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망상을 다스리는 법

장백산-1 2012. 1. 26. 11:07

妄想을 다스리는 법

 

좌선으로 모든 행동이 정지되어 있을 때에는 마음이 언제나 분명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아주 밀착된 상태에서 자신의 아랫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집중이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어나고 사라짐의 현상에 따라 시작과 중간 끝맺음이 분명하게 관찰되면 좌선의 자세가 매우 바르고 의연히 앉아 있어 몸과 마음이 아주 고요해지고 평화스러워지거나

 

관찰하는 집중된 마음이 망상으로 인하여 흐트러지는 순간 몸은 동요를 일으키며 均衡을 잃어 앞뒤로 흔들리게되거나 허리가 구부러지게 된다.

 

이러할 때에 수행자가 즉시 자신의 육체적 변화가 마음의 흐트러짐 때문임을 관찰하고 '망상, 망상, 망상' 이라고 관찰하게 되면 몸은 다시 바르게 자세를 고쳐 잡게 되나 만약에 몸의 진동이 크게 느껴지고 계속될 때에는

'흔들림, 흔들림, 흔들림'이라 관찰하면서 몸의 자세를 바르게 잡아야 한다.

 

만약에 계속되는 망상으로 인하여 몸이 옆으로 움직일 때에도 '움직임, 움직임, 움직임'이라 관찰하여 몸이 바르게 되면 다시 원위치인 아랫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돌아와 그 현상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밀착된 상태에서 관찰하게 되면 마음은 다시 고요해지고 평온스럽게 된다.

 

그러나 다시 망상이 꼬리를 이어 계속될 때에는 즉시 '망상, 망상, 망상'이라고 명칭을 붙여 관찰하면서 마음을 망상 당처에 두면 망상은 사라지고 다시 고요해질 때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도중에 어떤 妄想이 원인이 되어서 貪心이 일어났을 경우, 탐심이 일어났음을 즉시 알아차려 '貪心, 탐심, 탐심'이라 관찰하여 알아차리고 인식하여 마음을 수련하며

 

 嗔心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곧바로 진심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認識하고 알아차리며

觀察하는 순간에 진심은 사라지게 되는 것인데, 진심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관찰되지 못하면 진심에 사로잡히고, 진심의 노예가 되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며 진심으로 인하여 잃는 게 수없이 많게 되는 것이다.

 

嗔心을 다스리려면 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참으려 하면 진심을 더욱 기승을 부려,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므로 嗔心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재빨리 인식하고 동시에 '진심, 진심, 진심'하며

마음을 집중하면 진심의 불꽃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유교에서도 嗔心을 다스리는 法으로서 참을 인(忍)자 세 번을 쓰게 되면 진심이 다스려진다고 하였다.

하물며 진심으로 글로 쓰지 않고 진심이 일어났던 마음을 다스려 그 뿌리를 바꾸는데

어찌 다스려지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하여 진심을 사라지게 하는 과정은 너무도 빠르기 때문에 밖으로 나타나기 전에 정리될 수 있으나

다만 얼마나 빨리 진심이 일어났음을 인식하고 자각하게 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을 재빨리 포착 인식하고 관찰하는 수행법이 요구되는 것이며,

이 위빠사나(vipassana) 수행법이 貪·嗔·痴를 다스려

덕이 높고, 평온하며, 슬기로운 수행인 내지 사회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흔히들 生覺을 비운다 하나 生覺이란 비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生覺이 차있어 고정적으로 남아 있는게 없기 때문에 비울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모든 現狀은 잠시도 머무르는 바 없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인데,

어디에 무엇이 머물고 있으며 채워져 있기에 비워야 되겠는가,

 

머무는 바가 없고 가득한 게 없기에 비울 것이 없다.

다만 自然的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現狀(活動)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아니한 채 세밀히 觀察해 감으로써

그 自然的 性品을 알게 되고, 그 根源을 알게 될 때,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智慧가 열리게 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불안과 공포가 없어지게 되고,

순간에 일어난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행단계를 찥따누빠싸나(Cittanupassana)라고 하며 이는

곧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을 관찰을 통하여 명확히 보았다.'라는 뜻이다.

 

만약에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現狀觀察이 없다면

사람들은 쉽게 錯覺되어 마음은 固定된 것으로 판단하고

어느 곳에 자리 잡아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음을 비운다고 하나 그것은 事實과 關係없는 하나의 觀念인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의 現狀을 固定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現狀을 따라

그 自然的 움직임을 觀察하여 마음의 本性을 깨닫게 해주는 唯一한 수행법이다.

 

이 수행에서는 오직 사실적이며 현실적인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기에 흔히 말하는 견성(見性)의 가장 바르고 빠른 길이 된다.

 

왜냐하면 假飾的이고 觀念的인 마음(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自然的 活動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 옮긴 글 -

-결가부좌 명상도량/자비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