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유일물상독로(獨有一物常獨露) 담연불수어생사(湛然不隨於生死)

독유일물상독로(獨有一物常獨露)  담연불수어생사(湛然不隨於生死) 

옛날 중국에 계현(誡賢)이라는 부자 스님이 있었다. 4방 80리를 가도 그의 땅을 밟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천하 사람들을 다 만나봐도 계현스님의 복(福)과 학(學)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유명한 스님이기 때문에 그의 문하에는 유불선(儒佛仙)에 정통한 수많은 학인들이 모여들었다. 

하루는 신찬(神讚)이라는 아이가 중노릇을 하려고 계현스님을 찾아왔다. 와서 보니 계현스님의 문하가 융성하기는 한데 진짜 법(法)을 알고 배우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신찬은 처음에는 기도를 드리며 의식을 익히다가 다음에는 글을 배우고 선방에 들어가 조금 선(禪)의 맛을 보았다.

 

그런데 계현스님이 하루는 세 명의 상좌를 앞에 놓고, “너는 유가에 밝으니 유교를 더욱 깊이 배워오너라” “너는 도교에 밝으니 노장을 더욱 깊게 연구하여 오너라”하여 유교와 도교에 밝은 두 제자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신찬에게는 선방에 가서 도를 공부하여 앞의 두 제자와 함께 천하의 자웅을 가려보라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3년 동안 쓸 돈을 하루에 한 냥씩 쳐서 1천 냥이 넘게 주었다.

그러나 신찬은 마음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이 돈을 짊어지고 가면 무거워서 도중하차 하기 쉬우니 그냥 가겠다 하여 극구 사양하였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각기 스승을 찾아가는데 신찬은 그때 백장산의 도인 백장 스님을 찾아갔다. 백장 스님은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엄격한 청규(淸規)를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 예불 이외에는 쉴 틈 없이 일을 시켰다. 그렇게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분별 망상 번뇌라는 삿된 생각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새가 없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계현스님에게 돌아오니 신찬의 도반 두명도 모두 돌아와 있었다.

유교(儒敎)를 공부한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그동안 무엇을 배워 왔느냐?”“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리를 배웠습니다.” 도교(道敎)를 공부한 상좌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배워 왔느냐?” “단전복기(丹田腹氣)로 신선(神仙)이 되는 도리를 공부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유교(儒敎)에는 내생법(來生法)이 있던가?” “공자님께서는 전생(前生)이나 내생(來生) 이야기는 일체 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죽음 이전에 선행을 하여 자손만대에 덕(德)을 심어 갈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노자님은 신선(神仙) 이외의 말은 하지 않던가?” “복(福)이 다 하면 타락하여 다시 인간이 되게 되는 것이니 타락하지 않도록 마음을 무위자연(無爲自然)하게 살라고 하였습니다.” 

 

“신찬은 무슨 공부를 하였느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밥 먹고 일만 부지런히 하고 왔습니다.”  “그래? 하기야 저 두  사람들은 돈을 짊어지고 갔으니 돈값을 하느라고 애를 썼겠지, 신찬이야 돈 한푼 없이 빈 몸으로 갔으니 올 때도 가볍게 올 수밖에.” 그렇게 질문과 대답이 있고 나서 자리를 물렸다. 그 뒤로도 계현 스님은 매일같이 앉아서 책을 보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는 목욕물을 데워 목욕을 하려 하시다가 신찬을 불렀다. “오늘은 네가 나의 등을 밀어라.” “예. 신찬은 목욕탕에 들어갔다. 스님은 육덕이 좋았다. 밝고 맑은 살빛에 살이 피둥피둥 쪄서 볼품이 없었다. 신찬은 등을 문지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법당(法堂)은 좋다만은 부처(佛)가 영험(靈驗)이 없구나.”

 

계현스님은 신찬이 한 말을 듣고 말하였다. “영험은 없어도 방광(放光)은 잘한다.” 그리고 서로 웃고 목욕을 마쳤다. 목욕을 하고 나서 한숨 주무시더니 일어나서 글을 보고 있었다. 마침 그때 벌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창에 부딪쳐 방바닥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곤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신찬이 말하였다. “빈 구멍을 찾지 못하여 창문에 부딪쳐 떨어지는 어리석은 놈아. 백년동안 고지(古紙)를 뚫고자 해서야 어느 날 방안에서 벗어날 기약이 있겠느냐”

이 말을 듣고 계현스님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방금 너 뭐라고  말하였느냐?” “벌이 방안에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여 이런 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래, 무슨 시냐? 한번 보자구나.

“공문불긍출(空門不肯出) 투창야대치(透窓也大痴) 백년찬고지(百年讚古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빈 구멍을 찾지 못하여, 창문에 부딪쳐 떨어지는 어리석은 놈아. 백년동안 고지(古紙)를 뚫고자 해서야, 어느 날 방안에서 벗어날 기약이 있겠느냐”

신찬이 한 이 시를 듣고 계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쳤다. “너 백장 스님에게 가서 일만 하였다고 하더니 진짜 공부를 하고 왔구나!” 하면서 신찬을 칭찬하였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백장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진짜 크게 놀라실 것입니다.” “뭐, 백장 스님의 법문이라고. 그 법문은 어떤 것이냐? 어서 한번 들어보자.” “그거야 그렇게 쉽게 들을 수 있습니까? 법답게 들어야지요.” 계현스님은 곧 북(법고)을 치고 종을 쳐서 대중을 모아 법좌를 마련하고 신찬 상좌를 법좌에 높이 올려 모셨다. 그리고 청법게(請法偈)를 하여 신찬상좌에게 큰 절로 3배를 하였다. 상좌에게 스님이 절을 한 것도 기이하지만 스승의 절을 받고 있는 상좌 또한 기이하였다. 

그러나 신찬은 이미 신찬이 아니었다. 오늘은 백장을 대신하여 신찬이 설하는 법문이라 신찬이 바로 백장이기 때문이다. 신찬이 소리 높여 외쳤다. “신령(神靈)스러운 빛이 홀로 드러나 육근(六根) · 육경(六境)의 경계(境界)를 벗어나 있도다. 그 드러난 참모습이여, 문자에 구애함이 없어라. 참된 성품(性品)은 분별 망상 번뇌에 물듦이 없어 본래(本來)부터 스스로 원만(圓滿)히 이루어져 있으니 단지 망령(妄靈)된 생각(生覺)만, 즉 망상(妄想)만 여의면 그대로 부처(佛)로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적절한 시인가?

계현스님은 이 법문을 듣고 그대로 망연을 여의고 그대로 부처가 되었다. 그리하여 스승 상좌인 신찬과 함께 백장의 법을 이었으며, 후세 많은 구도자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4大가 각기 꿈 가운데서 흩어지고 육근(六根) - 육경(六境) - 육식(六識)이 모두 공(空)하도다.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西山에 해 떨어지면 東山에 달이 솟느리라. 나를 알고 나를 움직이는 놈을 알았으면 자연(自然)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땅한 이치(理致)다. 천하 귀인도 땅속에 들어가면 한줌의 흙이 되고, 천하 미인도 코 밑에 숨결이 멈추면 불러도 대답이 없고 소리쳐도 듣지 못한다. 누가 해 떨어지면 달 뜨는 이치를 알아 흙밥 속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의 불조(佛祖)가 될 것인가.

-가전충효님이 올린 글 -