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 '사람 사는 세상'에 다녀왔습니다"

장백산-1 2011. 12. 1. 00:14

 

10대들의 눈으로 바라본 노무현 대통령과 봉하마을
조회수 : 2377
등록일 : 2011.11.28 10:07
얼마 전 <우리겨레하나되기 전북운동본부>의 ‘청소년평화통일기자단’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대통령의 꿈과 민주주의 정신,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의 의미를 소중히 가슴에 담고 돌아갔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와 열정을 가진 고등학교 1, 2학년생 청소년 기자들이 직접 쓴 봉하마을과 대통령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람사는 세상에 다녀왔습니다”

청소년평화통일기자단 3기 김경은
(이리여자고등학교 2학년)


 

 

 

 



여느 다른 날과 같이 늦게 일어났다. 오늘은 기자단 친구들과 함께 봉하마을 합동취재가 있는 날이다. 마지막 합동취재라는 말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그간 챙기지 못했던 기자증까지 완벽하게 지참했다. 늦게나마 차에 올라 전주로 출발했다. 길을 헤매었지만 늦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황금들녘과 그 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노란 바람개비가 참 예뻤다.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을 보며 이곳이 그저 정겨운 시골 마을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사람들이 메밀국수를 적극 추천한다는 얘기에 메밀국수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서니 이미 다른 기자단 친구들은 식사를 마치고 바람개비를 받으려 모여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분은 순교자라는 뜻의 마터(martyr)라는 분이셨다. 그분께서는 봉하마을에 온 어린이들이 길가에 있는 바람개비를 뽑아가려 하는 모습을 본 뒤부터 수수깡과 노란 종이로 봉하마을 방문객들에게 직접 노란 바람개비를 만들어 주고 계신다고 한다. “다들 노란 바람개비 들고 단체사진 찍어요.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좋아하실 거에요”라는 말씀에 그곳 사람들이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추모의집)을 찾았다. 기념관 앞에서 노 대통령의 판화를 찍어 보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임시 기념관이었지만 나름대로 잘 가꾸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에는 인권변호사 활동과 더불어 대통령 취임, 그리고 서거까지의 역사가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사진이 눈에 선하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셨을 당시 나는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하지만 국상을 치르며 통곡을 하는 국민들과 영정 사진 속에서 밀짚모자를 쓴 채 환히 웃고 계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에 나 또한 그 현장에 서 있는 듯 코끝이 찡해졌다.

기념관 내부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띈 것은 국민들이 그분을 추모하며 노란 천에 적어 만든 대통령의 얼굴이었다. 내부에는 입었던 옷가지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생전의 소박한 일상의 한 편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마음 한 쪽이 저려왔다.

묘역해설사가 묘역 옆 노란 바람개비가 모여 있는 곳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봉하에 관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묘역 앞쪽이 봉화산, 들판 건너편에 있는 산은 뱀산이라고 했다. 또한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 속에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삶,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가치가 들어있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인들이 그렇듯 노무현 대통령 또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진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그러면서도 논둑길을 걸으며 권양숙 여사와 데이트를 하는 소소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80년대 초, 대학생들이 억울하게 구속되고 고문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인권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작은 텃밭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님의 새로운 삶의 시발점이라는 말처럼, 봉하라는 작은 마을이 언젠가 대한민국의 상징, 사람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흰 국화꽃을 들어 그분의 묘역을 참배했다. 김은경 목사님과 김성희 선생님께서 눈물짓는 모습에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은 세계 최초로 국민들이 만든 묘역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묘역 바닥을 가득 메운 박석에는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사랑해요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많은 국민들이 그리워하고 사랑받는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다.

참배를 하고 권양숙 여사님을 뵈었다. 말로만 듣던 대통령 사저는 으리으리하기는커녕 천장이 낮아 아늑해 보이는 주택이었다. 권양숙 여사님은 많이 힘들어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악수도 해주시며 정성을 보여주셨다. 잠시나마 뵈어서 정말 기쁘다.

그곳에서 대통령님을 경호했던 분을 만나 미약하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노력했던 것, 미래발전연구원과 민주주의 2.0, 생태복원 등이 지향하는 바가 모두 ‘사람사는 세상’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언론에 대해 느끼는 바도 컸다. 앞서 묘역해설사 아저씨께서 족벌 언론의 폐해를 이야기해주었는데, 봉하마을에 아방궁을 짓고 초호화 골프장까지 만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허위보도를 아직도 사실로 믿고 있는 국민들이 많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정작 사회의 기록이 되는 언론이, 오늘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더불어 제4의 권력이라 일컬어지는 언론이 권력에 아부하느라 진실을 호도하고 역사를 왜곡하려 들다니. 기자단에 들어와 언론과 언론인의 자세에 관해 들었던 최상재 PD님의 강연처럼 나로 하여금 언론인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세를 곧추세우게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봉화산에 올라갔다. 대통령께서 생전에 오르셨던 길이라 하여 ‘대통령의 길’이라 부르는 코스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정말 힘들어하며 산을 올랐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침내 사진으로만 보던 ‘내마음속 대통령’을 추수를 몇 분 앞에 두고 가까스로 볼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정토원에 들러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 앞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묵상했다. 짧은 묵상이었지만 나의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합동취재인 봉하마을 취재가 끝이 났다. 보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멋진 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신들도 고향에 돌아가 제2, 제3의 봉하마을을 만들라” 했다던가. 그분의 시민을 위한 따뜻한 정성에,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 노력에 눈물이 고인다. 그분이 사랑했던 대한민국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기를 빌어본다.



사람사는 세상, 그 안의 나

청소년평화통일기자단 3기 김초원
(남원여자고등학교 1학년)


 

 

 

 



2011년 11월 12일에 경상남도 김해에 있는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이자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돌아와 사셨던 곳이며 아픈 사건이 있기도 한 곳이어서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겼다.

처음엔 봉하마을이 김해에 있는지도 모르고 전라도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다. 김해라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달리겠구나 싶었다. 나는 전주에 살지 않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출발을 했다. 기자단 활동이 오랜만이어서 봉하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버스에 타는 순간 반가운 감정이 앞섰다. 예전처럼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우리는 우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미리 예약해놓은 식당으로 갔다. 난 메밀국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내 앞에 앉은 미진이는 떡국을 먹었는데 그것도 어찌나 맛있던지 나중엔 서로 바꿔서 먹었다. 자, 이제 배도 불렀겠다. 본격적으로 봉하마을 구경을 시작했다.

봉하마을은 예상과 달리 앞엔 논이 펼쳐져 있고 뒤에는 산이 버티고 있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없었다면 이곳에 대통령이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식당을 나섰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띤 건 노란색 바람개비를 만들고 계신 한 아저씨였다. 우리는 그 주변에 모여들어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가 예전에 봉하마을을 방문했을 때 길가에 꽂혀 있는 바람개비를 아이들이 뽑으려는 것을 보고 바람개비 자원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온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이걸 위해서 서울에서 봉하까지 오다니…. 아저씨가 만들어준 바람개비를 높이 들고 어린 아이처럼 신이 나서 막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창피한 느낌이 든다.

기념품 가게 건너편에 있는 추모의집을 갔다. 대통령을 추모하는 곳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주 소박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 유품, 그리고 기록물을 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대통령 노무현이 매우 따뜻한 인간 노무현으로 느껴졌다.

묘역 앞에서 노무현재단 관계자로부터 설명도 듣고 부엉이 바위를 보니 지난날이 너무 후회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힘들어 할 동안에 과연 난 뭘 했나. 물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별로 없었지만 난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이건 나랑 먼 이야기야’ 라고 치부하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저 흘려보냈다. 그러다 소중한 한 사람을 잃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노무현 대통령께 너무 미안했다.

묘역은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검소하게 지었다. 내가 놀랐던 건 묘역의 박석이었다. 국민 참여 방식으로 조성되어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많은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히 내가 든든하고 뿌듯해졌다.



사저를 방문했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 뭔가 새롭고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앞마당에서 권양숙 여사님을 만나는 순간 든 기분은 설렘? 새로움? 모두 아니었다.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기 전에 여사님의 남편이시다. 사랑하는 남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결국은 잃게 되었을 때 여사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말 뜻 깊었다.

비서실장께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향했던 것과 이루고자 했던 목표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손님 접대하는 곳(사랑방)에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님과 여사님이 손님들에게 좋은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늘 풍광이 좋은 자리를 양보하셨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성품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봉화산에 올라가 대통령의 길을 걸었다. 사실 내가 체력이 약해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그렇게 험한 산도 아니고 높지도 않아서 생각보다 쉽게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 봤는데 정말 감탄이 나왔다. 황금빛 논이 ‘쫘악’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엔 ‘내마음속 대통령’이라는 문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있었다. 그걸 바라보면서 몇 분 쉬고 산을 내려와 집에 가는 버스에 탔다.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휴일이라 도로가 많이 막혀 집에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고 오늘의 일을 찬찬히 생각해봤다. 처음엔 그냥 마지막 일정이고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라 단순히 들뜬 마음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봉하마을은 내가 생각했던, 단순히 대통령이 살았던 유명한 곳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일궈가는 곳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곁에 계속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어른이 되어 돌아온 느낌이다. 항상 이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