)이고,
그래서 우리는 해(하+이)의 민족이다.
해는 하얗기 때문에 '하얀민족> '한'민족'이다.
이 해인 '한'이 天地人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
원래 햇빛은 하얗지만나누면 빨강, 녹색, 파랑의 삼원색이 되고,
다시 합치면 원래대로 하얀색이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검은색은 원래 빛의 없음이다.
즉, 신에게 어떤 의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신 한테는 생명의식 밖에 없고 그것은 바로 '흰 빛'이다.
그리고 악마, 또는 성악설에서 혹시 신의 성품이 악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빛의 부재(不在)상태인, 다시 말하면 빛이 없는 검정이지, 원래 악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식은 생명의식인 '한'밖에는 없다.
참으로 그 당시 분광기도 없었음에도
햇빛이 빨강, 녹색, 파랑의 삼색으로 나눠지고, 다시 합치면 다시 '한'이 된다는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 천지인을 뜻하는 삼태극과 하블 망원경으로 본 또 하나의 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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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쌍계사의 금강문은 840년(신라 문성왕 2년) 眞監禪師가 지은 것이다. 이 쌍계사를 지을 무렵만 해도 불교가 들어오면서 우리 토속종교를 없애지 않으려고 산신각 등을 만들어놓았으며, 특히 이 쌍계사에는 환웅과 단군을 예찬하는 난랑비가 있었다. 여기 삼태극은 천지인을 뜻하는 천부인을 뜻하고 위의 삼지창은 사람 천부인이며, 아랫것은 극이 반대로 도는 삼태극이다.
▪ 아래 보물 제 635호 신라시대의 장식보검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103쪽 ) 우리 민족이 사용하던 삼극무늬는 신라시절 기왓장 뿐 아니라 보검자루에도 있다.
그것은 바로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이다. 이는 '시작이 없는 데서 한이 시작되었고,끝이 없는데서 한이 끝이 난다'는 말이다.
이런 하느님인 나는 욕심과 질투로 싸울 일도 없고, 또한 늙어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존재이다. 이것이 나(我)의 진정한 의미이고 성자들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하느님인 神은 일단 귀신이므로 이 땅 위에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땅이라는 몸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먼저 말했드시 이 땅이라는 옷을 입은 신은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바로 너 좋고 나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홍익인간이다.
이상을 보면 먼저 말했듯이 인간이 이 땅에 사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듯 12연기 무명에 빠져 탄생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본체가 적멸보궁에나 앉아 아무런 정신활동이 없는 백치상태의 허깨비도 아니며, 이것을 불교의 中道로 설명해봐야 본체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며 종이기 때문에 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신본주의도 모두 犬 소리 같다.
▪ 정리
하여간 지급 불교는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거의 3천년이나 됐는데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에서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의심이 간다. 오히려 그 난해한 불법으로 잘 모르는 중생들이 절의 불상에 시줏돈이나 많이 내게 하고 절을 하게 하는, 자신의 복을 빌어서 자신이 내세에 극낙이나 좋은 환경에 태어나길 기원하는 욕심꾸러기 기복 종교 밖에 더 되었는가? 그 불쌍한 돈으로 중들은 배만 불렸지 중생한테 뭐 한게 있다는 것인가?
기독교도 그렇다. 천당에나 가겠다는 욕심덩이이고, 이 신을 위해서는 이 땅의 주인인 인간의 목숨도 희생해왔고 또 앞으도 희생해야 할 것이다.
▪ 결론
홍익인간을 말하는 천부경 사상만이 살 길!
위에서 말했듯이 천부경은 <사람 사는 길>이다. 이건 종교도 아니다.
이 천부경의 펼쳐진 위대한 사업은 이미 실현되었다.
바로 환웅이 마치 짐승과 같은 곰족의 요즘 싸스와 같은 풍토병을 마늘과 쑥으로 치료해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사상을 가르쳐 그들과 피를 섞고 동화하여 우리 민족을 만들었고, 그렇기에 그의 왕국 고조선은 무려 3천년 간이나 지속되었으며, 지금도 우리 민족혼 속에 남아 있어 우리는 홍익인간 사상을 전 세계에 퍼뜨리고 있다.
즉, 지금 일본 같은 나라는 인건비 등 때문에 저개발국가에서 텔레비나 무엇을 만들면 절대로 그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는데, 우리는 흑백TV를 어느 정도 만들어 팔아 먹고 나면 그 기술을 그들에게 전수해 주고 다시 칼라 TV를 만들며, 또 그 주인과 일체화되도록 노력하고 있고....
또 영토 문제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 이 땅덩이 위에 국경이라는 금을 그어놓은 것은 그 알량한 인간의 지혜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이래 무려 900여번의 외침을 받았어도 차라리 땅을 떼어주었을망정 그들과 맞징뜨지도 않다 보니 지금 이렇게 땅덩이는 쪼그라들었고, 또 먼저 다른 나라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이것을 지금 서양의 너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상으로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바보짓 같겠지만, 앞으로의 인류는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세계의 양심있는 석학은 이 바보스런 한민족의 정신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88 올림픽 때 외치던 'We are the world'이고 이것으로 인하여 소련연방이 붕괴되었으며 독일이 통일됐다. 지금 유럽에 국경이 없어진 것이나 무역자유화 들을 통하여 차츰 세계이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결국 아세안 연방, 남미의 연방, 세계의 연방이 될 것이고, 세계는 말 그대로 하나가 된다.
이것이 천부경의 홍익인간 사상이 현재 세상에 펼쳐져 가는 모습이니, 결국 지금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는 사라질 것이고 , 결국 천부경 사상 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원리상이나 또 믿는 방법 등 문제가 많은 미신 종교는 논리적인 현대인에 의하여 앞으로는 더 이상 통할 것 같지 않고, 오직 남는 것은 우리 천부경 사상의 홍익인간 정신인데, 이 보배로운 말씀을 우리조차도 무려 6천년 간을 땅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http://cafe.daum.net/chunbuinnet - 우리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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