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블랙박스다. 2007년 대선 이후 늘 30%를 넘나드는 지지율로 단 한 번도 차기 주자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미래 권력’이지만, 가장 열광적인 지지자에게도 가장 치열한 반대자에게도 박근혜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을 듣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진보·개혁 진영은 박 전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자 ‘수첩 공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덕에 지지율 선두를 달릴 뿐, 정작 본인이 보여준 콘텐츠나 정치적 매력은 이렇다 할 것이 없다는 폄훼다. 하지만 이 같은 관점으로는, 한나라당을 존폐 위기에서 구해낸 2004년 총선 때부터 따져 8년째 그녀가 한국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 자리를 유지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힘들다. 지난해 말 진보 논객 다섯 명이 모여 펴낸 책 <박근혜 현상> 서문에서 저자들은 “박근혜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다. 진보는 진영 논리에 빠져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라고 썼다.
반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보수층은 그녀를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원칙을 지켜온 신뢰의 지도자’로 기억한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 발언록을 정리한 자료집 서문(2008년)에서 “박 전 대표의 발언은 4년 전이나 2년 전이나 엊그제나,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일관성이 있다”라고 적어 이런 관점을 대변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 궤적과 딱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보·보수 모두 박근혜를 모른다
호불호를 떠나 박근혜라는 블랙박스는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다. <시사IN>은 ‘소셜 네트워크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전문기업 트리움(TREUM)과 함께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박근혜 전 대표가 내놓은 발언을 모아 ‘박근혜 담론’을 분석했다. 발언에서 각 주제가 등장하는 빈도는 물론, 주제 간의 거리(이를테면 문장에서 각 주제의 위치), 주제들의 네트워크를 분석해 ‘의미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었다(21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통해 그동안 숨겨져 있거나 피상적으로만 알려진 박근혜 전 대표의 사고 틀·전략·욕망 그리고 강점과 약점이 최초로 객관적 데이터로 드러났다. 종전에 몇몇 국내 언론에서 시도했던 정치인 연설문 분석과의 결정적 차이도 이것이다. 기존 연설문 분석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식의 단순 빈도 분석에 그쳐, 표면적인 레토릭(수사) 너머 담론의 실체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그림 1>(위)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부터 2010년 6월까지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네트워크로 구성한 것이다. 이 지도에서 노드(점)의 크기는 의미 네트워크에서의 중요도, 색상은 의미 덩어리를 뜻한다. 즉, 같은 색깔의 노드는 동의어 블록인 셈이다. 링크(선)의 화살표 방향은 논리적인 선후 관계를 나타낸다고 보면 된다.
상대에 따라 다른 프레임 펼쳐
왼쪽 위 붉은색 블록을 보자. 화살표가 처음 출발하는 노드(계파)에서부터 따라 읽으면, ‘계파’ 간의 ‘갈등’은 ‘친박’ 소속 ‘당선자(의원)’를 ‘복당’시켜서 ‘화합’하면 되는 문제라는 뜻이 된다. 이것이 2008년 18대 총선 직후 박 전 대표가 반복해 제기한 주장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아는 우리의 눈에 이 결과는 시큰둥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알 리 없는 컴퓨터는 오직 의미 네트워크 분석만으로 실제 현실 그대로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라 해도 의미 네트워크 분석의 레이더에는 걸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시사IN>과 트리움이 시도한 것은 이 같은 작업이다.
시기별로 박 전 대표의 담론 전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기 위해서 먼저 노무현 정부(2004~2007년)와 이명박 정부(2008~2010년)를 따로 분석했다. 또 노무현 정부 역시 필요에 따라 둘로 나누었다. 1기 격인 2004~2005년은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의 당대표를 맡아 지지율 반전을 이루어낸 시기이다. 2기에 해당하는 2006~2007년은 지지율 반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밀려 좌절한 시기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민주당이 쪼그라든 2008~2010년 3기에서는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이 대통령에게 맞서는 여당 속의 야당 구실을 했다.
왼쪽 그래프를 보면 흥미로운 경향이 보인다. ‘경제’와 ‘성장’이라는 두 키워드는 2기에 가장 두드러졌지만, 3기(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극적으로 중요도가 감소한다. 반면 영원불변의 박근혜 브랜드처럼 인식되는 ‘신뢰’는 정작 노무현 정부 때는 전혀 중요한 키워드가 아니었다. 박 전 대표의 실제 발언록을 보면, 2기에서 그나마 신뢰 키워드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 역시 ‘대(對)노무현 전략’이라기보다는 ‘대이명박 경선 전략’에서 비롯한다. 이는 박근혜 지지층의 주장처럼 박 전 대표가 늘 불변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프레임 전략을 펼쳤음을 시사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박 전 대표의 ‘대노무현 프레임’과 ‘대이명박 프레임’을 직접 비교해봤다. 의미 네트워크 분석은 전체 지도를 그려줄 뿐만 아니라, 특정 노드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만 따로 뽑아내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즉, 1기와 2기에서 노무현(열린우리당), 3기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이라는 키워드만 따로 뽑아서, 그 키워드를 둘러싼 담론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 결과를 알아보기 쉽게 단순화한 것이 <그림 2> <그림 3> <그림 4>이다. 각 키워드는 하나의 노드, 각 색깔은 동의어 덩어리, 화살표 방향은 논리적 선후 관계라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제대로 된 녹음기’가 무서운 이유
<그림 2>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비판은 국가보안법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이력이 걸린) 과거사 문제 등 이념적 불일치에서 출발한다(붉은색). 이런 이념 문제를 안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국가관과 기업관이 의심스럽고 세금 폭탄을 떨어뜨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다(주황색). 이념 문제로 출발해서 ‘기업관’ ‘세금 폭탄’ 같은 경제 이슈가 은근슬쩍 포함되는 데 주목하자. 따라서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고, 불법 시위를 방조하며, 세금을 많이 걷는 반기업 정부이다(연두색).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기피해 불황이 와서 일자리가 없다(남색).
여기까지 오면 담론이 사실상 완성된다. 이념으로 출발한 프레임은 경제 프레임으로 멋지게 변신했다. 이제 결론은 외길이다. 이념 혼란을 제거해야 경제가 살아나므로,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로잡는(분홍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보수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하늘색).
2004년 총선 이후 박 전 대표는 이 프레임을 그야말로 융단폭격한다. 2004년 8월 한 달 동안만 정확히 이 프레임대로 쏟아낸 발언이 일곱 번이다. 간첩 사건 비판도 결론은 ‘경제가 어려워진다’로 났다. “대한민국이 투자 기피국이 되고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좌파 정책과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라는 8월3일 발언은 이 프레임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번 프레임이 잡히면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 각인시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대단히 중요한 전략이다. 진보·개혁 진영에서 ‘수첩 공주’ ‘녹음기’라고 무시하는 바로 그 특징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프레임과 반복 강조가 만나 한번 프레임이 각인되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추세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 ‘제대로 된 녹음기’의 무서움이다.
이런 프레임은 지지자의 주장대로 박 전 대표의 변함없는 소신의 표현일까? 그보다는 상대에 따라 가변적인 전략에 더 가깝다. 투자 문제만 짚어보자. 박 전 대표가 그토록 강조했던 ‘투자 기피’의 한 척도인 사내유보금은 10대 그룹 계열사 기준으로 2004년 600%에서 2009년 1000%로 오히려 폭증했다. 노무현 정부 때를 투자 기피로 본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투자 파업 수준이 된 셈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를 두고 정부의 이념 때문에 투자 기피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문제 삼은 적은 없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서 위력이 사라진 프레임은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이다.
정말 치명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분석을 담당한 김도훈 트리움 대표는 “참여정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프레임은 박 전 대표가 완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관된 담론 전략이 있는, 국내에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경제 프레임에서 정작 자신이 아이콘이 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즉, 유권자가 경제를 잘 아는 보수 후보를 원하도록 프레임을 짜놓은 시점에서, 자신보다 더 그에 맞아떨어지는 이명박이라는 아이콘이 등장해버린 것이다.
프레임 잘 짜지만 수혜자 되는 데 실패
이 같은 위기감을 최초로 드러낸 발언은 2007년 1월20일에 나왔다. 이날 박 전 대표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 지도자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경제 지도자다”라고 말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이명박 후보를 ‘경제 전문가’로 밀어내고 아버지의 후광을 빌려 경제 아이콘 자리를 탈환하려는 시도였지만, 본인 스스로가 경제 아이콘이던 이 후보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이때부터 ‘신뢰’가 박 전 대표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2007년 5월19일 박 전 대표는 “신뢰받는 리더십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살려낼 리더십이다”라고 말했다. ‘대노무현 프레임’에서는 보이지 않던 논리가 등장했다. 물론 BBK 등 각종 과거사 의혹에 시달리던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이후 경선 과정에서 ‘신뢰’는 ‘경제’보다 훨씬 우선하는 키워드로 떠오른다. 본인이 짜놓은 경제 프레임의 덫에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그림 3>은 3기의 ‘대이명박 프레임’을 보여준다. 당 일선에서 물러난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기보다는 친이계가 장악한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항 프레임을 펼친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약속을 어겨 국민에게 불안과 고통과 실망을 주었다. 신뢰를 되찾고 정치가 소외 계층을 행복하게 하려면(붉은색) 문화와 가치를 중시해 국격을 높여야 한다(연두색). 한눈에도 키워드의 변화가 확연하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변방에 있던 문화·가치·공동체·소외 계층·행복 따위 질적 키워드가 떠오른 반면, 경제·성장 같은 키워드는 뒤로 밀렸다. 그리고 여기서 뜬금없이 공천 문제가 등장한다(주황색).
김도훈 대표는 “대이명박 프레임에서 박 전 대표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공천 문제다. 대노무현 프레임에서의 이념 문제와 같다. 하지만 공천 문제는 프레임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욕심스럽게 비친다”라고 말했다. 신뢰 문제를 제기하는 대이명박 프레임에서 공천 문제를 숨겨둔 셈이다. 이런 결과 역시 단순 키워드 빈도 분석에는 잡히지 않는, 의미 네트워크 분석의 특징이다. 아무튼 당 지도부는 국민과의 신뢰를 저버린 문제, 즉 친박계 공천 학살 문제에 대해 밀실 정치와 사당화의 책임을 져야 한다(하늘색).
대노무현 프레임의 핵심 키워드가 경제였다면, 대이명박 프레임의 핵심 키워드는 신뢰다. ‘신뢰’를 중심으로 의미 네트워크를 재구성한 결과가 <그림 4>이다. 세종시 문제, 쇠고기 재협상 문제 등을 거론하며 ‘동조자’를 부지런히 확보하지만, 신뢰 프레임의 종착지는 역시 공천 문제다. 이는 ‘사적·이념적 이해를 공적·보편적 담론으로 포장하는 데 탁월한’ 박근혜표 프레임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앞서 대노무현 프레임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아버지의 친일 이력 문제가 어떻게 경제 이슈로 포장되는지 확인한 바 있다.
민생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커진 현실에서, 신뢰가 경제만큼 대중을 뒤흔드는 프레임이 되기는 쉽지 않다. 박 전 대표도 대노무현 프레임에서 사용했던 방식대로, 신뢰를 경제 문제로 전환하는 시도를 몇 번 했다. 2008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는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것 역시 신뢰가 없어서다”라고 했고, 2010년 1월20일에는 “신뢰 부족으로 생기는 사회적 갈등 비용이 300조원이다”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순방 중이던 5월4일, 박 전 대표는 “신뢰와 원칙이라는 무형의 인프라·사회적 자본을 구축해야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라고 말해 ‘신뢰=경제’ 프레임을 재가동했다.
유럽 순방서 ‘신뢰=경제’ 프레임 재가동
신뢰 프레임이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실질적인 민생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이 복지 프레임이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사로잡을 프레임으로 복지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24~25쪽 기사).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설문은 친박계 사이에서는 ‘박근혜표 복지 집권 선언’의 정본으로 흔히 거론된다.
하지만 박 전 대표를 실패하게 했던 약점이 또다시 제기될 수 있다. ‘왜 노무현·이명박이 안 되는지’를 설득하는 프레임 설정에는 탁월해도,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아이콘 만들기에는 약점을 보인다. ‘박근혜표 복지’라는 낯선 조합을 대중에 어떻게 설득할지는 여전한 난제다. 담론 분석을 해보면, 박 전 대표는 일단 또다시 부모의 힘을 빌리기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22~24쪽 기사). 익숙한 스토리다. 박 전 대표는 2007년에도 아버지의 힘을 빌려 경제 아이콘이 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맛보았다.
의미 네트워크 분석은 진보와 보수의 박 전 대표 평가가 공히 부적절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박 전 대표의 프레임 설정은 늘 성공적이어서 상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김도훈 대표는 “미국 공화당의 프레임 전략을 상당히 깊이 연구한 것 같다. 이 정도 담론 설정 능력을 가진 정치인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라는 평을 내놓았다. 박정희의 후광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짜놓은 판에서 자신이 수혜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적은 아직 없다. 이 대목에서 끊임없이 박정희·육영수의 이미지를 동원하는 것은 아이콘이 되기에 취약하다는 본인의 약점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진보·개혁 진영은 박 전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자 ‘수첩 공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덕에 지지율 선두를 달릴 뿐, 정작 본인이 보여준 콘텐츠나 정치적 매력은 이렇다 할 것이 없다는 폄훼다. 하지만 이 같은 관점으로는, 한나라당을 존폐 위기에서 구해낸 2004년 총선 때부터 따져 8년째 그녀가 한국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 자리를 유지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힘들다. 지난해 말 진보 논객 다섯 명이 모여 펴낸 책 <박근혜 현상> 서문에서 저자들은 “박근혜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다. 진보는 진영 논리에 빠져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라고 썼다.
반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보수층은 그녀를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원칙을 지켜온 신뢰의 지도자’로 기억한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 발언록을 정리한 자료집 서문(2008년)에서 “박 전 대표의 발언은 4년 전이나 2년 전이나 엊그제나,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일관성이 있다”라고 적어 이런 관점을 대변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 궤적과 딱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보·보수 모두 박근혜를 모른다
호불호를 떠나 박근혜라는 블랙박스는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다. <시사IN>은 ‘소셜 네트워크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전문기업 트리움(TREUM)과 함께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박근혜 전 대표가 내놓은 발언을 모아 ‘박근혜 담론’을 분석했다. 발언에서 각 주제가 등장하는 빈도는 물론, 주제 간의 거리(이를테면 문장에서 각 주제의 위치), 주제들의 네트워크를 분석해 ‘의미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었다(21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통해 그동안 숨겨져 있거나 피상적으로만 알려진 박근혜 전 대표의 사고 틀·전략·욕망 그리고 강점과 약점이 최초로 객관적 데이터로 드러났다. 종전에 몇몇 국내 언론에서 시도했던 정치인 연설문 분석과의 결정적 차이도 이것이다. 기존 연설문 분석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식의 단순 빈도 분석에 그쳐, 표면적인 레토릭(수사) 너머 담론의 실체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림 1> 2008~2010년 (제3기) 박근혜 발언 네트워크 지도 |
예를 들어보자. <그림 1>(위)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부터 2010년 6월까지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네트워크로 구성한 것이다. 이 지도에서 노드(점)의 크기는 의미 네트워크에서의 중요도, 색상은 의미 덩어리를 뜻한다. 즉, 같은 색깔의 노드는 동의어 블록인 셈이다. 링크(선)의 화살표 방향은 논리적인 선후 관계를 나타낸다고 보면 된다.
상대에 따라 다른 프레임 펼쳐
왼쪽 위 붉은색 블록을 보자. 화살표가 처음 출발하는 노드(계파)에서부터 따라 읽으면, ‘계파’ 간의 ‘갈등’은 ‘친박’ 소속 ‘당선자(의원)’를 ‘복당’시켜서 ‘화합’하면 되는 문제라는 뜻이 된다. 이것이 2008년 18대 총선 직후 박 전 대표가 반복해 제기한 주장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아는 우리의 눈에 이 결과는 시큰둥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알 리 없는 컴퓨터는 오직 의미 네트워크 분석만으로 실제 현실 그대로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라 해도 의미 네트워크 분석의 레이더에는 걸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시사IN>과 트리움이 시도한 것은 이 같은 작업이다.
시기별로 박 전 대표의 담론 전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기 위해서 먼저 노무현 정부(2004~2007년)와 이명박 정부(2008~2010년)를 따로 분석했다. 또 노무현 정부 역시 필요에 따라 둘로 나누었다. 1기 격인 2004~2005년은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의 당대표를 맡아 지지율 반전을 이루어낸 시기이다. 2기에 해당하는 2006~2007년은 지지율 반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밀려 좌절한 시기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민주당이 쪼그라든 2008~2010년 3기에서는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이 대통령에게 맞서는 여당 속의 야당 구실을 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박 전 대표의 ‘대노무현 프레임’과 ‘대이명박 프레임’을 직접 비교해봤다. 의미 네트워크 분석은 전체 지도를 그려줄 뿐만 아니라, 특정 노드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만 따로 뽑아내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즉, 1기와 2기에서 노무현(열린우리당), 3기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이라는 키워드만 따로 뽑아서, 그 키워드를 둘러싼 담론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 결과를 알아보기 쉽게 단순화한 것이 <그림 2> <그림 3> <그림 4>이다. 각 키워드는 하나의 노드, 각 색깔은 동의어 덩어리, 화살표 방향은 논리적 선후 관계라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제대로 된 녹음기’가 무서운 이유
<그림 2> 박근혜의 ‘대노무현 프레임’ (2004~2007년 ‘노무현·열린우리당 키워드 네트워크’) |
<그림 2>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비판은 국가보안법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이력이 걸린) 과거사 문제 등 이념적 불일치에서 출발한다(붉은색). 이런 이념 문제를 안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국가관과 기업관이 의심스럽고 세금 폭탄을 떨어뜨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다(주황색). 이념 문제로 출발해서 ‘기업관’ ‘세금 폭탄’ 같은 경제 이슈가 은근슬쩍 포함되는 데 주목하자. 따라서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고, 불법 시위를 방조하며, 세금을 많이 걷는 반기업 정부이다(연두색).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기피해 불황이 와서 일자리가 없다(남색).
여기까지 오면 담론이 사실상 완성된다. 이념으로 출발한 프레임은 경제 프레임으로 멋지게 변신했다. 이제 결론은 외길이다. 이념 혼란을 제거해야 경제가 살아나므로,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로잡는(분홍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보수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하늘색).
2004년 총선 이후 박 전 대표는 이 프레임을 그야말로 융단폭격한다. 2004년 8월 한 달 동안만 정확히 이 프레임대로 쏟아낸 발언이 일곱 번이다. 간첩 사건 비판도 결론은 ‘경제가 어려워진다’로 났다. “대한민국이 투자 기피국이 되고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좌파 정책과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라는 8월3일 발언은 이 프레임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번 프레임이 잡히면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 각인시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대단히 중요한 전략이다. 진보·개혁 진영에서 ‘수첩 공주’ ‘녹음기’라고 무시하는 바로 그 특징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프레임과 반복 강조가 만나 한번 프레임이 각인되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추세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 ‘제대로 된 녹음기’의 무서움이다.
이런 프레임은 지지자의 주장대로 박 전 대표의 변함없는 소신의 표현일까? 그보다는 상대에 따라 가변적인 전략에 더 가깝다. 투자 문제만 짚어보자. 박 전 대표가 그토록 강조했던 ‘투자 기피’의 한 척도인 사내유보금은 10대 그룹 계열사 기준으로 2004년 600%에서 2009년 1000%로 오히려 폭증했다. 노무현 정부 때를 투자 기피로 본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투자 파업 수준이 된 셈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를 두고 정부의 이념 때문에 투자 기피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문제 삼은 적은 없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서 위력이 사라진 프레임은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이다.
정말 치명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분석을 담당한 김도훈 트리움 대표는 “참여정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프레임은 박 전 대표가 완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관된 담론 전략이 있는, 국내에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경제 프레임에서 정작 자신이 아이콘이 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즉, 유권자가 경제를 잘 아는 보수 후보를 원하도록 프레임을 짜놓은 시점에서, 자신보다 더 그에 맞아떨어지는 이명박이라는 아이콘이 등장해버린 것이다.
프레임 잘 짜지만 수혜자 되는 데 실패
이 같은 위기감을 최초로 드러낸 발언은 2007년 1월20일에 나왔다. 이날 박 전 대표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 지도자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경제 지도자다”라고 말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이명박 후보를 ‘경제 전문가’로 밀어내고 아버지의 후광을 빌려 경제 아이콘 자리를 탈환하려는 시도였지만, 본인 스스로가 경제 아이콘이던 이 후보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이때부터 ‘신뢰’가 박 전 대표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2007년 5월19일 박 전 대표는 “신뢰받는 리더십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살려낼 리더십이다”라고 말했다. ‘대노무현 프레임’에서는 보이지 않던 논리가 등장했다. 물론 BBK 등 각종 과거사 의혹에 시달리던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이후 경선 과정에서 ‘신뢰’는 ‘경제’보다 훨씬 우선하는 키워드로 떠오른다. 본인이 짜놓은 경제 프레임의 덫에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그림 3> 박근혜의 ‘대이명박 프레임’ (2008~2010년 ‘이명박·한나라당 키워드 네트워크’) |
<그림 3>은 3기의 ‘대이명박 프레임’을 보여준다. 당 일선에서 물러난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기보다는 친이계가 장악한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항 프레임을 펼친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약속을 어겨 국민에게 불안과 고통과 실망을 주었다. 신뢰를 되찾고 정치가 소외 계층을 행복하게 하려면(붉은색) 문화와 가치를 중시해 국격을 높여야 한다(연두색). 한눈에도 키워드의 변화가 확연하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변방에 있던 문화·가치·공동체·소외 계층·행복 따위 질적 키워드가 떠오른 반면, 경제·성장 같은 키워드는 뒤로 밀렸다. 그리고 여기서 뜬금없이 공천 문제가 등장한다(주황색).
김도훈 대표는 “대이명박 프레임에서 박 전 대표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공천 문제다. 대노무현 프레임에서의 이념 문제와 같다. 하지만 공천 문제는 프레임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욕심스럽게 비친다”라고 말했다. 신뢰 문제를 제기하는 대이명박 프레임에서 공천 문제를 숨겨둔 셈이다. 이런 결과 역시 단순 키워드 빈도 분석에는 잡히지 않는, 의미 네트워크 분석의 특징이다. 아무튼 당 지도부는 국민과의 신뢰를 저버린 문제, 즉 친박계 공천 학살 문제에 대해 밀실 정치와 사당화의 책임을 져야 한다(하늘색).
<그림 4> 박근혜의 신 무기 ‘신뢰 프레임’ (2008~2010년) |
대노무현 프레임의 핵심 키워드가 경제였다면, 대이명박 프레임의 핵심 키워드는 신뢰다. ‘신뢰’를 중심으로 의미 네트워크를 재구성한 결과가 <그림 4>이다. 세종시 문제, 쇠고기 재협상 문제 등을 거론하며 ‘동조자’를 부지런히 확보하지만, 신뢰 프레임의 종착지는 역시 공천 문제다. 이는 ‘사적·이념적 이해를 공적·보편적 담론으로 포장하는 데 탁월한’ 박근혜표 프레임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앞서 대노무현 프레임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아버지의 친일 이력 문제가 어떻게 경제 이슈로 포장되는지 확인한 바 있다.
민생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커진 현실에서, 신뢰가 경제만큼 대중을 뒤흔드는 프레임이 되기는 쉽지 않다. 박 전 대표도 대노무현 프레임에서 사용했던 방식대로, 신뢰를 경제 문제로 전환하는 시도를 몇 번 했다. 2008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는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것 역시 신뢰가 없어서다”라고 했고, 2010년 1월20일에는 “신뢰 부족으로 생기는 사회적 갈등 비용이 300조원이다”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순방 중이던 5월4일, 박 전 대표는 “신뢰와 원칙이라는 무형의 인프라·사회적 자본을 구축해야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라고 말해 ‘신뢰=경제’ 프레임을 재가동했다.
유럽 순방서 ‘신뢰=경제’ 프레임 재가동
신뢰 프레임이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실질적인 민생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이 복지 프레임이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사로잡을 프레임으로 복지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24~25쪽 기사).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설문은 친박계 사이에서는 ‘박근혜표 복지 집권 선언’의 정본으로 흔히 거론된다.
ⓒ뉴시스 박근혜(가운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호하다. 하지만 의미 네트워크 분석을 거치면 의미가 드러난다. |
하지만 박 전 대표를 실패하게 했던 약점이 또다시 제기될 수 있다. ‘왜 노무현·이명박이 안 되는지’를 설득하는 프레임 설정에는 탁월해도,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아이콘 만들기에는 약점을 보인다. ‘박근혜표 복지’라는 낯선 조합을 대중에 어떻게 설득할지는 여전한 난제다. 담론 분석을 해보면, 박 전 대표는 일단 또다시 부모의 힘을 빌리기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22~24쪽 기사). 익숙한 스토리다. 박 전 대표는 2007년에도 아버지의 힘을 빌려 경제 아이콘이 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맛보았다.
의미 네트워크 분석은 진보와 보수의 박 전 대표 평가가 공히 부적절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박 전 대표의 프레임 설정은 늘 성공적이어서 상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김도훈 대표는 “미국 공화당의 프레임 전략을 상당히 깊이 연구한 것 같다. 이 정도 담론 설정 능력을 가진 정치인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라는 평을 내놓았다. 박정희의 후광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짜놓은 판에서 자신이 수혜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적은 아직 없다. 이 대목에서 끊임없이 박정희·육영수의 이미지를 동원하는 것은 아이콘이 되기에 취약하다는 본인의 약점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